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 숨, 쉼] 강한 향기 좋은 치자 꽃을 보면서

우당도서관에서 사라봉 산책로 입구로 가는 길 왼편에 피어있는 치자 꽃. 요즘 한창 꽃이 필 때라 여기저기서 치자 꽃을 볼 수 있다.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우당도서관에서 사라봉 산책로 입구로 가는 길 왼편에 피어있는 치자 꽃. 요즘 한창 꽃이 필 때라 여기저기서 치자 꽃을 볼 수 있다.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바람결에 낯익은 향기가 실려 왔다. 코끝에 와 닿는 강한 꽃향기. 꾸미지 않고 민낯으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치자 꽃이다 (내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니 백과사전에서 사실 확인 하지 마시길). 우당도서관에서 사라봉 산책로 입구까지 가는 길 왼쪽에 치자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지난 봄 부터 사라봉을 걷는 내가 몇 번이나 그 길을 지났지만 한 번도 그쪽으로 눈길을 준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향기로 치자 꽃이 나를 불렀다. 

나야 나, 나 보고 가야지.

난 어릴 때부터 치자 꽃을 유난히 좋아했다. 짙푸른 녹색 잎 더미에 눈부신 하얀 꽃잎을 야무지게 모아놓은 모양도 예뻤지만 특히 강한 향기에 더 끌렸다. 그 강한 향기 때문에 치자 꽃은 종종 화장실 옆에 피어있는 꽃으로 기억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는 왜 치자 꽃에 끌렸을까. 어린 시절부터 그냥 좋았다. 지금도 왜 좋은가 생각해보니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깊게 채워 나가는 매력에 끌린 것 같다. 나는 치자 꽃을 보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 강한 에너지가 향기로 나온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 시절, 치자 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내가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나.

유행과 개성은 같은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개성의 유행’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한 명 한 명 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모아놓으면 도대체 잘 구분이 되지 않는 배우나 가수들. 비슷한 눈매, 콧날, 머리 모양새들에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으니 나처럼 둔한 사람이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보인다. 또 이런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몇 년 전 등산복 열풍이 불었을 때 중년의 여성들이 단체로 해외여행을 갔단다. 그런데 공항에서 이들의 여권을 확인하던 서양 사람이 나중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랬단다.

“아 똑같아, 모두 똑같아.” 비슷한 정도의 꼬불거리는 머리에 대부분이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고 줄 서 있으니 말이다. 

개성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이나 개체와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고유의 특성은 살아가면서 몸에 밴 취향이나 선택 등에 의해 표현될 것이다. 그런데 ‘개성의 유행’을 보면서 나는 고유의 특성이 진정한 자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기준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그래서 개성이 유행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일까. 뭐 사실 이게 옭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한 번만 더 생각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지금 ‘나’ 로 인식하고 있는 ‘나’의 내면을 한 번만 더 잘 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나’를 볼 수 있는지도. 내가 그랬다. 나는 40대 중반을 넘겨서야 전혀 다른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내게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자신만의 진짜 향기를 찾게 돼요. 그 향기는 강하고 아름다워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치자 꽃 향기처럼. 

덧붙임: 치자 꽃말은 순결, 청결 그리고 행복입니다. 내가 치자 꽃 보며 행복했던 것이 아주 생뚱맞은 일은 아니었네요.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http://jejubooks.com)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