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광의 제주 산책] 2. 자연의 섭리 몸소 보여주는 무상의 계절 4월

새로운 인연은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올봄 제주에 터를 잡은 본산 정은광 교무(원불교 서귀포교당) 역시 마찬가지다. 원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철학, 미술, 미학에 조예가 깊은 정은광 교무가 20일 간격으로 [제주의소리]에 ‘제주 산책’을 연재한다. 신실한 신앙심과 따뜻한 시선으로 섬 곳곳을 누비면서 풀어낼 글과 그림을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도에 와 첫 번째 받은 선물이 책이었다.

선배가 준 《때가 되면 꽃이 피리라》라는 금강경(金鋼經)의 해석서이다. 아시다 시피 금강경은 불교경전 중에 가장 으뜸이라고 하는 책이다. 다이아몬드를 옛날에는 ‘금강’이라 했던가. 

사람들은 금강경 구절을 외우고, 독송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다듬는 연습을 하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사처럼 생각한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금강경의 내용 중에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란 내용처럼 이미 지나간 시절은 붙잡을 수 없고, 또 돌아올 미래도 지금 붙잡을 수 없으니, 미리 걱정을 해본들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한다.

결국은 현재 내 마음속을 보라는 거다. 그래서 현재 내가 살아가는데 힘들면 쉬고 괴로움이 생기면 그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마음에서 오는가 아니면 주변 환경에서 오는가를 깊이 통찰해 봐야한다. 내가 고통을 견딜만한가 아니면 바람처럼 넘겨버려야 하는가를 스스로 단정해 나가야 공부하는 수행자의 몫이 된다.

흔히 돈오돈수(단박에 깨우쳐 단박에 수행을 하게 되는 상황)와 돈오점수라 하여 먼저 깨달음을 얻은 후에 나중에 서서히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가 설왕설래 하다.

그것도 알고 보면 다 인간의 사념이고 번뇌다. 번뇌라 하는 것도 “번뇌 즉 여래” 라는 말이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낯설지 않다. 

번뇌(苦痛) 자체가 바로 내 삶의 깨달음과 함께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에는 색(色)이 공(空)이고, 공(空)이 색(色)이며, 반야심경의 불생불멸이라고 하는 것도 원래 나고 죽음도 없는 사이에 잠시 에너지로 왔다가 에너지가 ‘시절 인연’이 다하면 떠나간다는 뜻이 여기에 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할 때 우리 교당 대문 앞에 30년생 왕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벚꽃은 피기 전에도 망울이 좋고, 피었을 때도 좋고, 떨어질 때도 더 없이 좋다. 바람에 나부껴 한없이 눈 내리듯 떨어지는 것을 보면, 아낌없이 내려놓음의 현시(現示)가 벚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낌이 없다’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건 수행자의 말이 세속에 전해진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행함에 그 무엇을 의미주지 말라. 알고 보면 전생에 내가 받은 것을 이생에 인연이 있어 그대에게 주는 것이니, 받는 사람도 괴로워할 것도 없고 주는 사람도 너무 주었다고 상(相)을 내지 말라는 뜻이 바로 ‘아낌없이 주었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삼물청정(三物淸淨)이란 불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다. 주는 사람의 마음이 깨끗하고 주는 물건이 또 한 깨끗하며, 받는 사람의 마음도 깨끗하게 받아들여야 세 가지의 모습이 청정(淸淨)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내가 무엇을 너에게 주었으니 보답을 바라거나 나중에까지 생각해가며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그 공덕이 별로 없다는 뜻이 된다. 사람마음이 간사한 지라 그렇게 마음먹기는 어렵다.

그래서 물건의 주고받음에는 ‘항상 고맙다’는 뜻이 있다. 줄 때도 고맙고, 받는 사람도 고맙고 그래야 삶이 조화롭고 재미난다. 물론 물건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청정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다.

벚꽃이 필 때 찬바람이 불고 비가 오지만 시간을 기다려 활짝 피었고, 달밤에 그 꽃을 혼자 보노라면 아까움을 어쩌지 못했는데, 어제부터 꽃이 핀지 열흘이 안돼 바람결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자연은 왔으면 가는 것이고 또 변화하는 것이고 또 다시 온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4월의 봄은 무상의 계절인지도 모른다. 

정은광의 벚꽃 그림 작품. ⓒ제주의소리
정은광의 벚꽃 그림 작품. ⓒ제주의소리

명예도 오래 지키기 어렵고, 직책도 그렇고 내 삶의 건강도 영원히 지킬 수는 없다. 그러니 삶이나 자연이나 무상을 이루고 그 무상이 꽃피고 지는 것을 봄이라고 하며 부처님의 깨달음의 달도 음력 사월초파일이 아닌가. 

원불교를 창시하신 소태산 대종사님도 4월 28일에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주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生滅)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뚜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성인(聖人)들의 깨달음의 달이 무상의 달. 4월이리라.

# 정은광은?

정은광 교무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학(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사적관리위원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삶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우리 삶의 이야기 칼럼을 집필했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 등이 있다. 현재 원불교 서귀포교당 교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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