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9) 제주 환경 위기 몰고온 신개발주의...개발 정책 바꿔야

최근 10년 사이 제주는 도민들조차 놀랄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과거 10년 이상 걸렸던 일들이 1년 사이에 휙휙 변한다. 늘 50만 명∼55만 명이던 제주도 인구수는 이제 69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관광객 역시 한해 500여만 명 수준으로 유지되어 오던 숫자는 언제부턴가 1년에 100만 명 이상씩 급증하더니 1000만 명을 넘기고, 단숨에 1500만 명을 넘겼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관광시설이 들어섰고, 온 섬은 365일 공사 중이며, 제주의 경관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관광산업이 시작된 이래 50년 동안의 변화보다 지난 10년 사이의 변화가 더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제주에서 신개발주의의 태동

1995년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개막되었다.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제주개발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도민들은 개발과정에서 주민이 소외되고, 개발이익은 외부로 빠져나가는 잘못된 개발정책이 바로잡힐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으로 환경보전정책과 올바른 개발계획이 수립되리라 보았다.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발계획이 추진되고, 보전보다 개발중심의 일방통행식 정책으로 일관했던 과거의 개발주의가 사라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대로였다.

민선 도지사가 취임하고 지방자치의 출범을 경축하는 팡파르는 제주의 신개발주의를 알리는 선포식이기도 했다. 제주의 깨끗한 물과 수려한 경관, 중산간의 오름과 곶자왈은 모두 제주개발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했고, 대규모 투자자들의 이익창출을 위한 상품이 되었다. 신개발주의를 앞세운 도정은 개발사업 시행승인 권한과 환경영향평가 심의 권한은 물론 각종 인허가 절차를 주도하며 결과적으로는 개발사업 승인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형식적인 통과의례로 거칠 뿐이었다. 개발사업 반대를 외치는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목소리는 형식적으로 포장된 절차적 민주주의를 앞세워 무력화시켰다. 

지난 1991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면서 이후 지금까지 제주 개발정책뿐만 아니라 제주사회 전반을 좌지우지하게 된 제주특별법은 입법과정에서 당시 도민사회의 반발 외에도 환경처(현 환경부)의 강한 문제제기를 받고 있었다. 바로 환경영향평가 협의권한을 환경처에서 제주도로 이관한 사항 때문인데 환경처는 이럴 경우 “제주개발로 예상되는 환경파괴를 막을 효과적인 장치가 미흡해진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그러나 당시 환경처의 요구는 묵살되었다.

신개발주의의 심화와 제주환경의 위기

제주특별법에 근거하여 각종 개발사업 인허가 과정의 모든 권한을 갖게 된 제주도는 사업자의 투자의향만 있으면 자본의 성격이나 사업계획의 내용은 크게 상관없이 곧바로 개발사업 예정자로 지정해 주었다. 개발사업이 시행될 입지가 환경적으로 타당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름 분화구에 호텔이 들어서는 계획도, 곶자왈을 밀어내고 골프장을 건설하는 계획도, 심지어 한라산 코앞에 거대도시를 만드는 계획도 제주도의 판단에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제주도의 수장이 바뀌어도 제주도정의 신개발주의는 그대로였다.

지난 2000년 개발사업 시행승인을 받았던 송악산 유원지 개발사업은 사업자 내부갈등으로 중단되기는 했지만 송악산 분화구 내에 호텔, 콘도, 위락시설 등을 조성하는 계획이었다. 사업추진이 무산된 이후 현재 중국계 자본이 송악산 알오름 일대에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시행승인 막바지에 와 있다. 2006년 사업허가를 받은 묘산봉관광지(세인트포)와 에코랜드는 곶자왈 지역을 훼손하여 개발한 관광지였다. 두 사업부지는 각각 100만평이 넘는 큰 규모의 공유지로 시세에도 못 미치는 헐값으로 사업자에게 매각되었다. 곶자왈 지역이었던 영어교육도시 사업부지는 생태계보전 등급 상 개발 가능한 면적이 거의 없어 개발이 불가능했지만 지난 2008년 제주도가 타당한 이유도 없이 등급을 하향조정해 개발을 강행한 곳이다. 

현재 논란이 되는 오라관광단지는 한라산 경계에 맞닿아 있는 곳이다. 제주도의 제주국립공원 확장계획에 1순위로 들어가야 할 곳이지만 제주도정을 비롯하여 개발압력이 높은 실정이다. 제주도는 2016년에 오라관광단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심의결과를 무단으로 번복하는 심의회의를 열어 사업자의 편의를 봐주는 조례위반 행위까지 자행하기도 했다. 비자림로 확장사업은 제주개발의 욕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사업계획이 타당한지 사업의 필요성은 검토되었는지 이 사업이 과연 공익목적의 사업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는지 등의 논란은 여전하다.

그리고 제주의 신개발주의 정점에 제2공항 개발사업이 자리한다. 현재 제2공항 찬성을 외치는 그룹에는 제주지역 개발동맹의 집단이 총집결해 있다. 물신숭배에 바탕을 둔 이익창출은 이들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목표이다. 예전만 하더라도 좁은 도민사회 내에 벌어지는 개발논쟁의 과정에서 이들은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알고 행동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전면전에 나서는 집단행동도 불사한다. 이들 중에는 도내 언론의 주주로 참여하고, 각종 모임이나 단체를 통해 지역의 여론을 호도하기도 한다. 이들과 동맹관계에 있는 제주도의 준비도 만만치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소위 말잘 듣는 전문가들을 인허가 과정의 각종 위원회 위원으로 채워 넣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왜곡한다. 제주의 가치와 제주다움, 지속가능한 개발은 도정의 정책포장에 쓰는 수식어일 뿐이다. 

개발정책의 변화를 통한 생태사회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구체적인 실천과제로는 제주의 생태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한 제주특별법의 전면적인 개정작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개발정책의 변화를 통한 생태사회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구체적인 실천과제로는 제주의 생태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한 제주특별법의 전면적인 개정작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 생태사회를 위하여

신개발주의의 심화는 지방자치의 후퇴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위기뿐만 아니라 관광개발의 경제적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난 10년의 급격한 변화로 제주의 관광규모와 경제규모는 커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통계청 발표에서도 보듯이 제주지역 개인소득은 전국 평균 개인소득 증감률보다 오히려 낮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전국 시도별 노동자의 임금순위에서도 제주도는 최하위를 기록한다. 이에 반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오히려 제주도가 전국 최고로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안고 있는 현실이다. 

제주의 지속가능성을 배제한 개발 권력의 발호는 풀뿌리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후퇴는 물론이고 개발이익의 차별적 분배 그리고 제주의 가치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개발정책의 변화를 통한 생태사회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구체적인 실천과제로는 제주의 생태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한 제주특별법의 전면적인 개정작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또한 과잉개발을 부추기는 개발관련 조례 개정을 통해 개발행위의 규제를 강화·정비해야 한다. 진정한 풀뿌리 주민자치의 구현을 위해 주민의 정책참여를 활성화하고 도지사 및 행정당국의 권한이 주민과 시민사회의 권한으로 대폭 이양되어야 한다. 주민들도 개발의 막연한 기대와 환상에서 벗어나 제주사회의 주인으로서 제주의 가치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제주를 만들기 위한 활동에 적극 동참해야겠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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