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70. 공연장은 도시의 오아시스다

랜드 마크는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표지이다. 세계 유명도시는 도시의 특징이나 이미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랜드 마크를 가지고 있다. 랜드 마크는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을 뚜렷하게 함으로써 도시의 정체성과 차별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랜드 마크는 건축물, 광장, 거리, 자연물(산·강…) 등 다양할 수 있는데 한 해 1500만명이 찾는 국제관광지 제주도의 랜드 마크는 어디인가?

우선, 건축물의 꽃은 공연장이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를 보라) 고대 그리스·로마의 권력자들이 왜 원형극장을 세웠을까? 극장이야말로 민중들의 잠재된 용망과 욕구가 분출하는 곳이었다. 극장이 ‘허구의 세계’란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과 환상을 찾아 그곳으로 가서 대리체험-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래서 극장은 메마른 세상의 오아시스가 되는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을 보라. 도심 한 복판에 그처럼 의젓한 문화공간이 없었다면 광화문 일대는 삭막한 빌딩 숲이 됐을 것이다. 제주에는 쓸 만한 공연장이 몇 군데 있지만 원도심(중앙로·관덕정 일대)에는 전무하다. 이곳에 랜드 마크가 될 만한 공연장을 세우자. 그러면 오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이 모인다. 

유명 도시마다 그 중심에 광장이 있다. 광장엔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쉰다. 이탈리아의 도시 광장엔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품들이 즐비하다. 우리가 책을 통해 보는 명작들은 저들은 일상에서 접한다. 뉴욕엔 센트럴 파크라는 광장이 있다. 100만평(330만5785㎡)의 이 공원을 조성할 때, 반대자들을 설득한 말은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100년 후에는 이 넓이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였다. 2003년 제주시 도남동(정부종합청사 일대)에 시민복지타운이 조성될 때, 필자는 43만㎡의 이곳에 광장이 들어서기를 소망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지닌 정치지도자나 행정가를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란 걸 알았다. (우리는 거의 매번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나버리는 현장을 목도한다.)

제주도에 몇 곳의 ‘문화예술의 거리’가 있지만 누구에게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거리에 문화예술이 없다. 도시디자인은 도시 계획과 건축의 한계를 넘어선 세련되고 우아하고 매력적이면서 독특한 도시를 만드는 것인데, 제주도에는 도시디자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제주도의 유일한 랜드 마크는 한라산이다. 한라산을 빼고선 제주도를 논할 수 없다. 우뚝 솟아난 한라산은 제주섬 어느 곳에 가더라도 볼 수 있는(딱 한 곳을 제외하고) ‘천의 얼굴’을 지닌 명산(삼신산의 하나)이요, 영산(靈山)이다.

세계의 유명도시들은 저마다 랜드 마크를 가지고 있다. 한 도시의 시민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랜드 마크를 지니게 된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 자랑스런 시민이 될 수 있을까?

제주의 랜드 마크를 만들자고 말하고 실천한 역대 제주도지사, 국회의원이 있었던가? 우리는 언제쯤 그런 수준 높은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랜드 마크는 그 자체가 도시의 상징이요, 모뉴망(금자탑)이요, 관광자원의 보고이다. 랜드 마크의 효용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문화·행정을 이끄는 사회는 후진 사회임을 알아야 한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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