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을 만나다] '동성애'에 대한 반복적 질문과 대답

한 편의 영화가 조용히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후회하지 않아>라는 작품이다.

개봉한 지 열흘만에 2만명의 관객이 찾았다. 분명 난 ‘개봉한지 열흘만에’라고 썼다. 2만이라는 수치.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단 몇 시간만에 이룬 일을 열흘만에 해냈다는 것을 대단하다는 뜻으로 썼다.

물론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무슨 영화야?’라고 의아해하는 분들 많을 것이다.

지난 16일 개봉한 이 작품은 ‘한국영화’다. 전국 9개관에서 작게 개봉했다.

▲ 영화 '후회하지 않아' 포스터.
감독은 ‘이송희일’. 단편 <슈가힐> <굿로맨스> 등을 만든 감독이다. 사실 이 감독을 아는 사람들은 작품보다는 감독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더 흥미로워 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개봉전에 공개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됐고, 개봉전부터 여기저기서 좋은 입소문의 조짐이 일었다. 그러더니 결국 개봉하자마자 사흘만에 1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위력을 발휘했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흥행세를 이어가기 위해 개봉관을 늘린다고 한다. 영화는 이미 저예산 독립영화의 최고 흥행성적을 보였던 <사이에서>의 흥행기록을 가뿐히 넘어섰다.

입소문이 제주까지 왔는지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이 작품을 보고파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볼 수 없다. 상영관이 없는 탓이다.

결국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위해 갔다기 보다는 갈 일이 있어 방문한 차에 꼭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암묵적으로 느껴지는 이 영화를 그토록 원했던 제주인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유유히 상영관으로 들어섰다. 비행기표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카드빚은 늘었지만...

# 동성애판 ‘너는 내 운명’

두 시간여 이어진 투쟁같은(?) 영화보기 결과 순간 <너는 내 운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영화는 동성애판 <너는 내 운명>이다. 많은 매체에서 이 영화를 두고 ‘70년대 호스티스물의 게이버전’ 이라고 말하는데 ‘70년대 호스티물’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쉽게 이해가능한 작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이해가 쉬운 작품을 떠올린 것이 <너는 내 운명>이다. 동성애를 이성애로 바꾸면 이 영화는 <너는 내 운명>으로 대입이 쉬워진다. 유흥가에서 일하는 한 인물과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한 인물의 운명적이고 격정적인 사랑. 이 영화의 큰 틀이다.

하지만 <너는 내 운명>과 차이가 나는 것은 <후회하지 않아>에서는 사랑과 계급의 차이에서 비롯된 인물 간 갈등이 한 축을 담당한다.

영화는 두 남자의 동성애를 중심에 놓고 인물간 계급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파열음을 들려준다. 그 파열음은 사랑과 결합해 관객들의 감정을 흔들고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동성애 신파 멜로영화’로 부를만 하다.

# ‘동성애’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과 솔직한 대답

영화는 과감히 두 남자의 육체적인 결합에 무게를 싣는다.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의미전달 정도에 국한됐던 ‘동성애’ 표현이 이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까놓고 보여줌으로써 표현상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 작품은 그동안 동성애를 다뤘던 영화들의 관습들을 배제한다. <브로크백 마운틴> 같이 사회적 편견에 휩싸인 동성애 커플의 참담한 연애과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성애를 보여줌으로써 마치 사랑에 대한 진보적인 개념을 설파했노라고 의식하지 않는다.

▲ 영화 '후회하지 않아'의 한장면.
두 남자의 육체적인 결합은 여느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랑하는 남녀간의 육체적인 결합과 같은 의미다. 우리는 그 장면을 봐야한다. 묵묵히 봐야하는 상황에서 미묘한 차이가 발견된다.

감독은 “동성애도 사랑 아냐?”라고 말하며 두 남자의 사랑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동안 관객들은 각자 가졌던 관념들에 계속 질문을 던지고 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70년대 호스티물에서야 계급 차이를 극복한 술집 작부 출신의 한 여자와 그를 사랑하는 남성의 육체적 결합을 계급차이를 극복한 위대한 ‘로맨스’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구조상에서 두 남자가 육체 결합을 끝내고 행복해하며 귓속말을 나누고, ‘사랑해’를 연발하는 장면들을 과연 <너는 내 운명>처럼 행복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란 과제에 봉착한다.

번지르하게 진보적이라고 포장됐던 성적인 관념은 무장해제 되고, 사랑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받는다.

감독은 의도치 않았다. 감독은 그저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을 뿐이다.

하지만 풀어놓은 지점이 서울의 ‘비열한 거리’이고, 게이바였고, 계급차이가 만나는 곳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사회안에 잠재한 성적 편향성과 성적 인식에 대한 사람들의 허위를 건드렸을 뿐이다.

<후회하지 않아>를 보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이성과 감정은 완전히 감독에게 좌지우지 당했고,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곤욕 아닌 곤욕을 치렀다. 허나 후회하진 않는다.

[ ㈔제주씨네아일랜드 사무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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