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미술인작품집 발간, 작고작가 21명 등 280명 작품 실려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 '미술사' 흐름 정리…비평의 부재 '숙제'

▲ 만농 홍정표(1907~1991)

▲ 소암 현중화(1907~1997)

▲ 송영옥 (1917~1999)

▲ 일석 장희옥(1918~1988)

▲ 해정 박태준(1926~2001)

 

 

 

 

 

제주미술은 제주의 지난한 역사 만큼이나 어려운 역경 속에서 싹을 피웠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미술을 배워온 선구자들의 손에서 제주 현대미술은 태동했고, 1950년대 한국전쟁을 겪으며 제주로 피난 온 화가들에 의해 제주미술은 탄력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 원용식, 김광추, 변시지, 양인옥, 백태준, 조영호, 장희옥 등이 일본에서 수학해 제주근대 미술형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들이 그 것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 3번의 입선작을 계기로 1939년 제주농업학교 강사로 초빙된 후 1955년 제주도미술협회를 결성, 초대회장이 된 김인지 화백 역시 제주미술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준 화가로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4.3사건의 광풍과 한국전쟁의 중심에 서 있던 제주미술은 강당과 다방에서 시작했던 '다방전시' 문화에서 한걸음 나아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히 한국전쟁은 제주미술 뿐만 아니라 제주문화계에 많은 수확을 안겨줬다. 비록 전시였지만 피난지라는 악조건은 화가들의 다양한 표현적 욕구를 불러일으켰으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찾기위해 혼신을 쏟았던 이들도 더러 나타났다.

제주현대미술의 개척자들

▲ 강태석(1938~1976)

▲ 한명섭(1939~2004)

▲ 김택화(1940~2006)

▲ 김병화(1948~1944)

▲ 김형찬(1971~2006)

 

 

 

 

 

60년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제주출신 화가들이 서울에서 미술을 수학한 후 고향에 내려와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것도 제주미술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사회적 억압기의 상황에서 1962년 예총제주도지회 첫 사업으로 '5.16기념예술제'를 열었고, 5.15군사쿠데타를 찬양하거나 이의 재건을 위한 이념과 반공이데올로기를 예술에 강요당하던 시절, 개인의 창작열은 오히려 고개를 들었다.

▲ 4.3의 상징 '까마귀'와 제주문화의 코드 '동자석'. 김형찬 작
이후 1907년대 초에 비로소 제주대학에 미술교육과가 개설되면서, 일본미술의 영향보다 서구미술의 흐름을 한국적으로 변형해 보려는 실험적 세대들이 제주미술을 한단계 도약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80년대 한국화단에서 일기 시작한 '새로운 미술운동'으로서의 민중미술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현실을 말하자'는 리얼리즘 미술운동은 '민족미술'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으로 1980년 11월 <현실과 발언 창립전>이 열렸고, 제주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1987년 그림패 '바람코지'의 민중미술 순회전 '민족해방과 민족통일 큰그림잔치'는 제주미술의 일대사건으로 기록되면서 전기를 마련한다.

당시 문행섭, 박경훈, 양은주 등이 결성한 '바람코지'는 제주시각매체운동연구회, 제주문화예술운동연합건준위로 확대.개편되면서 90년대 탄생한 탐라미술인협회와 제주민예총(1994년) 건설에 디딤돌이 됐다.

제주4.3이 미술의 한 소재로 주목을 받으며 캠퍼스 밖으로 걸어나온 것도 이 때쯤이다. 92년 '제주민중사-강요배의 역사그림전'은 4.3의 실체를 알리며 내면에 꿈틀대던 제주인의 마음을 흔들었고, 이후 지금까지 열리고 있는 '4.3미술제'는 4.3의 대중화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그로 부터 30년. 제주 현대미술은 작가에서 작품까지 어느 지역의 화단 못지않은 열정과 노력을 보이면서 '제주문화예술'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미술협회제주도지회가 주축이 돼 1년이 넘는 산고끝에 펴낸 '제주미술인 작품집'은 기록의 역사에서 평가받을 만 한다.

▲ 1년 넘는 산고끝에 태어난 '제주미술인작품집'. 614쪽 분량에 280여명 작가의 연보와 작품이 실려있다.
600쪽이 넘는 두툼한 작품집에는 시대를 풍미했던 작고작가 21인을 비롯해 한국화, 서양화, 조소, 판화, 공예·디자인, 서예·문인화 부문에 걸쳐 원로부터 신진작가까지 두루 망라됐다.

그동안 묻혀있던 작고 작가를 발굴해낸 점은 이번 작품집의 커다란 성과중 하나다. 홍종시 원용식 강용범 홍완표 장희옥 박충검 등은 어렵게 행적을 수소문하고 간신히 남아있는 작품을 찾아내는 녹록치 않은 고충도 있었다.

일본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송영옥 등 제주 미술사의 첫머리에 마땅히 조명했어야 하는 작가들의 면모도 새삼 주목하게 만든다.

그래서 '제주미술의 시원(始原)과 현재'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작품집은 제주미술의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제주 미술사'다. 물론 전국에서도 드물게 지역 출신 미술인을 한데 엮어 제미술사의 기초자료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가히 부끄럽지 않다.

김현숙 제주미술인작품집발간위원장(제주미술협회장)은 "제주미술의 독창적인 면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며 "제주미술은 연구하는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갈 길 먼 제주미술...'비평의 부재' 숙제

▲ 비어있는 작가위 커다란 '여백'. 누가 채울 것인가?
하지만 이번 작품집은 눈에 띄는 아쉬움을 드러낸다. 작가의 약력과 작품 옆에 비어있는 '공란'은 여전히 감내 할 수 없었던 '비평 부재의 문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로인해 통일되지 못한 작가 노트식의 품평과 에세이식 서술은 아쉬움을 넘어 제주미술이 앞으로 가야 할 '숙제'를 안겨준 듯하다.

그나마 작품집 말미에 실린 '제주미술문화의 현상과 비전'(김영호 중앙대 교수.미술사가), '제주 현대미술의 태동과 전개'(김유정.미술평론가)가 한가지 위안을 주고 있다.

그간 제주미술은 활발한 작품 활동 못지 않게 고민해야 할 '미술 비평'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데는 너무나 인색했다.

불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미술 비평가의 기근 현상은 제주미술이 공론의 장으로서, 보다 활기차게 내딛는 '한계점'으로 작용하곤 했다.

최근 몇년새 일련의 상징조형물들이 '한국미협'이라는 본부단체와 진정한 예술인임을 거부한(?) 몇몇 교수와 선배작가들의 재단에 끌려오는 듯한 결과를 초래한 것 역시 '비평의 힘'이 너무 절제된 탓이 적지 않다.

더욱이 미술인간 보이지 않은 '세(勢)'싸움은 제주미술의 도약을 발목잡는 요인으로 적지 않게 작용해 왔던 현실 또한 극복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90년대에 태동한 '탐라미술인협회'와 재경미술인들의 모임인 '한라미술인협회'는 물론 크고 작은 미술단체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지만 정작 '구심점'을 향해 모이지 못한 점도 넘어야 할 부분이다.

이 가운데 젊은 신예작가들의 실험성을 앞세운 창작 시도는 제주미술의 앞날에 적잖은 빛줄기를 비쳐주고 있지만 여전히 '비평을 통한 견인'의 필요성은 절감해진다.

김유정 미술평론가는 "국제화를 부르짖는 제주의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양과 질적인면에서, 이론과 실제 창작에서 다양한 시도와 경험이 요구되고 있다"며 "제주미술의 열매가 풍성하기 위해서 미술가 자신의 조형적이 탐구와 시대를 통찰하는 철학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여기 1년여 동안 꼬박 미술인작품집 발간을 위해 눈코뜰새 없었던 편집위원회의 후기를 부친다.

▲ 출판기념회=  22일 오후 6시 제주시 탑동 팔레스호텔 10층 연회장. 문의 017-692-1492.

▲ 유일하게 수채화가의 길을 고집하고 있는 김원구 화백 작품. 제주생활문화사에서 해녀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 편집후기(編輯後記) -

『제주미술인작품집』은 제주미술의 시원(始原)과 현재를 조망할 수 있도록 집대성된 자료집이다. 2005년 후반기에 이 책의 발간을 위하여 우리 미술협회에서는 재정확보를 위한 행정적인 추진을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구성된 ‘제주미술인작품집발간 편집위원회’는 전반적인 기획과 자료수집에 관한 밑그림을 그렸다.

▲ 조영호(1927~1989)
2006년 초, 실제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봉착하는 사안들은 모두 쉽지 않은 난관들이었다. 과거 제주출신 작고작가들을 조명했던 사례는 김인지, 김광추, 강태석, 조영호, 이상 4인을 위하여 1991년 세종갤러리에서 이루어진 ‘도내작가 유작전’이 유일했을 정도로 극히 미미했으므로  작고작가의 작품과 연보를 발굴하기 위하여 기존의 자료에 기댄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항해의 방향타는 도서관의 장서를 추적하는 방법, 그리고 원로 선생님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물어물어 미로를 빠져나가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모 일간지 기자가 다뤘던 문화의 핫이슈 중, ‘故 장희옥 선생에 관하여 단 네 줄의 기사를 쓰기 위해서 꼬박 열흘을 보내버렸다’ 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실감나는 현실이었다. 그 와중에 성심껏 자문을 해 주시던 김택화 선생님을 오랜 지병으로 인하여 잃어버리는 아픔도 겪었다. 

▲ 홍완표 작

 현존 작가들은 이미 개인의 이력들이 각종 전시를 통해 공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자료수집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각 소속 단체별로 공문서를 보내어 자료협조를 요청하였으며, 이후 미도착 자료들은 개인별 e-메일 송부, 전화확인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수차례 거침으로서 자료를 수합할 수 있었다.
 

▲ 남송 홍완표
아쉬운 점은 이 발간사업이 과거와 현재를 통해 제주미술의 궤적을 기술하는 중요한 사료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혹은 주변적 요인들로 인해 몇몇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분명 역사는 기록으로 존재한다. 그러기에 현재적 갈등이라는 눈앞의 미세한 세포적인 사안들 때문에 이 발간사업에 동참하지 못한 개개인에 대해서는 끝내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제주미술인작품집』발간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도움이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원년과 제주도제실시 6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이 발간사업에 흔쾌히 지원금을 교부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소장 자료의 촬영에 협조해 주신 장거수 선생님(故 장희옥 선생님의 子), 임방옥 여사(故 박태준 선생님의 미망인), 홍성오 선생님(故 홍정표 선생님의 子), 강영자 선생님(故 강태석 선생님의 매), 홍성수 선생님(故 홍완표 선생님의 子), 양 진 선생님(故 조영호 선생님 작품 소장), 제주교육박물관 양종훈 선생님(故 원용식 선생님 자료협조), 허영선 선생님(故 송영옥 선생님 자료협조)과 기당미술관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발간 사업에 성심껏 자문하여 주신 故 김택화 선생님, 홍순만 선생님, 문기선 선생님, 양창보 선생님, 고영만 선생님, 부현일 선생님, 그 외 일일이 거명하지 못한 자문위원들과 멀리 영국의 노팅험에서 원고를 집필하여 송부해 주신 김영호 선생님, 긴 시간 동안 작고 작가의 자료 발굴에 동행하여 주신 김유정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제주미술인작품집』의 발간을 위한 자료수집 과정 중 미궁처럼 꼬였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면서 생기는 과욕은 냉철하게 억눌렀음을 밝힌다. 이후 이 책자를 바탕으로 방대한 제주미술의 역사서가 다시 기술될 것이며, 좋은 기획의 전시를 통해 재조명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인 것이다.

등재되지 못한 작가들에게는 죄송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자격요건을 둘 수밖에 없는 발간사업이기에 그러한 이유로 더더욱 죄송스러운 것이다. 이후 더 중요한 역사를 기술하는 편찬사업에서 반드시 모실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이 완결되어서 감히 편집후기를 쓸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또한 일년여를 동고동락한 편집위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06년 12월 제주미술인작품집발간 편집위원장 양 경 식

 

▲ 장희옥 작
▲ 송영옥 작
▲ 김병화 작
▲ 김택화 작
▲ 한명섭 작
▲ 조영호 작
▲ 강태석 작
▲  '마음은 연꽃처럼 몸은 파초와 같이'. 만농 홍정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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