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점령군 미군의 들러리가 국익인가?"

문명의 반대는 야만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반문명적인 폭력이며 명백한 침략전쟁이다. 그것이 야만인 까닭은 자명하다.

국제법에 따른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도, 아무런 도의적 명분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석유 자원을 둘러싼 더러운 제 잇속 챙기기란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최첨단 살상무기를 동원한 무차별 공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하였으며, 찬란한 고대 문명의 유적을 잿더미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명사회를 철저히 조롱하고 비웃은 오만방자함의 극치였다. 문명의 시대는 가고 야만의 시대가 왔는가.

미국의 행위는 허황된 '팍스 아메리카'를 꿈꾸는 패권주의 이데올로기의 광신적인 집착이 빚은 결과이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될 것이 없다, '큰형'이 나서면 조무래기들은 군말 없이 지지하고 따라야 한다, 힘을 가진 자만이 정의와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논리다.

툭 하면 시비를 걸어 웃통 벗어 재끼고, 문신을 보이며 힘자랑 하려 드는 뒷골목 깡패와 무엇이 다른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와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한 미국은 자유도 평화도, 정의도 말할 자격이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가.

국제사회의 양심을 시험하고 있는 미국의 저 패권주의는 재선을 의식해 강력한 리더쉽을 보여주려는 부시와 부시행정부의 매파들, 최신무기 소비시장을 노린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 그리고 세상을 선악 이분법으로 갈라 우리는 선이고 너희는 악이라고 규정하는 기독교적 근본주의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칼로 일어 선 자 칼로 망한다고 했거늘 그들은 신성한 바이블을 구린내 나는 피로 더럽히려 하고 있다.

무엇이 국익인가

이런 판국에 지금 미국은 한술 더 떠 국제사회에 침략전쟁의 뒷 치다꺼리까지 떠넘기려 하고 있다. 철면피에 후안무치가 따로 없다.

우리나라에도 1개 여단 규모의 전투병 파병을 요청하고 있다. 때 맞춰 극우 보수집단과 보수 언론들은 드러내놓고, 또는 교묘한 논리로 파병론을 부추기거나 유도하고 있다.

평화헌법을 파기하고 전후복구지원법을 제정해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려는 일본군국주의를 본받아야 한다는, 가히 '엽기적인' 주장도 보인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국익'을 이야기한다.

국익이란 말만큼이나 애매모호한 말도 없다. 실체가 불분명한 허깨비와도 같은 것이 국익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도, 독일도 자국의 젊은이들을 침략전쟁에 내몰며 민족을 팔았고, 국익을 팔았다.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전쟁을 국익이란 달콤한 말로 포장했다. 세계사를 보라.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상징조작과 여론조작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곧잘 동원된 수사가 국익이란 허깨비였다.

전투병 추가파병을 둘러싸고 다시 이런 허깨비가 춤추고 있다. 수구 기득권층은 파병을 지지하면 국익을 위하는 애국자가 되고, 반대하면 국익을 해치는 매국자가 되는 것처럼 불순한 흑백논리를 펴고 있다.

대체 무엇이 국익이란 말인가. 불법으로 이라크를 침략하고, '종전' 후에도 불법으로 군대를 주둔시켜 주권국을 점령하고 있는 미국의 강권에 또 하나의 점령군을 파병시켜 그들의 들러리를 서는 것이 국익인가.

왜 무고한 이라크가 우리의 적이 되어야 하는가. 이라크를 공격하고 점령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일지는 몰라도 우리의 국익은 아니다.

미국은 그들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한미공조를 파기하고, 갖은 시비를 걸어 북한을 때릴 것이다. 미국의 주문대로 전투병을 보내면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되고, 북핵 문제도 해결되리라는 파병국익론자들의 발상은 유치하고 순진하다.

백 보를 양보하여 설사 그것이 국익이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국익을 위해 남의 나라 국민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인류보편의 가치고 이상인 반전평화의 기치를 드높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시민들과 굳게 연대하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국익'이다.

* 이 글은 제대신문 10월1일자 '무론유설'의 내용을 일부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김현돈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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