17일 주민설명회서 주민들 반대의사 강력하게 피력
문화재청 "주민동의 없이 강행할 수 없는 일"

▲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예고한 애월읍 하가리 돌담길.
하가리 돌담길 문화재 등록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주민들은 17일 오전 하가리사무소에서 열린 '하가리 등록문화재 등록예고' 주민설명회 자리에서 등록문화재 등록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 소유자나 주민 동의가 전제돼야 하는 등록문화재 특성상 하가리 돌담길 문화재 등록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문화재청 이유범 근대문화재 과장이 하가리 주민들에게 등록문화재와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문화재청 이유범 근대문화재 과장은 설명회를 통해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강제성을 띄지 않으므로 소유자 또는 지역주민들의 동의가 없으면 강제 진행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이어 "후손에게 남겨줄 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적·문화적 산물을 주민과 정부가 합의하에 효율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등록문화재"라며 "기존 지정문화재로 인해 갖가지 개발제한 등 규제를 받아왔지만 등록문화재는 주민들에게 그러한 피해는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 과장은 "등록문화재로 등록되면 그동안 지정문화재로 인해 각종 규제를 받던 것과 달리 국가로부터 각종 지원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형을 크게 훼손하거나 변형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일상생활에 맞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며 "또 문화재를 관광자원화 해 마을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문화재 등록 효과를 설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완강히 이를 반대했다.

▲ 하가리 주민 장봉길씨가 주민 모두 문화재 등록을 원하지 않으니 전면 백지화 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가리 주민 장봉길씨(53)는 "현재 하가리에는 말방아와 제주 초가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며 "이로 인해 하가리민들은 지금까지 각종 규제로 인해 너무나 많은 재산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참아와야 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그렇지 않아도 이농현상으로 마을 전체가 텅텅 비어가는데 또다시 문화재로 등록돼 이러저러한 규제를 받는다면 하가리는 얼마 없어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이 될 것"이라며 "설사 문화재로 등록돼 정부로부터 얼마간의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고 이것이 현지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보상할 수는 없으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문화재 등록을 반대한다"고 강력한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하가리의 돌담길에 대한 보존가치는 마을 주민 모두 동감하고 있다"며 "마을 자체적으로 충분히 보존하고 관리해 나갈 테니 문화재 등록을 전면 백지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화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이점에 대해서도 "제주지역은 타지역과 달리 1일 생활권으로 문화재로 등록된다 하더라도 잠시 거쳐가는 곳이 될 뿐 머물수 있는 여건이 될 수 없다"며 "우리의 생활터전이 문화재로 묶이면서 주민들이 동물원 우리 안의 동물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 재설득에 나선 이유범 과장.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문화재청 이유범 근대문화재 과장은 "전국적으로 돌담길이나 간이역 등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근대기의 문화적 산물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며 "문화재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면서 이로 인해 규제를 받고 피해를 보던 시대가 아니"라고 재차 설득에 들어갔지만 주민들은 강경했다.

▲ 거듭된 설득에도 하가리 주민들의 문화재 등록 반대는 변하지 않았다.
하가리 주민 송창훈씨(46)는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문화재로 등록해 고통을 안겨주면서 이를 후대에 남기는 게 과연 옳은가"라며 "그렇게 보존가치가 높다면 주민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주고 이곳을 원형 그대로 복원·보존하는 게 맞는 것 아니"고 반발했다.

▲ 주민 송창훈씨가 이유범 근대문화재 과장에게 주민들의 반대의사를 재차 피력하고 있다.
송씨는 "주민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로 생계를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과 문화재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마주쳤을 때 주민들이 느낄 감정은 생각해 봤느냐"며 "문화재를 관광자원화하려면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윤태규 하가리장.
윤태규 하가리장은 "등록문화재가 아무리 강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문화재법의 적용을 받을 것이고 현지 주민들은 그동안 문화재 지정으로 인해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아왔다"며 "더이상의 문화재 지정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재차 반대입장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문화재 등록을 예고하면서 사전에 주민과의 협의나 논의조차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잣동네 말방아'. 현행 문화재법상 문화재가 위치한 반경 300m내에는 개발이 제한된다.
한 주민은 "우리 마을에 있는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는 것을 언론을 통해서 알아야 하냐"며 "말로만 주민과 함께하는 행정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문화재청은 하가리 돌담길 10km를 포함해 전국 15개 마을의 돌담길을 등록문화재로 예고했는데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돌담길은 문화재 등록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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