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분단이 낳은 우리 시대의 두 철학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한 사람은 그간 몇 차례의 좌절 끝에 다시금 귀국 문제로 술렁이고 있는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이며, 다른 한 사람은 나의 대학 은사로 북한에 머무르고 있는 윤노빈 선생이시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윤노빈 교수. 그를 떠올리면 가슴 속에 싸아한 그 무엇이 일렁인다. 아마 유신이란 엄혹한 한 시절에 그의 지적 세례를 받고 대학을 다닌 우리 70년대 철학도들에겐 잘은 모르지만 이런 공통된 에토스가 있으리라. 나는 그에게서 철학개론에서부터 고대철학, 현대철학, 현상학, 독일원전강독 등 많은 과목을 수강했다. 항시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 너털웃음으로 학생들을 편안하게 대했다. 강의는 엄격했지만 학점은 후하기로 전교에서 소문이 났었던 분이다.

나는 그를 통해 철학의 길로 들어섰고, 지금껏 대학 강단에 서 있다. 그의 가르침으로 비로소 나는 오랜 제도권 교육 속에서 화석화된 의식의 껍질을 깨고 나와, 인생에 눈을 떴고 세계를 보는 안목을 가졌다.

74년도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초판되었을 때, 대학생으로서 꼭 읽어야 할 책이라며 목에 힘을 주시던 선생님. 내 세계관의 절반은 이 책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전논리의 허구성을 까발긴 <전론>에 새까맣게 밑줄을 긋고 또 그으며 밤을 밝히던 기억이 30년이란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오른 지금도 새롭기만 하다. 반편이처럼 세상을 헛살았다는 탄식과 울분에 몇 날을 몸서리쳤고,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결코 이 부조리한 시대와는 타협하지 않으리라 얼마나 혼자서 다짐했던가. 얼마 안돼 이 책은 '불온'의 딱지가 붙어 전국 모든 책방에서 사라졌다.

교련복과 군홧발로 일그러진 동토의 '겨울 공화국'에서 20대 내 청춘의 영혼에 불을 지피고 그는 홀연히 이 땅을 떠났다. 꼭 20년 전의 일이다. 취직을 하여 서울에 있던 83년 겨울 어느 늦은 밤 하숙집에서 부산에 있는 친구에게서 걸려 온 전화로 엄청난 소식을 들었다. 윤 교수가 대만에서 가족과 함께 'NK'로 넘어갔다는, 실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보다 더한 충격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몇날 며칠을 그 충격의 파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그의 북쪽 소식을 확인하게 된 것은 최근 학민사에서 다시 펴낸 윤노빈 교수의 <신생철학> 서문에 실린 송두율 교수의 글을 통해서 였다.

"매일 아침 커피를 끓일 때마다 나는 윤노빈 선배를 만난다"로 시작되는 송 교수의 글은 선배를 향한 후배의 애틋한 심사가 절절이 묻어 나온다. 71년 윤 교수가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환교수로 와 있다 서울로 돌아가며 송 교수에게 주고 간 '싸구려 투박한 커피잔'을 송 교수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단다.

송 교수는 91년도와 그 이후 두 차례 평양 방문길에 윤 교수를 만났다고 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왜 그가 북을 택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제 북에 튼튼하게 그의 삶의 뿌리를 내렸다고 담담한 어조로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왜 그는 그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을 두고 '또 다른 우리의 반쪽'을 택했을까. 지금 이 물음에 자신 있는 대답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분명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의 사상을 압축한 <신생철학>을 봐도 그렇다.

<신생철학>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것은 동학의 인본주의와 생명존중 사상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다 헤겔 철학을 전공한 그에겐 인간과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제도와 권력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보건대 전두환 5공 정권의 억압적인 폭력 체제에 대해 한 자유주의 지성인이 할 수 있는 차선의 선택지가 북쪽이었을 것이다.

"분단은 감금이다"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는 그의 저서를 통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68년 독일 유학을 가 70년대 유신 정권 때 민주화 운동을 하던 중 두어 차례 평양을 방문한 '친북' 경력이 역대 정권의 괘씸죄에 걸려 몇 번의 입국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관계 당국의 훼방으로 무산되고, 36년이 지난 여지껏 조국 땅을 밟지 못한 '경계인'으로 살고 있다. 지난 해에도 준법서약서 작성을 요구 받고 출국 세 시간 전에 귀국을 포기해야 했다.

'제주출신 민주인사 송두율 교수 조건 없는 입국 귀향 추진위원회'의 서명에 4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참했다.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가 초청한 2003 해외민주인사초청 한마당에 송 교수는 강력한 귀국 의지를 전해왔다. 9월 18일자 한겨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오는 22일 송 교수는 그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자 세계적인 철학자 하버마스와 함께 일시 귀국한다고 한다. 국정원의 방문조사를 전제로 한 귀국 결정이지만, 성사된다면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달 말쯤 그의 의사에 따라 고향 제주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윤노빈, 송두율 두 철학자는 모두 분단 시대가 낳은 불운한 지성이다. 독재도 반체제운동도 없는 온전한 조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세계적인 학자로서 나라 발전에 튼실한 초석이 되었을 두 지성인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지금 우리 곁을 떠나 있다. 그것은 불온한 시대에 의한 강요된 선택이었다.

최인훈의 <광장>에는 분단 조국의 두 체제 이데올로기 그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고, 결국 제3국인 인도로 가는 타고르호 선상에서 몸을 날려 통한의 청춘을 마감하는 명준이란 불우한 지식인이 나온다. 더 이상 우리 시대에 제2 제3의 명준이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해외에 떠돌고 있는 민주인사들은 자의에 따라 무조건 귀국을 보장해야 한다. 적어도 정의가 서 있는 나라라면, 분단 시대의 상처를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그들이 더 이상 분단시대의 미아가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윤노빈 교수는 그의 <신생철학>에서 악마는 쪼개고 분단시키는 자, 인간을 절단하는 '절단기계'라고 설파한다. 좀 길지만 그의 말을 여기에 인용한다.

"악마는 정신과 마음을 쪼개 놓으며 사람들을 분열시키며 민족 내부 분단을 조장하며 민족들 사이를 갈라놓는 절단기(devil)일 뿐만 아니라, 갈라진 사람을 '가두어 두는' 감금자다. 악마는 일단 분열된 정신을 언어의 감옥에 감금시켜서 보수적 장벽을 뚫고 나오지 못하도록 하며, 분열시킨 사람들을 개인적 단자의 철창에다 감금하여 놓으며, 분열된 민족들을 민주적 공리주의, 민족적 이기주의의 장막에다 가두어 두려고 획책힌다. 모든 분단은 감금이다. 감금은 분단이다"

<김현돈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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