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17. 아이는 어른한테 배우고, 어른은 아이한테 배운다

* 어룬안티 : 어른한테(에게)
* 뱁곡 : 배우고
* 아이안티 : 어이한테(에게)

늙도록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한다고 말한다. 죽을 때까지 배워도 무궁무진한 것이 배움이다. 유치원에서 시작한 배움이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대학원을 나온다고 다 배우지 못한다. 배움에는 한도 끝도 없다. 
  
그래서 나온 말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다. 평생교육을 강조하는 말이다. 배워도 또 배워도 끝이 없기도 하거니와 배우는 데 따르는 그 즐거움을 무엇에 비할 것인가.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 늘그막에야 한글을 익혀 시를 쓰는 할머니들 얘기는 한마디로 감동적이 아닐 수 없다.

학문이 도저(到底)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자연히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마련이다. 그게 바로 후학 양성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침으로써 사회에 봉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보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비단 지식이나 학문에 국한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 경륜을 쌓은 사람들이 아랫사람에게 일상생활 속의 언행과 예의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배워 주게 된다. 학교 교육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연스레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가 이뤄지는 것이 인간 사회다.

한데 이 배움이 반드시 어른이 아이에게로 베풀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아이의 언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거나 배움을 받을 수 있다.

달리 ‘어룬도 아이안티 뱁나’라 한다.
  
배우는 일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어른도 아이한테 배울 게 있으면 당연히 배워야 한다. 아이를 철없다, 어리다 해서 나무라거나 무시해선 안 된다.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어른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해 어린이날 기념행사에 참여한 부자(父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해 어린이날 기념행사에 참여한 부자(父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일찍이 우리 선인들이 이를 깨달아 늘 하던 말이 있다. 

“애기 업개 말도 들어사 혼다.” 

저 혼자 안다고 거들거릴 게 아니라, 손아랫사람 말에도 귀를 기울이라 함이다. 비록 어린 사람에게서도 참고할 만한 좋은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랫사람에게서 좋은 방책이 나온다면 그런 소득이 어디 있으랴. 
  
사회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순진함이야말로 어른이 본받아야 할 삶의 정도(正道)임을 알아야 한다. 어른이 어떻게 아이에게 배우고 본받겠느냐 해서 아이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큰 손실이 따로 없다.

디지털시대다.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상상을 초월한 변화다.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관습과 전통과 옛 법식을 자녀들에게 배워주던 건 옛날 일이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배워야 한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컴맹인 어른은 아이에게 마땅히 배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얼마나 바싹한가. 참 빠르고 정확하다. 정보처리능력이 장난 아니다. 배워야 한다. 시대를 호흡하려면 아이들에게 배워야만 한다.

배우는 일엔 어른 아이, 위아래가 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하나 덧붙이려 한다.

워즈워스는 시 〈무지개〉에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다. 왜 그랬을까?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마냥 뛰누나.
내 인생 시작할 때도 그러 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 하노라.
늙은 때 또한 그러 할 것이고
아니면 죽을지라도
아니는 어른의 아버지
나는 내 하루하루가
자연이 되기를 바라노라.

-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무지개> 

시에서, 워즈워스는 소싯적이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아니면 늙은 때에도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뛸 것이라 말하고 있다.

만약 무지개를 바라보고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이는 곧 죽음이라고 말한다.

1980년대 민족‧민중문학을 주창한 시인이요 문학평론가 채광석은 ‘네 살배기 수왕이’를 통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를 말했다. 틈만 나면 외사촌 헌신이와 싸우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이노오옴!”이라고. 아들 수왕이는 바로 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따라한다.

그렇다. 아이의 마음은 텅 빈 백지와 같다. 그리고 티 한 톨 내려앉아도 흠이 될 것처럼 순수하고 순진하다. 그러므로 어떤 색깔을 칠하느냐에 따라 원색 그대로 그려진다.

그래서 ‘아니는 어른의 아버지’라 하는 것이다.

나쁜 것, 더러운 것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순진무구함, 바로 어른들이 본받아야 할 소중한 가치다. 그러니,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아이에게 한 수 배울 일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