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어교수학습의 궁극적 목표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자는 게 아니라, 모국어를 한국어로 하면서 ‘세계 유력어’로서의 영어를 통한 듣기(Listening), 말하기(Speaking), 읽기(Reading), 쓰기(Writing)를 통한 의사소통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 등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환경에서의 원어민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제2언어’로서의 영어는 물론,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국사회에 들어온 외국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함께 포함한다.

‘의사소통’을 영어교수학습의 성취기준으로 먼저 내세우는 이유는 우리의 학교나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영어교수학습이 완벽한 모국어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모국어 사용자 수준만큼의 완벽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타고난 자질이나 투자되는 비용의 문제와 결부되므로 소수적인 예외로 치기로 한다.

1. ESL과 EFL적 상황의 특징

ESL은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의 약자로서, 미국이나 영국 등과 같이 영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에 이민을 오거나 공부를 하러 온 외국 사람들이 배우는 영어를 일컫는 말이다. 곧 ESL적 상황에서는, 모국어와는 별도로 영어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등 일상 생활의 모든 면에서 반복적이고도 공식적인 언어로 사용되는 만큼, 어휘나 개념, 문법 등 영어 습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미국 등 영어상용국으로 떠나는 조기유학은 바로 그러한 잇점을 의도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영어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 이게 만난을 무릅쓰고 조기유학을 감행하는 주된 명분이 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즉, 아이들이 미국에서 하루 스물네시간, 한달 삼십일, 일년 열두달 영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하다 보면 한국에서와는 달리 고생을 덜하면서 ‘그토록 중요한 영어’를 보다 쉽게, 보다 완벽하게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국 등으로 조기유학 온 한국의 아이들이 과연 실제로 하루 스물네시간, 한달 삼십일 영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하기로 한다.

한편 EFL은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로서 우리나라처럼 일상생활을 한국어로 하는 환경에서 학교나 학원에 가서 ‘일부러 배우는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EFL적 상황에서의 영어는 입시를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또는 직장 내에서의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 때문에 기본적인 일상생활이 위협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영어를 하지 못해서 생필품을 사지 못하거나, 병원에서의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EFL적 환경에서는, 일부러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 일상 생활에서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따라서 우리 한국 땅에서는, 미국 땅 같은 일상적으로 영어가 쓰이고 있는 ESL적 환경에서 사용되는 교수학습법과는 다르게, 보다 강력하고 밀도 높은 ‘한국형 수련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2. 한국에서의 영어교수학습의 실태

백용범은, 전국영어교사모임 부설 영어교육연구소 개소기념심포지엄에서 초등영어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개괄하고 있다.
“1995년 11월에 공포된 초등학교 영어과 교육과정의 기본 성격과 목표를 살펴보면, 초등학교 영어는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간단하면서도 기초적인 영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과”로서 그 내용은 “의사 소통의 바탕이 되는 언어 기능 교육, 그 가운데에서도 음성언어 교육이 주가 된다. 음성언어 교육은 발음, 억양, 발화 등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한다.”, “문자 언어는 저학년에서는 문자 인식 수준으로 제한하고, 고학년에서는 문자 수준의 음성 이해를 돕는 보조 수단으로서 문어적 표현을 다룬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단어는 3, 4학년에서는 100단어씩, 5, 6학년에서는 150단어씩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총 500단어 내외를 배우도록 되어 있다(현재 중학교는 1050단어, 고등학교는 3000단어를 이수하도록 되어있다.). 한 문장은 7-9단어 이내로 구성되는 짧은 문장을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언어재료는 학생의 개인 생활, 교우관계, 학교 생활, 가정 생활, 의식주, 건강, 취미, 운동, 주변 생활, 날씨, 자연, 그밖에 학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다루도록 되어 있다.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면서 하게 될 주요 활동들을 요약해 보면, 그림을 보면서 영어를 듣고 그림에서 맞는 것 찾아내기, 영어를 듣거나 읽은 다음 맞는 것을 찾아서 선으로 연결하기, 영어 노래 부르기, 간단한 말 따라하기, 듣고 행동하기, 문자 읽기, 동작이나 그림 보며 말하기, 들은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놀이나 게임을 하며 듣고 말하기, 여러 상황에서 간단한 대화 말하기 등이다.”

요컨대 우리 아이들은 정규교과로 처음 대하는 영어수업시간에 마치 미국 등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회에서 모국어를 처음 접하는 것과 같이 소리로만 영어를 접할 수 있게 되며, 또한 그 소리와 삽화들이 표현해주는 내용들은 모두가 일상생활 그 자체인 것이다. “영어로 듣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생각하라.” 이것은 미국에서나 아니면 영어권 식민지에서와 똑 같다. 문자를 기피하고 철저하게 소리 위주로 영어수업을 진행하도록 교과서가 꾸며지고 있는 것은 모국어 학습의 경우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말하자면 모국어를 배우듯이 영어를 배울 수 있게 하겠다는 함의가 담겨있는 교과서 편제이다.

그렇다면 모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미국이나 영국, 호주의 아이들처럼 그 소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 달리 말하자면 ‘소리영어’에 대한 노출이 그 과정에서 어휘나 개념, 문법, 문장구성법까지 자연스럽게 익혀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고 적절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실제로는 그 수업시간이 끝나는 순간부터 ‘외국어’로 둘러싸이게 된다. 즉, 수업시간과는 동떨어지게도 온통 ‘한국말’을 사용하는 또래와 교과와 선생님들 속에 파묻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유감스럽게도 하루 스물네시간, 한달 삼십일, 일년 열두달 영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하는 환경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시간씩만-초등학교 영어교과과정이 그렇게 짜여 있다-“영어로 듣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생각”하는 환경 속에 있게 된다. 말하자면 영어수업은 전적으로 영어생활환경-모국어 혹은 제2언어 사용환경-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나, 실제적인 영어교수학습환경은 전혀 혹은 거의-일부 특별한 사립학교나 가정 들의 경우에는 예외일 수 있다-그와는 동떨어진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3. EFL적 환경이 요구하는 영어교수학습법의 필요성

바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아이들은 모국어나 제2언어로서의 영어를 그처럼 배울 수 있게 되는 환경이 아니라,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워야 하는 EFL적인 영어학습환경에 처해 있다. 이 점은 영어교수학습과정에서 분명히 전제하고 들어가야 한다. 즉, 한국 땅은 일상생활을 한국어로 하는 ‘한국어 환경’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어린이들에게 영어는 모국어가 될 수 없다. 모국어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적정 시기에, 적정 기간 동안, 적정 언어 환경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어린이들에게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어는 또한 우리에게 제2언어도 될 수 없다. 영어가 우리에게 제2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생존조건의 하나가 됨으로써 필수적으로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린이들에게 영어는 오로지 교실이나 학원에서만 학습되는 일시적인 대상일 뿐이다.

영어는 우리에게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모국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훈련될 수밖에 없으며, 제2언어도 되기 어렵기 때문에 제2언어로서의 영어교수학습방식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영어는 우리에게 모국어도, 제2언어도 아닌 외국어일 뿐이다. 우리 한국 땅에서는, 미국 땅에서와 같은 환경에서 적용될 수 있는 교수법과는 다르게, 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보다 효과적인 영어교수학습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즉,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에 훨씬 더 많은 양의 영어를 머릿속에 입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모국어나 제2언어 학습환경의 경우처럼 항상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가 아니라, 의식적이고 계획적으로 영어에 대한 노출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영어교수학습의 환경은,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일상생활이 아니라 학교나 학원의 특정한 시간 동안에만 영어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학교나 학원 등 극히 제한된 기회만으로 어느 수준이든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어능력을 갖추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항상적이면서도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모국어 습득과정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아기는 태어나면서 소리부터 접한다. 즉, 소리언어에 대한 노출을 통해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며 이어서 그 소리가 말로 옮겨지고 글읽기와 글쓰기로 옮겨지는 것이다. 요컨대 듣기-말하기-읽기-쓰기의 단계를 밟는 것은 대부분의 정상적인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워가는 순서이다. 그렇듯이 언어는 그것이 영어든 한국어이든 노출을 통해 학습된다. 문자에 노출되지 않으면 문자를 배울 수 없고 소리에 노출되지 않으면 소리를 배울 수 없다. 언어를 배울 때 소리에 먼저 노출되는 것은 그것이 모국어인 경우에 자연스러우며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경우와 같이 이미 한국어라는 모국어가 온통 소리로 글로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는 어떻게 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익히게 될까? 다시 말하자면 어떻게 해서 아이의 영어에 대한 노출의 양과 질을 보다 증대시킬 수 있을까? 현행 공교육 사교육의 영어교육에서 강조되고 있는 대로 그것은 과연 듣기(Hearing & Listening)를 통해서일까?

우선 우리의 실제 영어교수학습환경에서 듣기를 통해서 영어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을 만큼의 임계량에 달하는 영어에 대한 노출이 가능한가를 따져봐야 한다. 학술적 차원에서 논란이 분분하긴 하지만 ‘영절하’의 정찬용의 접근법이나 이정훈의 ‘소리영어’, 그리고 정철의 ‘영어혁명’ 등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방법론의 주안점은 바로 어떻게 하면 영어에 대한 노출을 듣기 즉 소리를 통해서 극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들이다. ‘무조건 듣고만 있으면 귀가 뚫리고 입이 열린다’는 주장은 이제는 신화가 아니라 하나의 과학인 것처럼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런 주장들의 공통점은 “줄기차게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학성은 외국어로 적절히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정 언어환경에 약 4천시간 이상 노출되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하루에 8시간 정도 영어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이는 약 500일 이상을 영어사용 환경에 노출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하루에 2시간 정도 영어에 노출되는 경우에는 약 6년 가까운 기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영어수업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이 한국어 설명에 할애되므로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영어 자체에 노출되는 시간은 극히 미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학교교육을 통해서는 필요한 영어 기능을 제대로 함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국어로서든 제2언어로서든 또는 외국어로서든 공통적인 영어교수학습법의 요체는 요컨대 ‘영어에 대한 노출의 극대화’이다. 미국에 유학 온 한국아이가 제2언어로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가장 기대를 많이 받는 환경은 그렇듯이 전면적이고 일상적인 영어에 대한 노출 기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적으로가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특별한 목적으로 접할 수 있는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는 한국사회에서 ‘영어에 대한 노출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4. 영어학습에 있어서의 듣기(Listening)의 중요성

EFL적 환경에서 바람직한 영어교수학습법과 관련한 주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첫째, 일시적이고 제한된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영어에 대한 노출의 양을 최대한 증대시키며, 둘째, 영어에 대해 노출될 때 아이들의 지각이 의미있게 작용할 수 있도록, 노출의 질을 증대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철, 정찬용, 이정훈은 앞서 지적한 대로 듣기영어를, 그리고 송순호와 김성은 등은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의 영어학습은 그 환경이 전혀 다르므로 한국에서는 미국에서와 같은 방법을 따라서는 영어교수학습에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정철은, 일단 미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경우의 이점은 한 마디로 말해서 “영어를 접하고 사용하는 기회가 많다”는 점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영어교수학습환경이 전혀 다른 미국 땅에서 미국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미국 땅에서나 가능한 ESL교수법을 한국 땅에서 적용할 경우 그것은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없으므로 우리 나라 상황-EFL적-에 맞는 ‘한국형 수련법’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방안으로 그는 한국 땅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접하는 기회가 적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양의 영어를 머릿속에 입력해야 하며, 영어로 말하는 기회가 적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집중적으로 귀와 입을 단련시키고 더 많은 실황연습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적 학자들에 의해서는 전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기는 하나 참으로 논란이 분분했던 ‘영절하’의 정찬용의 “듣기 절대 우선주의”는 일반 시중에서는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그 성과에 대해서는 학술적 차원에서 입증되기 전이라 확신하기는 힘드나, 정철의 경우나 정찬용의 경우나 “자꾸 반복해서 들음으로써 그 리듬과 음정․단어․문장의 구조․어순 감각 등이 완전히 머릿속에 배어들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상업적 영어학습프로그램 들도 그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초중등 공교육의 현장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Listen & Repeat"을 반복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듣기(Listeing)는 영어교육학습의 성취를 위한 관건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결정적인 사실이 있다. 즉, 앞서 한학성이 인용한, 외국어로 적절히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정 언어환경에 약 4천시간 이상 노출되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단순 산술계산만으로 하루에 8시간 정도 영어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이는 약 500일 이상을 영어사용 환경에 노출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하루에 2시간 정도 영어에 노출되는 경우에는 약 6년 가까운 기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현재 공교육과 사교육의 현장에서 배타적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듣기(Listeing) 위주의 수업으로 메꾸어져야 한다면, 한국 땅의 대다수 아이들은 영어를 성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영어 듣기 환경은 그것을 위주로 해서는 영어학습에 필요한 절대 노출량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교육에서는 적으면 1주일에 한시간(초등의 경우), 많아야 1주일에 서너시간 동안 영어에 노출되는데, 그 시간을 듣기 위주로 진행시키는 데다가 초등영어의 경우 구사하는 어휘도 적을뿐더러(500단어 정도) 문자영어는 거의 배제하다시피하는 상황이며, 중학영어에서도 회화 위주로 교과수업은 진행된다. 영어에 대한 노출이 성공적인 영어학습의 결정적 관건이라면 그와 같은 상황은 우려할만하다.

5. 영어학습에 있어서의 읽기(Reading)의 중요성

한학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사소통에 필요한 네 가지 기능들 즉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중 수동적 이해 기능인 듣기와 읽기와 관련한 입력의 양은 말하기 쓰기와 관련된 출력 즉 능동적 표현기능의 질을 좌우한다. 이를테면 10 정도의 입력이 있어야 1 정도의 출력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를 빙산에 비유할 수 있다. 즉, 능동적 표현기능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으로 외국어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꾸준히 입력의 양을 늘려 빙산의 몸체를 키운 후 그를 바탕으로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능동적 표현기능이 우러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꾸준한 듣기와 읽기 훈련, 그리고 이에 더한 말하기와 쓰기 훈련이 없으면 원하는 수준의 외국어 능력은 결코 길러질 수 없다.”

그와 같은 영어학습의 과정에서, 듣기가 되었든 읽기가 되었든 영어에 대한 노출은, 반복하거니와, 영어학습에 있어서 결정적인 관건이다. 그 중에서도 읽기는 보다 더 중요하다. EFL적 상황에서 읽기(Reading)는 두 가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읽기를 통해서 우리는 듣기를 통해서보다 훨씬 쉽게 그리고 많이 영어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읽기를 통해서 우리는 듣기에 대한 노출을 보다 용이하게 해줄 수 있는 ‘독해력’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오퀘스트 인터넷 사이트에 “이 땅에서 태어나 외국어 공부하는 법”을 기고한 이창희(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대학원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위에서 분명해진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노출’의 문제가 된다. 카메라 셔터를 어느 정도로 얼마 동안이나 여느냐가 사진의 성패를 가르는 것처럼 우리의 언어생활이 외국어 환경에 얼마나 오래 드러나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언제 시작되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늦게 시작했고 너무 적게 노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딱 하나, 많이 읽는 것이다. ‘읽기’야말로 우리를 노출부족으로부터 끌어내어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이다.”

우선 읽기는 듣기에 비해 매우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노출방법이다.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 듣기에 비해 짧은 시간에 많이 노출될 수 있다. 듣기에 비해 추상적이고 고급의 영어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은 제한된 곳과 시간에만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독서는 절대 노출량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듣기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우리 아이들을 보라.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이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한다. 또 그 쓴 글이나 말의 내용의 양과 질은 어떤가? 요컨대 그렇듯이 읽기는 다른 모든 의사소통 기능들의 총체적인 기반을 이룬다.

한편, 뉴욕시 교육위원으로서 15년간 현지에서 어린이영어교육에 종사해온 송순호는 최근 저서 <조기유학, 절대로 보내지 마라-어린이 영어의 정석>에서, 읽기가 되어야 듣기도 말하기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읽어서 이해가 가능해야 들어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읽기를 외국어 교수학습의 요체라고 강조한다. 체계적으로 선별된 다량의 독서를 통해서 독해력을 길러내고 더불어 수많은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의사소통능력으로서의 비약적인 영어능력의 향상이 가능해진다는 그의 주장은, 이 논문의 기본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요약 및 결론

풍부한 언어의 표현은 풍부한 언어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 많이 듣고 많이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모국어를 많이 듣고 읽었기 때문에 모국어를 잘 구사할 수 있듯이,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많이 듣고 읽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 땅에서 외국어 습득이 어려운 이유이다. 모국어는 자연적 노출에 의해 듣기 학습이 이루어지지만 EFL 상황에서 외국어를 위한 듣기 학습에는 의도적인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를 많이 들어야 하는데 일상의 모든 언어가 모국어이기 때문에 들려오는 영어가 없다. 따라서 EFL상황에서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읽기를 통한 학습이 듣기 학습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영어교수학습환경이 EFL적이라는 사실은 그 영어교수학습방법이 EFL적이라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행 공교육의 지침은 교재를 보거나 교사양성과정을 보거나 모국어 혹은 제2언어로서의 영어학습을 지향하고 있다. 즉, 항상적으로 영어에 노출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변이 온통 영어로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 것과 같은 상황을 전제로 한 교수학습법이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교육도 거의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소리든 글자든 임계량 이상의 영어에 대한 노출을 영어학습의 필수적 조건으로 한다면, 그처럼 환경과 합치되지 않는 교수학습법은 다만 고비용 저효율의 원인을 제공할 뿐이다. 우리 아이들이 처해있는 환경이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런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임계량의 노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임계량의 노출을 전제로 하는 교수학습방법이 낳을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우리 아이들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영어에 노출되고 있음을 전제로, 즉 영어교수학습환경의 EFL적임을 전제로 한 교수학습방법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EFL적 환경에서 바람직한 영어교수학습법의 요체는 첫째, 일시적이고 제한된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영어에 대한 노출의 기회의 양을 최대한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모국어적 혹은 ESL적 환경에서 우선시 되는 듣기(Listening)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읽기(Reading)를 강조하는 것이다. 둘째는, 영어에 대해 노출될 때 아이들의 지각이 의미있게 작용할 수 있도록, 노출의 질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노출되는 자료를 아이의 지각적 조건에 맞춰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써 가능해진다. 요컨대, 다양하고 풍부한 읽기 과정에서 성취되는 독해력을 바탕으로 듣기와 말하기와 쓰기가 더불어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때의 읽기 자료는 아이의 독해수준에 거의 들어맞는 것일 경우에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김학준의 우리는 이어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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