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광의 제주 산책] 4.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 같은 마음씨

가뭄이 조금 심하다 했는데 엊그제부터 연삼일 밤낮으로 비가 내렸다. 서귀포는 귤 농사가 으뜸이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민들은 물주기에 바쁘다. 이른 봄에 거름을 내고 다음에 나무전지를 하고 농약을 한두 번 하고 비가 내려주면 귤농사는 잘된다. 

귤꽃이 필 때는 꽃향기로 마을을 넘실거린다는 이 마을 사람들의 자랑거리다. 육지 사람들은 귤 향기의 그 짜릿함을 잘 모른다. 또한 귤꽃이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른다. 다들 “한라봉이 어떠니, 천혜향이 어떠니”하고 입맛 이야기만 할뿐 귤 나뭇가지 전지에서부터 봄에 꽃이 피고, 비 내리고 살균제를 주고 하는 과정을 알 리가 없다.

서귀포 사람들 표상은 농심(農心)의 마음이고 부지런하고 또한 마음 씀씀이가 정이 가득한 편안한 여백이다.

남쪽 바다에 별이 뜨거나 달이 뜨거나 또는 고요한 파도소리를 들으면 아마 17세기 네덜란드 사람 헨드릭 하멜(당시 36세)이 남쪽 대정현 차귀진 해변에 표도(漂渡)하였을 때(1653년 8월 15일), 그 순수한 땅이 지금보다 더 멋지지 않았을까. 혹 여기가 천국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였고 그는 육지에 올라가 벼슬까지 하고 문물을 전해주고 나중에는 야반도주하듯 조선 땅을 떠나갔다. 무려 14년의 조선 땅 체험기의 두려움과 생소함의 땅이 바로 제주였다. 그리고 그는 <하멜표류기>(1668)을 저술하여 조선의 풍속과 제주사람들의 순수함의 이야기도 나눠주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이번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법당에 가득 채워 등촉을 했다. 분홍색 댕기 속처럼 아름다운 연등과 노란색 프리지어처럼 질투의 색, 꽃잎을 붙인 연등 그리고 백련(白蓮)이라 하는 맑고 청아한 연등을 달아 불빛을 비추니 우리 대중 교도(敎徒)들은 마음으로 연꽃의 그 아름답고 맑고 향기 나는 삶을 살고자 스스로 내면으로 담아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세상의 구진 속세에서도 오롯이 자기 갈길 만가는 사람들도 있고 또 남의 눈치 안보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수행을 하는 성태(聖胎)를 가진 교도님들도 있으며 종교를 떠나 더 적소(適素)한 마음을 가진 숨어사는 도인들도 세상에는 많다. 

그래서 연꽃은 위로 화화중생(花和衆生)의 향기를 나투고 아래로는 중생들과 함께 하는 동병상린(同病相燐)의 마음 아픔을 나눈다. 그 자태는 ‘진흙 밭 고인 물에서도 그 멋진 꽃을 피우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손 사례 치듯, 연잎에 비 내리면 구술만 만들어 아름답게 내려놓는다. 특히 백연의 그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원불교 수행자 교무들도 이와 같다. 세상에 태어나 진흙 같은 세상에도 말없이 수행을 나투며 깨달음과 수행의 향기를 함께하고 전해준다. 

원불교 성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연잎에 비 내리니 
구슬만 궁글더라 
그다지 내린 비가 
흔적이 어디련고

이맘도 그러하면 
연화대(蓮花臺)인가 하노라.

제주올레 길을 구상하고 몸과 마음으로 애간장을 녹이며 제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다가서게 한 올레 길 개척자, 서명숙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복잡한 머리에 희망과 긍정의 근육을 길러야 하는데 사람들 거의 모두가 머릿속에는 비교, 질투, 명예, 불안 등의 쓰레기 비계 덩어리를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이제 올레길을 걸으며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희망, 긍정적 사유, 또 마음 내려놓기, 명상 등으로 이 길을 걸으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치유가 되리라 굳게 믿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제주올레 길을 다 돌려면 37일 정도가 걸리며 그 길을 처음 낼 때 사유지의 개인땅이 많아서 땅 주인에게 사정도 하고 동정도 구하며 넓이 “1m 정도만 길을 내줍사~”하고 일일이 찾아다녔던 세월과 시간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가 비록 서귀포 사람이었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았었지만 고향에 돌아와 고향바다와 하늘과 땅을 밟고자 하는 회귀(回歸)의 간절함은 더 이상 아름다운 땅이 무질서하게 인위적인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두 번째는 제주만의 특별한 마음치유의 길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씨가 연꽃과 뭐가 다르겠는가.

서산대사의 제자 휴정은 이런 선시(禪詩)를 남겼다.

삼십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사람은 죽고 집은 허물어져 
마음이 황량하게 변해 버렸다.

청산은 말이 없고 봄 하늘 저문데 
두견새 한소리 아득히 들려온다.
한 떼의 동네 아이들
창구멍으로 나그네를 엿보고
백발의 이웃 노인 
내 이름을 묻는다.

어릴 적 이름 알자
서로 눈물짓나니
푸른 하늘 바다 같고
달은 삼경이어라.

# 정은광은?

정은광 교무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학(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사적관리위원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삶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우리 삶의 이야기 칼럼을 집필했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 등이 있다. 현재 원불교 서귀포교당 교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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