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작가회의 2006년 하반기호...'재일제주작가 문학세계' 특집

'사전에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내 표현 중에 가끔 '조선'이라는 어구가 나오는데, 이건 남북을 통한 총체어로서의 '조선'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재일작가 김시종 '나의 문학 나의 고향' 첫 글)

지난해 맵찬 날씨가 이어졌던 11월 중순. 제주작가회의가 마련한 '재일 제주작가와 떠나는 문학기행'이 있었다.

▲ 제주작가 17호.

당시 고향 땅에 뿌리를 두었으나 미처 뿌리를 두지 못했던 시인은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모든 생명에 사무치고 있음에 몸을 떨어야 했다.

재일동포 시단의 상징 김시종 선생. 1949년 6월 4.3사건이 한창이었던 빨갱이 사냥의 공포에서 벗어나 겨우 일본으로 탈출한 그는 자신이 자란 고향을 떠나 50여년간을 가깝고 먼 일본땅에서 살았다.

격동의 시대를 헤쳐오며 자아정체성에 몸부림을 쳤을 노 시인은 그렇게 고향 땅에 오랫동안 우두커니 선채 상념에 젖은 눈빛으로 제주산야를 바라봐야만 했다. 그는 지난해 일본에서 시선집 <경계의 시>를 냈고, 곧 국내 번역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이 시대. 경계의 벽을 허무는 문학은 여전히 소통의 매개이자 희망이다.

'문학은 여전히 장벽을 허무는 소통이자 희망이다'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가 지난해 말 펴낸 열일곱번째 '제주작가'는 그런 재일 문학인들의 갈망과 마치 '누군가에게 진 빚' 처럼 이 시대에 응답하려는 제주작가들의 마음을 담았다.

특집편으로 엮은 '재일 제주작가들의 문학세계'는 격동의 세월을 헤쳐 경계선에 선 그들의 고백과 소리를 생생히 전한다.

허영선씨(시인·제주작가회의 부회장)는 '이 견뎌야만하는 시대에'라는 책 머리 컬럼을 통해 "그들은 우리 분단체계가 안고 있는 모순과 제주4.3이 엄습했던 상처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얼굴들이며, 그렇게 재일의 삶 속에 격렬하게 들어간 이 땅의 근현대사"라고 표현했다.

재일작가중 제주도를 연고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총17명. 이들은 시, 소설, 아동문학, 논픽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글을 통해 내면의 절박함을 뿜어내고 있다.

이에대해 재일작가 김환기씨는 '재일작가들의 4.3에 대한 인식'에 통해 "역사적 사실과 픽션의 조화를 통해 침묵했던 역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며 "역사적인 비극의 현장을 냉철한 이성의 목소리로 고발하면서도 제주의 역사, 언어, 민속, 생활에 이르는 다양한 향토적 정서를 살려내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고 평했다.

이번 특집에는 김환기씨 외에도 강영기씨의 "소리를 통한 '조국' 정체성 인식", 김시종씨의 "나의 문학, 나의 고향", 김계자씨의 "재일 코리언의 삶과 문학", 김길호씨의 "번역 문예지<북십자성 문학>과 '문예동'기관지 <불씨>", 김창생씨의 "나의 새로운 문학적 과제", 원수일씨의 "신(神)의섬, 제주" 등이 실려있다.

4월의 노래
                                                                                                     김순선

숨죽이다 하얗게 질려버린 산벚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아직 이른 봄날
바람이 검붉은 허리를 내려칠 때마다
연분홍 비늘꽃을 무량무량 떨군다

하늘도 적막 속에 조각보를 잇는 선흘리 곶자왈
코흘리개 아이들 병정놀이인 듯
토벌대 총성 앞에 무참히 고꾸라진
목시물굴 속 영혼들
은신처라 숨어든 어둠 속 그늘집이
불꽃을 잠재운 합묘로 떠올랐다

내 어머니 가슴에 용암으로 굳어버린
덩어리 덩어리
바람도 쉿! 큰 소리 내지르지 못하던 절망을 딛고
암갈색의 산벚나무 저리 키를 높였는가
소름은 저리 돋아 살비듬을 떨구는가

해원으로 떨어지는 연분홍 비늘 하나 내 몸에 꽂혀
쥐도 새도 모르게 들려주던 어머니 사설 속
징용으로 끌려간 외삼촌의 서슬 푸른 눈을 만나다
꽃 진 자리 연둣빛 잎으로 돋아난다

또 이번 호에는 지난해 수상한 제주작가 신인상 수상작을 포함해 아동문학가 장영주씨 등 제주작가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시 부문 가작상을 수상한 김순선씨의 '4월의 노래'는 "체험을 통한 생생한 기록이 사물의 이미지와 결합돼 꽃비늘처럼 번쩍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렸을때 어머니가 조근조근 들려주시던 이야기의 실체와 만남에 늘 목말라했던 김순선씨. 그녀는 "지난4월, 제주의 4월을 밟아보는 역사기행에서 더 큰 목마름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녀는 헛묘 앞에서, 총을 맞은 허리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품고 있는 팽나무 앞에서, 음습한 적막속의 목시물굴 앞에서 젖고 또 젖었다고.

아동문학가 장영주씨가 창작하는 동화의 큰 기둥은 학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우정, 꿈과 상상의세계를 담아내는 것이다.

장영주씨는 1989년 '문교당국에 바란다'등 주간 '교육신문' 투고를 시작으로 50회에 걸쳐 여러 신문을 통해 독서를 통한 인성지도에 앞장섰으며, '해바라기의 꿈'이란 첫 작품집을 발간, 1998년 '7학년0반 꾸러기들'로 한국아동문학작가상을, 2006년 동화구연 길라잡이 '구연방법론'으로 한국동화구연가상을 받았다.

기획연재 '작가를 찾아서'에서 그가 걸어온 아동문학의 길과 신작동화 <철떡꾸러기>를 만날 수 있다. 제주작가 실천문학사/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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