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 할머니, 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산사에서 한순간' 가작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고 70살부터 '글쓰기' 시작 늦둥이

환장하는 아우성

고희에 시(詩)를 만나 / 사랑하는 방에서 / 남몰래 잉태되고
태어난 늦둥이들 / 잘키워 시집 못 낸 / 죄책감이 무겁다

못난이도 단장하고 / 여기저기 선보이면 / 욕심 낼 신랑감을
만날수도 있을텐데 / 무심코 자다 깬 저녁 / 후회가 막심하다

후회하는 순간에 / 절로 훌쩍 커버린 / 비바리들 시집못가서
환장하는 아우성이 / 다급한 마음을 열고 / 선보일 길 찾아본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75세 할머니가 시인에 등단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주인공은 제주시 한림읍 귀덕3리에 사는 오계아 할머니.

   
 
 
오 할머니는 최근 제주한국문인협회에서 실시한 제16회 제주신인문학상 시조부문에 '산사에서 한순간'으로 가작 입선해 당당하게 신인으로 등단했다.

학교를 전혀 나오지 않은 오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후 지난 2001년부터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도서관'에서 평생교육 일환으로 운영하는 '책사랑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사랑모임은 30~40대 주부들이 주로 있고, 70대는 오 할머니가 유일했다. 배움에 목마른 오 할머니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오 할머니는 지난해에 개설한 '시창작교실 기초과정에 입문, 본격적인 시의 세계에 들어섰다.

오 할머니는 부단한 노력끝에 최근 제주신인문학상 시조부문에 '환장하는 아우성' '산사에서 한수간' 등 4편을 제출했다.

오 할머니는 '제주의 소리'와 통화에서 "그냥 주변에서 한번 출품해 보라고 권유해서 경험으로 제출했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기뻐했다.

한수풀도서관 관계자는 "2001년부터 도서관 책사랑모임에 홀로 나오기 시작한 후 꾸준하고 열심히 했다"며 "오 할머니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차분하게 글로 잘 쓰신다"고 말했다.

'산사에서 한 순간'

대웅전 단청에서 터지는 그윽한 향기
삼보가 풀어내는 8만 4천 법문처럼
무량한 번뇌만상에 억매인 줄 풀린다

이런 땐 죄인에게도 불연이 흐르는가
달마대사 설법하신 팔정도가 보이고
부정에 얽매인 죄도 거품같이 떠오른다

그것도 순간일 뿐 물러서니 착한 세상
불현듯 20줄로 머리를 휘감으며
탐욕의 본바탕으로 발길을 되돌린다

아무래도 나로서는 따르지 못할 불연
권하는 무소유는 무소유로 흘러가고
금하는 탐진취로만 인연이 맺어진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