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관련 '도민전체 여론조사'의 문제점
"국책사업이니 국민여론조사로 결정하자면 수용할 것인가?"

# '도민 전체 여론조사'라는 방식은 과연 타당한가?

김태환 도지사께서 해군기지 문제를 '도민 전체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한다. 해당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는 후보지 선정자료로만 활용(찬성비율이 높은 쪽을 후보지로 선정)하는 것이니까, 결국 결정은 '도민 전체 여론조사'를 통해 하겠다는 것이다.

해군기지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특히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의견수렴을 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한다지만, 반대주민들이 수용할 수 없는 방식이고 정당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방식이라면 오히려 관-민, 민-민 갈등만 확대재생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려면, 몇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 주민동의인가 도민동의인가?

해군이나 정부는 여러차례 '주민동의'를 전제로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 여기에서 '주민동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상식적으로는 해군기지로 인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범위내에 거주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동의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민동의'와 '도민동의'가 헷갈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도민동의'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가 의견수렴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 피해는 제주도가 보는데 결정은 국민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면?

그러나 제주도민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국민여론조사라는 명목으로 다른 시ㆍ도 주민들이 참여하는 여론조사에 의해 결정한다면, 과연 승복할 수 있을까? 아마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지금 후보지로 거론되는 화순이나 위미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라는 방식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주민투표를 하든 여론조사를 하든 투표나 조사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결과에 대해서도 함께 책임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이라고 판단해서 무책임한 투표(의견표시)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의 책임하에 스스로 결정한다'는 참여의 정신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특히 찬반이 대립하는 사안의 경우에는 그 사안으로 인한 피해와 이익이 병존하는 경우인데, 피해와 이익을 함께 받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이 점은 주민투표나 여론조사와 같은 참여적 의사결정방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점이다.

그런데 김태환 도지사께서는 어제 '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라는 방식을 택하겠다고 했다. 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많으면 그냥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합리성을 가지려면,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피해와 이익이 도민 전체에게 미치는 경우이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실제로는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의 주민들은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호소하지만,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도민들은 '본인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관심도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도민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라는 방식은 설득력이 없다. '주민동의'를 전제로 한다면 '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주민동의'를 얻는 방법으로는 부적절하다. 오히려 여론조사의 범위를 도민전체로 설정한 것은 이해관계가 없거나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다수의 힘'을 이용해 후보지로 거론되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의사를 누르겠다는 '편의적 발상'에 다름아니다.

# 잘못된 결정이 낳는 것은 분열과 갈등이다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공존할 때에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그런 경우에 정책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은 매우 중요하다. 내용적으로는 의견이 다르더라도 절차에 대해서는 최대한 논의를 해서 합의를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충분한 논의를 해서 찬,반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 여론조사를 하든 주민투표를 하든 그 방법의 적정성, 합리성이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주민투표를 하든 여론조사를 하든 참여할 주민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할 것인지부터 논의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자문도 구하고 찬ㆍ반 양측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에 승복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역간 갈등, 찬ㆍ반주민간의 갈등만 심화될 우려가 있다.

그런 점에서 어제 김태환 도지사께서 발표한 방법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그런 방식은 오히려 갈등을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런 방식은 반대하는 해당 지역주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사실상 일방강행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결정자든 공무원이든 도민이든 해당 지역주민의 입장이 되어 고민도 하고 스스로의 생각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하승수 제주대 교수·변호사 ]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