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 숨, 쉼] 바농오름을 오르며

바농오름은 정직하게 이름 값 하는 오름이었다. 1코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시작된 가파른 경사 길은 호흡을 조절하며 올랐지만 수시로 멈춰서고 싶은, 계속 높이 올라가는 길이었다. 나중에 표지판을 보니 300여 미터 길이었다. 평지라면 한달음에 갈 길이었지만 수직으로 올라가니 만만치 않은 길이 되었다. 길이 그러하니 지난 토요일 학교 동문회 선후배와 어울려 모두 한 목소리로 “바농오름이 진짜 바늘 길이다”라며 오름을 올랐다.

1코스의 끝은 전망대. 힘이 들어간 종아리를 두들기며 의자에 앉으니 그때서야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록의 계절을 지나 짙푸른 녹음의 길로 나아가려는 초록 나무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나무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하늘을 쭉 따라가다 보니 제주 시내가 한 눈에 내다보였다. 날씨도 맑아 사방팔방 풍경들이 다 보기 좋았다. 이때마다 절로 드는 생각.

제주도 참 좋아,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가까이에 많이 있으니. 우리 아들·딸, 아들·딸들의 아들·딸들도 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잘 모셔야 하는데.

눈 밝은 일행 중 한명이 바농 오름을 오르다 따서 먹으라고 건네 준 산딸기.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눈 밝은 일행 중 한명이 바농 오름을 오르다 따서 먹으라고 건네 준 산딸기.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전망대를 내려와 모두 다 산책 길 같은 내리막길을 기대했는데…, 아 이게 아니다. 내리막길이긴 하지만 가파른 길이 사이사이 있어 발끝에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드디어 기대하던 아름답고 평평한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고 나뭇가지 사이로는 간간이 밝은 햇볕이 길 위로 쏟아져 내렸다. 난 엉뚱하게도 그 햇볕이 맛있는 요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꾸밈음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우거져 햇볕이 나뭇가지 사이로 조금씩 내려왔지만 너무나 강렬하게 아름다워서.

걷는 길이 편안해지니 자연스레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간다.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어려워.  
인생도 그래.
앞만 보고 올라 갈 때는 그냥 가기만 하면 돼.
그런데 내려올 때는 등에 짐이 얹혀 있어.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할 일이 많아.
높이 올라가는 것도 잘 내려오는 것도 다 중요해.

사실 나도 요즘은 수축과 이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열정과 치기만 있던 젊은 시절은 삶 자체가 수축의 연속이었다. 이완을 하면 뭔가 게으른 것 같고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할 것 같아서. 숨은 들이마시는 만큼 길게 내쉬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들이마시기만 하고 내쉬기를 제대로 안한 것 같고. 혹은 너무 일정에만 매달려 가끔은 의도적으로 숨을 멈추고 짧게 내쉬며 살아온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세월이 흘러 요즘에 이르러서야 수축과 이완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되며 균형을 잡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지나온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고 지금부터라도 수축과 이완이 균형 잡힌 삶을 살아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며 내려오는 길은 끝까지 아름다웠다. 

무딘 생각의 감각을 바늘처럼 콕 찔러준 바농오름, 고맙다.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http://jeju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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