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 숨, 쉼] 해마다 봄이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친구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나는 듯 떨어져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과장법을 빌면 우리 집은 가히 동물의 왕국이다. 마당을 들어서면 철망 우리에서 진돗개 바우가 꼬리를 흔들고 집안에 들어가면 도도한 고양이 루치가 있다. 바우의 눈길이 닿는 건물 처마 밑에는 강남에서 온 제비식구들이 둥지를 틀었고 길고양이 서너 마리가 자주 우리 집을 방문한다. 거기에 날마다 아옹다옹 하는 사람들까지 가세하면 작은 동물의 왕국이 되겠다.

개, 고양이, 사람들이야 매일 보지만 제비는 매년 봄이 되면 돌아오고 가을이 되면 떠난다.

제비가 우리 집에 둥지를 튼 것은 3~4년 된 것 같다. 콘크리트 마당에 자꾸 자잘한 흙덩이가 떨어져 있어 주변만 둘러보길 며칠 째던 어느 날, 제비 집을 발견한 것은 눈 밝은 우리 딸이었다.

“엄마, 제비가 집 지엄심게.”
“어디?”
“저기.”

딸의 손끝을 따라 처마 밑을 보니 지푸라기를 흙으로 짓이긴 둥지가 반 쯤 지어져있었다. 신기했다. 그날부터 오며가며 둥지를 지켜봤다. 얼마 안가 둥지는 완성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똥이었다. 제비 똥. 둥지 아래는 물론이고 마당 곳곳에 제비 똥이 묻어났다. 아 저걸 어쩌지,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가을이 되어 제비들은 떠났고 이듬해 봄이 되니 또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머리를 써서 둥지 아래 종이박스를 깔았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도움은 되었다.

처마 아래 둥지 안에서 어미 제비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처마 아래 둥지 안에서 어미 제비가 물어온 먹이를 새끼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몇 년이 지났건만 제비새끼들이 먹이 받아먹는 모습은 작년에 딱 한 번 봤다. 둥지 위로 머리만 내밀어 입을 쫙 벌린 새끼들에게 어미아비 제비가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다 주고 있었다. 잠깐 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일어났다. 너무나 인상적인 모습이라 다시 보고 싶어 오며 가며 흘끗 거렸지만 더 보지는 못했다. 한 번 더 그 모습을 보고 싶어 요즘은 틈만 나면 둥지를 올려다보는 게 습관이 됐다.

우리 집 처마에 둥지를 틀었다고 우리 제비도 아니건만 난 가끔 설거지를 하다 창밖을 내다본다. 전기 줄에 제비들이 쭈르르 앉아있다. 저 중에 우리 집 제비도 있을 텐데, 혼자 흐뭇해하며 열심히 찾아본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나중에 똥 치울 일을 걱정한다.  하지만 찾아온 식구를 내칠 수는 없는 일이라 일단 걱정은 접고 우리 집 제비 찾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혼잣말을 하며 웃는다. 제비야 제비야 우리 집 제비야, 강남 갔다가 내년에 돌아올  때 흥부네 박씨 하나 갖다 줘. 나도 슬금슬금 톱질이나 해보게.

제비는 해충을 잡아먹는 천연해충방제기라 한다. 그런데 농약이 남용되면서 먹잇감도 줄고 다른 환경적 변화로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서울시는 몇 년 전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제비 보호에 힘쓰고 있다. 제주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처럼 제비에게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와산리에 사는 내 친구는 올 봄에 페인트 건물 벽이 너무 미끄러워 제비들이 집짓기 힘들어하자 나뭇가지를 받쳐줬다 한다. 다 사라진 후에 제비를 그리워하기 전에 내 친구처럼 있을 때 같이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http://jeju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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