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28) 박희순 제주북초등학교 교장
학교 시설 공개 이유? “한 아이 키우는데 온 마을 힘 필요..100년 마을도서관 만들고 파”

김영수도서관에서 만난 박희순 제주북초 교장. ⓒ제주의소리
김영수도서관에서 만난 박희순 제주북초 교장. ⓒ제주의소리

최근 제주북초등학교에는 김영수도서관을 보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12월 완공 이후 지금까지 서울, 경기, 인천, 부산, 전남 등지에서 지자체 공무원, 교육청 관계자 등 50여개 팀이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으로 마을 교육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타 지역이 주목하는 도시재생 선진사례가 됐다.

재작년 19명이었던 제주북초 병설유치원 학생 수는 올해 42명으로 늘었고, 1학년 신입생 수도 작년 28명에서 올해 39명으로 증가했다. 제주형 혁신학교로 마을과 연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던 차에 김영수도서관은 화룡점정이 됐다. 오랜 기간 학생 수 급감으로 고심하던 학교 입장에서는 작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박희순 교장이 35년 전 초임교사로 제주북초에 발령받았을 때 이 일대는 제주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다. 그러나 2017년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왔을 때 원도심은 활기가 떨어지고 ‘아이 키우기 힘든 곳’이 돼 있었다. 

박 교장은 “도서관은 문화가 탄생하는 곳”이라며 “과거 칠성통이 문화의 중심지였던 것처럼 김영수도서관 거리가 또 다른 중심이 되고, 새로운 미래를 재창조할 문화의 힘이 자라는 곳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지속가능한 도서관과 교육공동체는 누구 하나 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일이다. 학부모가 주도하고, 마을주민들이 함께하고, 제주도와 교육청 등 행정기관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박 교장이 꾸준히 아이들의 지역 이해도를 높이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학교와 마을의 연결을 위해 노력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박 교장은 다양한 프로젝트 학습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기본 철학으로 삼았다. 이번 김영수도서관의 마을도서관으로의 전환과도 밀접하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김영수도서관 전경. ⓒ제주의소리
김영수도서관 전경. ⓒ제주의소리

- 제주북초등학교의 교육활동들은 마을과의 연결을 중요하게 다룬 다는 점에서 이번 김영수도서관 재개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 학교는 아이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들은 지역의 일부다.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함께 키워내야 하고, 아이도 집과 학교를 왔다갔다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지역에 뭐가 있는지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 이 통찰력이 창의력의 기초다. 우리 학교에서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나름대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주제로 과거시험을 치른다. 또 모든 아이들이 이 지역을 소개할 수 있는 ‘꼬마해설사’가 되는 게 목표다.

김영수도서관이 아이들에게 ‘지역과 내가 하나’라는 인식을 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

- 도서관 상량문에는 아이들의 바람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학부모 뿐 아니라 아이들도 재개관 과정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준공 이후 아이들이 계속 이용하면서 불편함 점을 발견하고 개선책을 의논했다. 서가에 놓은 책들을 3번 대이동하기도 했고, 조명과 의자는 적절한지,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찾아봤다. 야간 개관에 대해서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시뮬레이션을 했다. 저는 그것이 ‘신뢰의 과정’이라고 본다.   

- 학교시설을 외부에 개방하는 건 결국 학교장 재량이다. 결단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논의 과정에서 안전문제로 반대하시는 학부모들도 계셨다. 그때 ‘문제가 생기면서 어느 학부모에게 책임지라고 안하겠다’고 답했다. ‘책임 질 수 있겠냐’고 묻는 분도 계셨는데 나는 ‘책임질 수 있게 만들 자신이 있다. 단, 학교 혼자로는 안된다’고 답했다. 지자체, 학교, 마을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은 교육의 대원칙이다. 아이들의 성장은 학교 혼자서만 되는 게 아니다.

학교 문을 닫았을 때 과연 가정과 사회는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 열어놓고, 안전망을 구축하고, 더 밝게 하고, 모든 마을의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켜볼 때 안전해진다. 막아놓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도서관이 지속가능하려면 먼저 10년의 기초를 세워야 하는데, 교장이 발령받아 딴 데로 가버리면, 혼자서 책임을 못 진다.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큰 힘이다.

2017년부터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와 같이 (마을교육공동체)워크숍 많이 했는데, 여기 참가한 학부모들이 도서관 운영위원회와 사서 도우미로 활동 중이다. 내 아이처럼 다른 아이를 돌보는 돌봄이 필요한 데 이걸 하기 위한 사람 만들기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바로 학부모다. 

- 김영수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지역이 함께 만든 과정이 주목받고 있다.

설계를 맡은 권정우 탐라지예 건축설계사무소장부터 현장소장, 대목수, 35년간 창호를 하신 아주머니, 기왓장 쌓았던 분까지 모두 내 아이가 사용할 것처럼 정성을 들였다. 세어보니 이렇게 함께하신 분이 33명이 되는데, 이 분들의 정성과 사랑이 여기 깃들어졌다. 이런 하나되는 느낌이 주는 감동이 있다. 건물에 영혼이 깃들어졌을 때, 건물 자체가 하나의 책이 된다는 걸 느꼈다. 

김영수도서관에서 만난 박희순 제주북초 교장. ⓒ제주의소리
김영수도서관에서 만난 박희순 제주북초 교장. ⓒ제주의소리

- 도서관을 앞으로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협업’은 중요한 키워드 같다. 

사실 건설 과정에서도 관급 자재를 써야하고, 학교시설에 대한 규정에 맞춰야 하는 점이 정말 힘들었다. 행정적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마다 토의하고, 논의하면서 해결책을 찾았다. 새벽 3까지 논의가 이어졌던 적도 있다. 결국 나중에는 교육청 내부 시설 부서장이 “모든 시설 관련 직원들은 김영수도서관을 보고오라”고 할 정도로 창의적으로 공간의 변화를 모색한 사례가 됐다.

도서관에 시니어 선생님 열 두분이 계신데, 이 분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책 읽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 자체가 아이들에게 대단한 교육이다. 지금은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해주실 수 있는 게 정말 많다. 같이 원예를 한다던가, 잊혀져 가는 과거의 놀이를 같이 한다던가, 연을 날린다던가, 아이들의 등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해줄 수도 있다.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활동들을 함께할 수 있다.

- 5시까지는 학교도서관으로 운영되고 그 이후에는 마을도서관으로 공개된다. 두 개의 도서관 체계가 하나의 공간에서 운영되는 셈인데,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을 법하다.

제주에도 학교 본 건물과 떨어져 있는 도서관이 있다. 이들 학교들은 학교도서관의 마을도서관화를 망설이고 있다가 저희 사례를 듣고 ‘우리들도 하겠다’고 마음먹은 선생님들이 있다. 김영수도서관은 학교는 5시까지 정규교육과정 시간대를 책임지고 그 이후는 사실상 지자체가 인력과 관리를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활동가가 있고 청소까지 역할 분담이 돼 있어서 아침에 출근해보면 바로 도서관 수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다. CCTV가 더 설치되고, 입구까지 가로등이 환하게 조성돼 더 안전해졌다. 마을 자체에서 위험요소를 알아서 걸러내주니 걱정이 없어졌다.

- 100년 가는 마을도서관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지속가능한 도서관을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보나?

저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큰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게 이 시대 어른들에게 주어진 숙제라면, 그 숙제에 재정·행정적 뒷받침을 아낌없이 해야 된다고 본다. 아이가 정말 소중하다면 지자체, 교육청에서 하나가 돼서 전문사서가 지속적으로 배치될 수 있고, 안전지킴이, 환경미화 인력 등이 지속되도록 노력해줬으면 한다. 학교에서 학교도서관을 마을도서관으로 개방하겠다고 하면 ‘그 다음엔 걱정하지 말라’는 환경이 됐으면 한다.

빌 게이츠가 항상 ‘나를 키운 건 동네도서관’이라고 말한다. 제2, 3의 빌게이츠가 어느 마을도서관에서 나올지 모른다. 조례 등 제도적 뒷받침으로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해줬으면 한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소프트웨어 부분은 학교에서 해나갈 수 있게 아낌없이 투자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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