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의 산물] 113, 협재리 섭재 산물

협재(挾才)란 이름은 재주 있는 석학자(碩學者)가 많이 배출되는 마을이란 뜻이다. 예전에는 섭재(섭지), 협재암(섭재바위)이라 했다. ‘암’이란 지명을 사용한 것으로 볼 때 바위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주호시대 선사유적(州胡時代 先史遺蹟)으로 볼 때 동굴을 주거지로 삼고 굴 속 산물을 식수로 쓰면서 넓은 해안 지역과 산악 지역을 생활 무대로 한 혈연 공동 집단이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재암천, 매치물, 원물, 수릉물, 속바지물, 샛굴물 등 산물이 풍부했던 마을이다.
 
동굴을 주거지로 삼은 주호시대 당시 굴 속 샘으로 추정되는 산물이 재암천(財巖泉)이다. 재암천은 한림공원 방면 한림로에 ‘협재리재암천’이란 표석 아래 있는 작은 동굴(대략 길이 100여m, 넓이 6m, 높이 4m) 안에 있다. 이 산물을 섯굴물 또는 마음을 씻는다는 뜻으로 세심천(洗心泉)이라고도 한다. 동굴은 지붕과 같은 궁륭형(穹窿形)인 바위로 형성되어 있어서 재암(財巖)이라 한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재암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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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암천 동굴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동굴은 천연기념물 제236호 한림용암동굴지대(소천굴, 황금굴, 협재굴, 쌍용굴)와 연결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하얀 모래가 덮어진 굴 안에 들어가 보면 넓이가 80보 정도이며, 석종유들이 있고 서북쪽에 두 개의 굴이 있어 소협재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종유가 남아 있지 않다.

1933년에 세워진 입구 표석에도 “천연 석실로 명승고적이며, 석종유와 차가운 샘(천)으로 병든 몸 목욕하면 약물이란 전설이 있다”고 적고 있다. 입구에 김찬흡 선생이 고증한 재암천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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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암천 유래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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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암천 출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여름철 풍류객들이 동굴을 찾아 물 한 모금으로 심신의 피로를 풀고 한시를 짓고 시조를 읊던 장소였던 재암천은 예부터 약천이라 하였으며 굴속 동측 벽 가장자리에 조그만 사각 물통이 놓여 있다. 그리고 물통 앞에는 물허벅을 올려놓는 물팡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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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암천 식수통과 물팡.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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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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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팡.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 주변 바닥에는 맑고 깨끗한 모래가 깔려 있고 동굴 내부는 겨울에는 온돌방처럼 온기가 있어 따뜻하고 여름에는 냉장고와 다름없이 냉기가 가득한 더없이 좋은 피서처의 조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주민들이 물 맞으러 모여 들었는데, 굴 안의 산물로 목욕을 하면 만병이 통치된다고 알려진다.

협재해수욕장 건너편 통물동네에는 통물이 있다. 이 산물은 통같이 깊게 움푹 패인 웅덩이에서 솟는 물이다. 바닷물이 밀려오는 밀물 때는 물허벅을 물에 담가서 물을 뜰 수 있으나 썰물 때는 물 나오는 곳까지 내려가서 바가지로 떠야만 가져올 수 있다. 이 산물은 썰물이 되면 많은 양이 용출되는 큰물이다. 협재리 주민 전부가 이용할 만큼 마을의 귀한 식수원이었다. 지금은 옛 모습은 사라지고 육지의 두레박으로 물을 뜨는 우물통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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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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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통물에서 동측 500m 떨어진 해수욕장 동측 끝 지점에 매치물(메치물)이란 산물도 보존 중이다. 이 산물은 협재리 중앙에 위치해 있고 이 동네를 ‘매치물동네’라 부른다. 식수이자 빨래터로 이용한 여자 전용의 물이다. 매치물로 부르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멜(멸치의 제주어)이 드는 물이라 하여 멜치(멸치)의 변음이 아닌가 추측한다. 산물은 물동산에서 내려온다고 하며 매치물로 내려가는 길목인 협재로 일대를 물동산이라 한다.

이 산물은 공유수면 조간대에 있던 물로 지금은 바닷가 쪽 도로 가장자리에 있다. 공유수면을 매립하고 도로포장을 하면서 축소되어 식수통은 찾아 볼 수 없다. 바닥에 깔린 암반을 물팡으로 사용했던 옛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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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그러나 애석하게도 협재해수욕장 동측에 목욕할 때 사용하던 남자물(남탕)과 여자물(여탕)은 매립됐다. 남자물에는 해녀와 물허벅 진 여자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 장소, 여자물은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다. 왜 그랬는지 아쉽기만 하다. “물질광 물콘 안 막나.(물길과 물꼬는 안 막는다)”란 제주속담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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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된 남자물(남탕)과 여자물(여탕).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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