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 최재천의 '여성의 시대를 준비하라' 강연 웃음꽃"힘겨루기와 출세는 암컷에게 선택되기 위한 몸부림"

▲ '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의 저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사실 일부일처제가 다행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아니면 이준기, 송승헌 같은 꽃미남에만 몰릴테니까요'
"많은 남성들이 이 사실을 몰라요. 오히려 여성시대가 되면 남자가 편해집니다"

최근 부쩍 유명세를 타고 있는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학부(생명과학부) 교수가 17일 제주에서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는 공개 강좌를 가졌다.

내내 웃음꽃이 피었지만 남성들에겐 어쩌면 무척 불편한(?) 이야기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대학시절까지 '마초'맨 고백

(사)제주여성인권연대 부설 제주현장상담센터 '해냄'이 마련한 이 강좌에는 남성 청강생 4~5명도 더러 눈에 띄었다.

"사실 저도 대학때까지는 '상' 마초(macho=사나이다움의 뜻 또는 그런 사람) 였어요. 워낙 가부장적인 가정에서도 최고로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때문이었죠."

   
 
 

심지어 대학시절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오자 "감히 내가 전화하기 전에 여자가 먼저 전화를 했다"며 끊었던 고백도 했다.

미국 유학길에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나자 서툴게 육아와 부엌 살림을 맡게 됐다는 그는 엄하고 엄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털어놨다.

"덧니가 많았던 아버지에게 옛날 밥에 섞인 돌이 씹히기란 다반사였지요. 그 순간 아버지는 밥상을 뒤로한 채 신문을 펼쳐 듭니다."

"밥을 다시 퍼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어머니가 다시 밥을 지어야 합니다. 그 동안 가족들은 숨죽이는 시간을 보내야만했지요.".

"어머니가 차림상을 물리던 손에서 '바르르' 떨리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는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만약 내가 결혼해서 나중에 밥을 먹다 돌이 씹히게 되면 아무도 몰래 삼키리라."

호주제는 생물학적 '모순'...생물학적 족보는 여성 혈통(DNA)만 기록, 암컷으로 찾아가야

그는 남자로서는 처음으로 2004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는 '올해의 여성상'을 받았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곤충과 거미류의 사회행동의 진화' 등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여성시대의 도래했음을 전하는 의미있는 저서를 잇따라 냈다.

▲ 2003년 12월 12일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호주제 존폐에 대한 생물학적 의견서' 전문이 수록돼 있다.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라는 책을 통해서는 그는 여성시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저출산에 대한 위기를 경고하기도 했다. 

"2050년이 되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며 "과학이 발달해 100세까지 살게 될때가 온다. 50세가 넘어 제2의 인생을 맞는 사람들은 새분야를 개척해 인생을 이모작하는 지혜로운 삶을 갖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최 교수는 사회생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생물학적으로 본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신랄하고 유익하게 풀어냈다.

또 진정한 여성성이 회복되기 위해선 어떻게 남성과 여성이 살아가야 하는지, 남성과 여성이 더불어 잘 사는 길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했다.

"수컷만으로 번식을 할 수가 없다. 기독교에서 '아담의 갈비뼈'로 여성을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생물학적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암컷이 먼저 생겨나고 나중에 부수적인 이유에 의해 수컷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훨씬 더 타당하다. 지구상에는 수컷을 만들어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여태 암컷들끼리만 사는 생물종들도 있고, 수컷들과 함께 살다가 결국 없애버리고 암컷들만 남아 살아가는 종들도 있다. 하지만 암컷들을 죄다 없애버리고 수컷들끼리만 사는 종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여성시대엔 남자도...' 중에서)

세포의 핵이 융합하는 과정에서는 단순히 암수의 유전자가 공평하게 절반씩 결합하지만 핵을 제외한 세포질은 암컷이 홀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온전히 암컷에서 온다. 그래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생물의 계통을 밝히는 족보는 암컷, 즉 여성의 혈통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과학적 설득 논리가 가능하다.

이러한 그의 의견은 후에 헌법재판소에도 제출되고, 그리고 얼마 후 호주제는 폐지되는 성과를 거뒀다.

   
 
 

번식은 암컷의 선택권...수컷들은 간택을 위해 '아름답게 진화'하거나 '힘겨루기'

자기 스스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결정적인 약점때문에 자연계에 수컷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두가지 뿐이다. 첫째는 무조건 아름답게 태어나면 된다는 것으로, 왜 자연계의 거의 동물에서 수컷이 아름다운지를 설명하는 '다윈의 이론'이다. '암컷 선택' 이론에 따르면 번식에 관한 한 암컷에 선택권이 있다. 암컷의 간택을 받기 위해 수컷들이 아름답게 진화했다고 그는 말한다.

▲ '미'가 받쳐주지 않으면 '힘'으로 경쟁할 수 밖에 없다는 '수컷 경쟁' 이론은 남성들이 '출세'를 위해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자연계를 둘러봐도 공작, 꿩, 종달새, 사슴 등 거의 모든 동물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노래도 더 잘하고 춤도 더 잘 춘다는 그는 "수컷의 화려함은 사실 암컷에게 잘 보이려는 수컷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수컷들이 다 아름답게 태어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미(美)가 받쳐주지 않으면 '힘'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죠. 자연계에서 왜 힘겨루기를 하는 동물은 거의 예외없이 수컷일 수 밖에 없는 것을 설명해주는게 두번째의 '수컷 경쟁' 이론입니다."

"이를 인간사회에 적용시키면 왜 남성들이 그 처럼 출세하기는 위해 투쟁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권력, 재력, 학력 등 이른바 힘을 얻지 않으면 여성(암컷)에게 선택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한마디로 '출세'하지 않으면 자신(수컷)의 유전인자를 받기(전해주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1960년대 '암컷 선택' 이론이 일반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여성해방운동'(페미니즘)이 급속도로 부상한 것은 이 같은 논리와 전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질투는 남자의 속성...만약 질투가 없다면?

"여성을 볼 때 남성들은 사뭇 이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흔히 질투란 여성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볼 때 질투는 오히려 남성의 속성입니다."

"암컷은 자기 몸으로 직접 낳았기 때문에 자식을 의심을 이유가 없지요. 만일 수컷들이 질투할 줄 모른다면 남의 자식을 기르고 있을 확률이 퍽 높을 겁니다."

"남성의 질투는 종종 살인까지 부른다"는 그는 진화심리학 연구를 인용하며 "여성들은 자신의 배우자가 다른 여성과 단순히 육체적인 성관계를 갖는 것 보다 정신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하고, 남성들은 정반대로 육체적인 성관계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남성은 자신의 배우자가 단 한번의 성관계로도 다른 남자의 아기를 밸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남성에게는 언제나 '남의 아이를 키워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있을 수 있지요. 왜 남성의 질투가 훨씬 과격한 행동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여성 최고 자녀는 69명...남성은 1000여명까지?

수컷들은 암컷들과 짝짓기를 할 기회가 많으면 많을 수록 번식 성공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암컷의 경우는 다르다. 아무리 여러 수컷들과 짝짓기를 한들 한번에 낳을 수 있는 자식수는 한계가 있다. 암컷에게는 상대하는 수컷의 수보다 자식을 얼마나 잘 낳아 기를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영양 상태가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식을 낳기 위해 암컷과 수컷은 궁극적으로 협력해야 하지만 누가 더 투자를 많이 할 것이가를 놓고 늘 저울질하며 삽니다. 그 결과 암컷들은 질을 중시하는 반면 수컷들은 양으로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은 사랑하는 여인이 있으면서도 늘 다른 여성들을 살피는 버릇이 있는 거지요."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자녀를 낳은 여성으로 기록된 러시아 여인은 최고 69명입니다. 전부 13번의 임신에 두 쌍동이와 세 쌍동이, 네쌍동이를 섞어 낳은 것입니다. 배란기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깨질 수 없는 기록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 기록은 남자의 기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네스북이 선정한 모로코의 황제 '이스마일(1672~1727)'은 아들 525명과 딸  342명을 합쳐 무려 867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1721년에 700번째 아들을 얻은 걸로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무려 1000명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3천명의 궁녀로 알려진 백제 의자왕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을 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논리가 남자는 바람을 피울 확실한 이유가 있고 여자들은 근본적으로 바람을 피우려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성립할까?

초창기 사회생물학자들은 바로 이 점을 경솔하게 부각시켜 페미니스트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새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새들의 거의 95%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며 부부가 함께 새끼들을 기른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유전자 감식법을 사용해 한 둥지의 새끼들을 유전자 조사한 결과  평균 30% 이상, 심한 경우 70%에 이르는 새끼들이 한 둥지에 함께 사는 수컷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암수가 성실하게 자식을 기른다고 믿었던 동물들 대부분 알고 보니 '외도'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진 것이다.

▲ 원래 피카소가 그리려던 그림. 아기에게 생선을 주려는 남성(아버지)을 아기는 원하고 있지만, 여성(어머니)은 태연하게 외면하며 오직 아이에게만 시선이 향하고 있다.
"일부일처제 천만다행?...만약 아니었다면 '꽃미남'에게만 여성이 몰렸을 것"

"사실 신성일도 이준기 못지 않은 꽃미남이었잖아요. 동.서양시대를 막론하고 늘 인기있는 영화배우는 모두 꽃미남이었어요. 만약 일부 일처제가 아니었다면 많은 여성들이 꽃미남에게만 기하급수적으로 몰렸을 겁니다. 많은 매력없는 남성들이 그 사실을 몰라요. 저 같이 매력없는 사람에겐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 임신의 부끄러움을 당당하게 외친 '데미무어'
결국 좌중(여성들이 다수)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왜 인간사회는 꺼꾸로 된 삶을 살고 있을까?

그는 '수렵채집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힘'이 빛을 보는 '남성우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일주일에 어쩌다 한번 사냥감을 구했던 '수렵채집시대'에는 그 날 만큼만 '우쭐'대며 '가장 노릇을 했지만, 매일 '힘'이 필요한 농경시대에는 창고에 곡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남성의 힘이 경제력으로 치환되기 시작했다는 것.

"수렵채집시대에는 5~6일은 양성평등의 상황이었거나 최소한 여성이 우위에 있던 시기였어요. 남성이 우위를 지키던 시기는 딱 '먹을 거리'를 갖고 온 그 날 하루 뿐이었어요."

그는 앞으로 "남성 화장품이 잘 팔리는 시대가 온다"며 "앞으로 남성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만찬가지"라고 말했다.

조만간 "세계적인 회사들이 남성 화장품 개발에 주력하고, 여성 화장품 시장 보다 더 큰 시장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 그는 "성형 역시도 마찬가지다. 여성과 별도의 남성 전용 성형병원을 하면 더 잘 될 것"이라고 확신찬 어조로 말했다.

"여성은 조금 이뻐지기 위해서 화장을 하지만 남성은 (회사에서, 가정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도 화장을 해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좀 더 젊어져야 쫓겨나지 않는 것처럼 남성에게는 '화장'이 '생사'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지요".

   
 
 
남성우월시대?...현생 인류 출현 이후 5% 역사가 고작

"유일하게 40대, 50대로 들어서며 남성의 사망률이 더 치솟는 나라가 전 세계에서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호주제와 남성 사망률간의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밝힌 연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허울만 남은 가부장제도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가하는 스트레스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의 사망률과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첫 여성 저녁뉴스 메인앵커에 발탁된 CBS 케이티 쿠릭(48).그의 연봉은 자그마치
그는 "먼저 남성이 변해야 문제가 쉽게 풀린다"고 말한다.

"이 사회는 아버지가 자식을 돌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기르는게 인생의 행복인데, 그그렇게 보람된 일을 할 틈을 뺏는 것이지요. 남성이 먼저 변하고, 이어 여성이 노력해야 합니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 부터 약 20만년전. 20만년의 대부분을 수렵채집생활을 하며 지냈다. 농경을 하게된 시기는 최근 1만여년이고 보면 남성우월시대의 역사는 우리 현생 인류 역사의 5%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차 여성의 경제력이 증대해 스스로 아이를 기를 수 있고 적절한 수준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많은 여성들은 구태여 골치 아픈 결혼생활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시대가 되면 인간 남성들은 다른 동물세계의 수컷들과 마찬가지로 미를 추구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 것이 왜 21세기에 남자가 화장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 2001년 뉴욕타임즈의 편집장을 맡은 갈리 콜린스. 여성편집장 시대를 열었다.
▲ 최고의 권력(?)과 권위를 자랑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에도 결국 여성이 진출했다. 2005년부터 발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를 맡은 마린 알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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