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의 도백열전(28)] 제9대 양제박 도지사①

  「3.15」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으로 퇴임한 전인홍 도지사에 이어 제9대 도지사로 부임한 양제박(梁濟博)은 나이가 74세로서, 제주도민들에게는 매우 뜻밖의 인물이었다.

북제주군 한림읍 대림리 출신의 양제박 지사는 19세 때에 고향을 떠난 후 계속 인천(仁川)에서 살았기 때문에 재경(在京)인사들과도 거의 교분이 없었던 생소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제주도내 관가와 언론계에서는 정부발령이 있자마자 양 지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 저곳에 사람들을 동원하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제주사회에서는 전임 전인홍 지사가 부정선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후임 지사로서 최수진(崔守眞) 前 제주시장, 양남전 前 총무국장 등이 거론되고 있었으며 경찰국장에는 김차봉(金次鳳) 前 제주읍장 등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러나 후임 지사와 경찰국장은 비(非) 자유당 인사 중에서 재야인사나 행정경험이 있는 이외의 사람이 발탁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과도정부는 이승만 정권 때에 관직에 없었던 순수 재야인사를 지사로 기용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후보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거주…2대 국회의원 북제주 을 선거구 출마 낙선기억이 전부

  1960년 5월12일자로 경기·강원·전북도지사 등 6개 도지사와 함께 제주지사로 임명된 신임 양제박 지사는 나이도 이미 70을 넘은 고령이었다. 도민들은 양 지사가 1950년 5월23일에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북제주군 을구에서 강창용, 김영진, 양병직 등과 함께 출마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양 지사에 대한 전부였다.

  양 지사는 경기(京畿) 법학전수학교를 수료한 후 1913년 제주지방법원 서기로 있다가 1920년 제주물산주식회사 전무를 역임했으며, 1925년에는 조선기업주식회사 사장을 지냈다. 양 지사는 해방되던 이듬해인 1946년 미군정때 인천에서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원으로 당선됐다가 1948년에는 역시 인천에서 제헌의원으로 출마, 낙선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양 지사에 대한 임명은 제주사회에 대단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후에 양 지사도 자신의 제주도지사 임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며 정부발표가 있기 불과 몇 시간 전에야 통보 받았다고 실토했다.

인천 출신 곽상훈 국회의장의 정치적 포석에 의해 도지사에 임명

  양 지사의 기용에는 인천 출신의 곽상훈(郭尙勳) 국회의장의 정치적인 포석과 적극적인 천거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은 나중에 알려진 일이었다. 자유당 정부의 몰락으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3.15」부정선거로 사퇴한 전인홍 지사의 후임을 물색하던 중 곽 국회의장의 출신지역인 인천에 제주출신이면서 민주당원인 양제박을 지사로 전격 발탁한 것이었다. 양 지사는 해방되던 해 한민당(韓民黨)에 입당, 곽 의장과는 상당한 친분을 맺게 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제주도지사로 기용됐다.

  양 지사는 3.1만세 사건 후 만주 등지에서 생활하다가 한민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해방 후에는 곽 의장의 선거구에서 입법의원으로 출마해 주변에서는 「한민당의 골동품」으로 불리 울 정도로 노정치가였다.

  양제박 지사가 부임하기 전 제주사회는 4.19 학생의거의 후유증으로 크게 혼란스런 상태였으며 관공서는 대부분이 관기가 잡혀 있지 않았다. 제주도청은 1960년 4월29일자로 전인홍 지사가 사표를 제출하자 김선옥 산업국장이 지사업무를 대리하고 있었고 김용학 경찰국장은 파면됨으로써 치안상태 역시 말이 아니었다.
  이와 함께 학생들로부터 해산을 요구받고 있는 제주도의회는 김도준 의장을 비롯한 의장단이 부정선거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으나 어정쩡한 상태로 계속 운영되고 있었다.

제주대학생둘, 부정선거 책임지고 '도의회' 즉각 해산될 것 요구

  이러한 가운데 그해 5월3일 3차 본회의가 열리고 있는 도의회 의사당에 제주대학 학생대표 10여명이 참석하여 무언의 해산 압력을 가했다. 학생들의 방청에 부담을 느낀 의원들은 정회를 틈타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으나, 역시 도의회의 즉각적인 해산이었다.

  의원들은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회가 해산될 경우에 닥치는 도정 마비는 어떻게 할 것이냐"면서 "만약 도의회가 학생들의 요구대로 해산한다면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막무가내였다. 학생들은 "도의회가 부정선거를 막지 못한 것은 말도 안되며 오히려 부정선거에 가담하지 않았느냐"고 공박하면서 당장 해산할 것을 주장했다.
  학생들은 이어 5월6일에는 학생총회를 열어 도의원들의 전원사퇴를 다시 요구하기로 결의한 후 조현하 제주대 학장에 대해서도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도의회는 "학생들의 총사퇴요구는 제주대학생 전체의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퇴할 수 없으며 도의회는 그대로 존속해 집행기관의 견제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도의회, "학생들의 요구는 순수하나 체제안정까지 계속 존속돼야"

  학생들은 5월10일 다시 도의회를 방문하고 해산을 촉구한 뒤 일부 학생들의 요구라고 말한 도의회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학생총회를 열고 전체 학생의 이름으로 도의회 해산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자신들의 의지를 조금도 굽히려 들지 않았다.

  난감해지 도의회는 비공식 회의를 열어 논의 끝에 의회 존속을 결정함으로써 1960년 12월12일에 실시된 제3대 도의원 선거 때까지 도의회를 이끌어 나갔다.

  그해 6월14일 도의회는 제주신보 광고란에 도의회 입장을 밝히는 담화문을 발표, 관심을 모았다.

『제주대학생들이 주장하는 도의회 해산요구는 기성세력의 퇴진을 내용으로 하는 4.19 혁명정신에서 볼 때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공명하나 기성세력의 교체인수 책임자를 아직 갖추지 못한 학생의거의 특수혁명성격에 비추어, 내각책임제가 이뤄지는 개헌 때까지 국회가 존속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타도의 의회들이 존속하고 있는 등 국내 정치정세로 볼 때 즉시 해산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러나 도의적 책임을 져 물러나고 싶으나 현 상태에서는 보궐선거가 불가능하고 추경예산심의 및 결산승인 등 할 일이 많은데다 시·읍·면의회에 대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여 의회를 계속 존속시키기로 결정한 바, 양해 바란다』

제주관가에 불어 닥치기 시작한 4.19 후유증 '숙정바람'

  그 때 제주지방은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듯 했으나 관공서에서는 「숙정(肅正)」바람으로 진통을 앓고 있었다. 정화 회오리는 경찰에도 불어 닥쳤다.

  제주도경찰국을 비롯한 제주경찰서 서귀포경찰서의 경사급 이하 경찰관들은 5월5일 오후3시 모임을 갖고 경위급 이상 간부급 경찰관들의 비위사실을 써내고 정화 차원에서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함으로써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엄격한 계급조직인 경찰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회의장 주변에 감시 경찰관을 배치하는 등 외부의 접근을 방지하면서 각자 간부 경찰관들의 비위사실을 써낸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기자들이 회의장에 들이닥치자 이들은 ?나중에 밝혀질 일이지만 외부 사람의 면전에서 상관을 욕되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기자들에게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고위직 경찰간부들은 하위직 경찰관들이 요구한 비위경찰관 처리문제로 고심하다가 해당 간부들에게 통보하여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도록 했다. 문제가 된 간부들은 눈치를 보다가 사표를 제출한 뒤 출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임 경찰국장 이성근(李聖根)이 부임하면서 사표를 제출했던 간부들이 사표를 제출한지 하루만인 5월7일 다시 정상 출근하여 신임 국장을 맞이했다. 이를 지켜본 하위직 경찰관 대표 10여명은 제주지방검찰청을 방문하고 부정간부들의 구속을 요청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경찰관에 대해서는 나중 조사한 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신임 경찰국장은 황해도 황주 출신으로서 3.15 선거 당시 포항경찰서장으로 있을 때 최인규 내무부장관에게 "공명선거를 실시해도 이길 자신이 있는데 왜 부정선거를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가 치안국 대기발령으로 좌천됐다가 전화위복으로 승진발령된 인물이었다.

대대적 숙정 소문에 불안한 공무원들 신임양재박 지사께 청탁인사 '쇄도'

  이 무렵에 梁濟博 지사가 부임한 것이다.
  「3.15」부정선거와 「4.19」학생의거로 혼란 속에 빠져있던 제주사회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양제박 지사가 발령됨으로써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임 양제박 지사가 제주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오랫동안 외지에서 살아온 관계로 양 지사의 성격을 모르는데다 과도정부에서 조만간 자유당 시절의 간부공무원들을 대규모 숙정한다는 소문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 지사는 이를 의식, 부임하기 전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정선거에 가담했던 공무원은 그 정도를 밝힌 후에 본의에 의해 가담한 사람이 아니라면 불문에 붙이겠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순전히 개인의 의견일 뿐 아직 정부의 의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주지방에서는 양 지사가 부임하면 도청의 국·과장들에 대해서 모두 사표를 제출하도록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관가는 양 지사의 부임에 관심이 컸다.

  양 지사는 정부발령을 받은 지 일주일만인 5월19일 부임했다. 그 동안 양 지사가 묵고 있는 서울의 某 여관에는 공무원에 대한 인사청탁자가 쇄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 지사는 다음날인 5월20일 오전10시 도청 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가지고 "4.19 학생혁명정신을 망각하지 말고 새 마음 새 뜻으로 맡은 직책에 책임을 다해달라"는 말로 동요하고 있는 직원들을 일단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관가는 온통 도청 간부들에 대한 진퇴에 관심이 모아졌다. 도지사실을 통해 간간이 전해지는 소문 또한 자유당 시절의 간부 공무원은 모두 선별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양 지사는 "아직 제주실정을 잘 모르니 뭐라고 얘기할 수 없으나 3~4일간 실정을 파악하고 여론을 수렴한 후 인사문제를 종결 짓겠다"고 피력하고 5월6일자로 해임된 高晶協 前제주시장의 후임인사를 빨리 단행할 뜻을 시사했다.

양제박 지사 "실·국장 군수 모든 간부 공무원 사표제출하라" 지시
 
  설마 했던 간부 공무원들에 대한 사표제출은 현실로 나타났다.
  양 지사는 토요일인 5월21일 오전8시30분 국·과장 및 군수 정례회의에서 "모든 국·과장과 군수 등 모든 간부 공무원은 사표를 제출하라"는 말 한마디만을 던지고 퇴장해버려 관가에 충격을 던졌다.

  양 지사는 "월요일인 5월23일까지 사표를 제출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도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간부 공무원들을 가리키며 ?당신들은 자유당 정부가 임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과도정부의 인사발령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당장 사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양 지사는 사표 수리자와 반려 대상자를 가리기 위해 상경한 것은 5월24일이었다. 그런 양 지사가 서무계장에게 "제출된 국·과장과 군수들의 사표를 갖고 오라"는 지시가 닷새 뒤에 떨어졌다. 인사발표를 이제나 저제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간부 공무원들에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지시였다.

일부 문제인사가 사표수리하고 나머지는 유입…제주도민사회 여론 '흔들'

  양 지사가 귀임한 것은 상경한지 일주일이 되던 5월31일이었다. 양 지사는 귀임하자마자 인사내용을 발표하고 김선옥 산업국장(후에 제10대 제주도지사 역임)과 서무과장·산업과장·축정과장·농무과장을 유임시키고 이미 오래 전에 사표를 제출한 좌문규 총무국장과 부대현(夫大炫) 지방과장, 홍순하 북제주군수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런가 하면 제주시장에 김차봉 前 제주읍장이 기용되고 북제주군수에는 김한준(金漢駿) 학무과장읅 발령했다. 김차봉은 5년만에 다시 제주시정 책임자로 발탁했다. 또한 김동익(金東翼) 사회과장을 학무과장으로, 강덕훈(康德薰) 행정계장을 사회과장으로 이동 및 승진시켰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서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대거 숙정을 기대했던 도민들은 양 지사의 인사에 상당히 실망한 모습들이었다.

  양 지사는 인사내용을 발표하기 전에 "하야(下野)한 이승만 대통령이 임명한 내무·외무·법무장관들이 계속 재임하고 있는 등 현 정부에는 여야가 없기 때문에 부정선거에 앞장선 책임자가 아니면 그대로 유임시켰다"고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양 지사의 인사내용을 전해들은 도민들의 실망은 대단했다. 일부에서는 양 지사의 인사안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면서 "자유당 시절에 근무했던 공무원들을 모두 해임시켜 관기(官紀)를 바로 잡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에서도 5월30일 양 지사의 인사에 불만을 표시하고 "3.15 부정선거의 원흉들은 물러가라"며 제주시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도민들 인사발표 불만…일부 지역유지들 '추방발기인 준비위'까지 구성

  이 같은 도민 여론에 대해 양 지사는 "내가 과도기 지사로 직임을 수락하여 취임한 것은 나의 고향인 제주도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이었으며, 과도기 정부의 성격 역시 주지하다시피 앞으로 수립될 정부에게 정권을 넘겨주기 전까지의 공백상태를 메우기 위한 것이므로 3.15 부정선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거나 주민들의 지탄 대상자가 아니면 현직 공무원을 원상태로 유지하여 혼란을 막아 신정부의 수립을 기다려 달라"고 도민 여론을 진정시켰다.

  양 지사는 그러면서 "일부 도민들 가운데는 현직 간부 공무원들을 전원 해임하고 새로운 인물로 신규 채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으나 이것은 중앙방침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 과도정부는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이 임명한 몇몇 국무위원들이 중심 되어 조직된 정부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인사조치는 과도정부를 해산해야 한다는 뜻과 같아서 도민 여러분은 냉정한 태도로 공정히 비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 지사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계속 인사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6월2일에는 도내 지역유지 10여명이 모여 양 지사의 인사를 놓고 비난하기 시작하는 등 인사에 대한 불만은 쉽게 잦아지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번 양제박 지사의 간부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는 매우 편파적이었으며 미온적이었다?" 말하고 양 지사는 그 책임을 져 물러나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가칭 「梁濟博 추방발기준비위원회」를 전격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과거 공직에 있었던 사람을 포함하여 교육계와 사회단체, 민주당의 인사들이 다수 합세했다. 이들은 3.15 부정선거에 연대책임을 져야 할 도청 국장과 과장이 영전되거나 승진됨으로써 도민들의 희망을 꺾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양 지사가 부임초에 밝힌 시정방침과도 위배되며 양 지사의 인격조차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양 지사는 도청 간부인사에서 도정의 핵심인 총무국장의 후임 발령을 계속 미뤄 누가 임명될 것인지가 또 다른 관심사였다. 총무국장에는 김선옥 산업국장, 김 국장 후임에는 부항석(夫恒錫) 제주대 서무과장이 유력하다는 설이 돌았다.

양 지사가 부임한지 거의 한달만인 6월11일 양 지사는 예상대로 김 국장을 총무국장으로, 산업국장에 부 과장을 각각 발령하고 인사문제를 일단락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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