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기행] '살아있는 굼부리' 산굼부리

 
▲ 산굼부리 능선
ⓒ 김강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굼부리. 제주여행을 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방문하는 곳이 바로 산굼부리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약 13만 년 전의 태고의 굼부리를 알고 있을까?

제주시에서 11번 도로(5·16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삼나무 숲길인 비자림로를 만날 수 있다. 하늘을 치솟는 삼나무 숲을 지나 얼마나 달렸을까. 현무암으로 쌓은 방사탑 앞에 차를 세웠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한라산 기생화산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 산굼부리에 서식하는 나무에 마이크가 달려 있다.
ⓒ 김강임
 
화산섬의 아침은 표고 437m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가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산굼부리 능선을 지키던 삼나무는 기지개를 켜더니 화구 주변에 무리를 이룬 억새군락이 꿈틀거렸다.

한라산 기생화산 산굼부리는 여느 제주오름과 다르다. 저마다 봉우리를 자랑했던 360여 개의 숨구멍 중에서도 산굼부리는 산체에 비해 대형 화구를 가진 특이한 굼부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 "능선을 따라 걸어 보세요"
ⓒ 김강임
 
 
▲ 오름 주변에 묘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 김강임
 
좌우 돌담으로 쌓아놓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한라산 백록담보다 더 깊고 넓은 화구를 만날 수 있었다. 푹 꺼져 나간 바닥이 실제 평지보다도 낮게 내려앉아 있는 화구. 우주가 만들어낸 작품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마르형 화구는 지질학의 표본이기도 하다.

산굼부리의 가치는 식물, 식생의 가치와 지질학적 가치에서 그 의미가 깊다. 희귀식물에서부터 고지대, 저지대에 이르기까지의 식생을 이루는 신비의 화구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 되어 있으며, 화산활동 초기에 단기간의 폭발적 분출작용에 의해서 생기는 작은 언덕의 화산 존재인 마르는 세계적 가치를 자랑하고 있는 보물이기도 하다.

 
▲ 태고의 정적이 흐르는 분화구
ⓒ 김강임
 
몸뚱이는 없고 아가리만 벌린 대형 굼부리. 그 속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보이는 것은 태고의 신비. 제주오름에 올라보면 늘 신비로움이 잠들어 있다.

 
▲ 산굼부리를 덮고 있는 억새의 군락
ⓒ 김강임
 
화구 둘레가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폭렬화구에는 수많은 생태계가 살아 숨 쉬고 있다. 3∼4월에 피어나는 각시붓꽃과 구슬붕이, 4∼5월에 피어나는 연복초와 금새우란, 어린 시절 즐겨 따 먹었던 산뽕나무.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온갖 생태계들의 보물창고가 드디어 안갯속에서 그 얼굴을 드러냈다.

"엄청난 불기운이 터져 나왔던 굼부리에서 이처럼 생태계의 보불 창고가 서식하다니!"

기생화산체를 보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산굼부리는 외부주위둘레 2067m, 내부주위둘레 756m, 분화구 깊이 100∼146m의 원추형 절벽을 이루고 있다. 화구는 바닥넓이만도 약 8000평이나 된다고 한다. 화구주위의 지면은 표고 400m의 평지이고 화구남쪽에 최고 표고 438m인 언덕이 있을 뿐.

분화구의 표고가 낮고 지름과 깊이가 백록담보다도 더 큰데 물은 고여 있지 않았다. 화구에 내린 빗물은 화구벽의 현무암 자갈층을 통하여 바다로 흘러나기 때문이다.

 
ⓒ 김강임
 
그 신비로움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굼부리의 정적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고즈넉한 언덕을 걸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마치 태고의 시간여행을 즐기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그동안 제주 오름 기행을 해 보았지만, 실제 바닥이 주변의 평지보다 100m가량 낮게 내려앉은 기생화산을 보았을까. 천연 그대로의 기생화산체를 밟아보는 기행은 태고의 정적 속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마르형 화구를 가진 산굼부리  
 
 
 

산굼부리는 우리나라에 유일한 마르형 화구를 가지고 있다.

산굼부리 분화구는 천연기념물 제263호로 지정돼 있다. 한라산의 기생화산 분화구로 다른 분화구와 달리 낮은 평지에 커다란 분화구가 만들어졌으며 모양도 진기하다. 또 마르형 화구는 우리나라에서는 산굼부리가 유일하며 세계적으로는 일본과 독일에 몇 개 알려졌을 뿐이다.

산굼부리는 표고가 437.4m, 화구 남쪽 둘레의 약간 둔덕진 등성이에 있다. 화구 바닥은 305.4m. 북쪽 기슭의 도로(교래∼송당)가 등고선상 해발 410m 안팎이므로 도로에서의 산 높이 최고 28m, 화구 바닥은 도로에서 지하 100m 깊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것을 백록담의 깊이(115m)와 비교해 보면 산굼부리 쪽이 17m 더 깊은 것으로 나타난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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