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희의 예술문화이야기] 41. 에너지 소진하는 착오 반복...인력-역량 키워야

2009년 6월 6월 26일 공식적으로 문을 연 제주도립미술관이 올해 10년을 맞았다. 개관 10년, 길지 않은 역사이나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이고 개관 시까지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던 지역미술계의 열망은 점점 망각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술관에 관련된 사건, 공과와 실책을 통해 시사점을 살펴본다.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제주도립미술관 10주년 기념 전시 <99+1> 전시장면.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한국미술사에서 1980년대는 문화예술회관 건립, 1990년대 이후는 미술관 건립이 부각된 시기였다. 군사정권이 80년대 주도한 ‘지방문화육성과 활성화’의 사업 일환으로 전국에 문화예술회관 건립되기 시작했고 1997년까지 18개를 개관할 계획이 추진되었다. 제주에는 1988년 제주문화예술회관이 문을 열어 공연, 전시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이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1992년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지역문화계의 관심은 ‘문예회관’에서 ‘미술관’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광주시립미술관은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주관하면서 ‘예향 광주’라는 슬로건을 공고히 하기 시작했고, 90년대 서서히 지역미술관 건립에 영감을 주다가 2000년대 전국에 붐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제주도에도 도립미술관을 만들자는 여론이 등장했다. 지역미술인들이 앞장서서 미술관의 필요성을 거론했고 2004년 2월 도립미술관 건립용역보고서가 나왔으며 같은 해 여름 ‘향토문화예술진흥계획’이 수립되면서 도립미술관 건립비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2004년 제주미술제는 도립미술관 건립에 ‘불씨를 당기고자’ 추진되며 분위기 고조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미술관 부지가 현재의 러브랜드 인접지역으로 선정되자 도립미술관 건립추진위원회가 갈등 구도에 빠져든다. 당시 추진위원회는 미협과 탐미협 등 협회회원 2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중 위원 8~9명이 상임집행위원회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 위원회 주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성을 테마로 한 러브랜드와 인접한 현 부지는 중추적인 교육기능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반대를 표명했으나 부지선정 반대로 사업이 늦어졌고 이를 타개하고자 도는 새로 추진위원회를 구축하여 긴급총회를 통해 러브랜드를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의 후유증은 이후에 제주미술제 등 전시불참으로 표출되기도 했으며 추진위원장을 지낸 작가가 2006년 사망하며 미술관 추진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더 큰 논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5년 장리석 화백이 작품 110점을 제주도에 기증할 의사를 밝히고 후에 제주도립미술관에 상설 전시토록 해달라는 조건을 달게 된다. 평양 출신의 장 화백은 6.25동란 중 제주에 머무른 적이 있는데 당시 이중섭, 홍종명 등 같이 피난 온 작가들과 교류한 바 있다. 그 인연으로 자신의 제자이자 제주 출신으로 미술평론가이며 후에 미술관 개관전을 준비한 전시총감독을 통해 기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예산을 한 번에 조달하지 못하자 민간투자인 BTL사업형식을 취하게 되면서 장리석의 기증 작업은 사업타당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장리석 동상.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장리석 동상.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그러나 정작 미술관이 건립되자 장 화백은 자신의 작품 일부만 걸린 전시실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독립된 건물에 일종의 기념관을 기대했던 장 화백은 개막식에서 연설을 통해 기증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언급하며 실망과 분노를 표현했고 몇 달 후 “관련 협약이 착오와 기망에 의해 이뤄져 무효”라며 제주도를 상대로 기증 작품을 모두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갈등은 장화백의 패소로 끝이 났지만 미술관 개관 초기에 많은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이후 미술관은 장 화백의 동상을 미술관 정원에 세워 노화가의 실망을 달래기도 했다. 그리고 장 화백은 10주년인 올해 3월 사망했다.   

또 다른 논란이 미술관 개관 후에 일어났다. 당시 전시를 준비한 개관기념전 기획팀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무원 관장 임명에 반발하며 “도지사 치적용이자 공무원 감원 추세에 역행하는 자리보전용”이라고 비난하고 “직제에 9명중 큐레이터가 1명인 것은 문화마인드의 부재”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개관 총괄을 책임진 전시총감독도 기자회견을 통해 전문적 식견을 갖춘 관장의 임명을 촉구했으며, 장 화백의 개관식 연설에서 언급한 것에 대해 “저급한 단어로 비방...그러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사안일지라도 법적절차를 밟을 의사는 없다”고 표명하기도 했다. 
 
개관 시 임명된 소위 공무원 관장은 3대 관장부터 개방형 직위로 전환되면서 지역작가들이 관장으로 임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좁은 예술계의 특성상 두 관장이 연이어 한 가족으로부터 나오며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때문에 당시 전국에 회자되던 ‘작가 출신이 아닌 기획자 출신의 전문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6대 관장부터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평론가나 기획자 출신의 관장이 임용된다고 미술관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전국의 지자체가 운영하는 미술관은 충북, 강원도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 있다. 그러나 미술계는 이런 지역미술관의 공통된 문제로 ‘공무원 중심의 직제, 적은 예산, 소장품의 양과 질의 빈곤, 학예실 역량의 부족, 기획사에 의존하는 전시유치 등을 꼽는다. 

필자는 지난 2월 한 미술잡지에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국공립미술관이 없는 시도가 손꼽힐 정도이다. 작가출신의 관장보다 기획자 출신의 관장이 필요하다는 소망은 최근 거의 실현된 것 같다. 그러나 미술관 예산을 정부와 지자체에 의존하는 구도, 정규직 학예사, 계약직 학예사, 임기제 관장 간의 복잡한 갈등, ‘관장 풀’에 들어간 소수 인력의 전국적 순환 현상, 관객 수로 평가하는 미술관 성과, 경력의 질보다 자격증으로 선발하는 학예사 제도, 스펙터클화 된 무국적 현대미술의 추종 속에서 서서히 소외되는 것이 있다. 바로 오랫동안 한 지역에 천착하며 ‘지역성’을 연구하는 연구자와 큐레이터, 그리고 그들의 지적 표현을 위한 장이다. 초빙큐레이터, 리서치 펠로우, 독립예술잡지 등 다각적인 기회와 지원을 제공하여 지역문화와 역사에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99+1>의 영상.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제주도립미술관이 10주년을 맞아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전시 <99+1>은 필자의 진단을 다시 확인케 한다. 짧은 준비 기간에 빈약한 연구로 인해 전시 텍스트뿐만 아니라 전시장 디스플레이 면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시장의 한 쪽에서 디지털 기술을 가미한 지역작가 작품 소개는 소박한 설명과 흐린 화면으로 10주년이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한다. 

현재 800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제주비엔날레를 운영하면서 미술관의 역할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 확보와 역량 축적은 소원하기만 하다. 학예사들의 잦은 이직, 사직과 더불어 사법당국의 조사까지 이어지면서, 위에서 언급했던 법적 공방이나 논란으로 에너지를 소진하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논란이 되었던 제주비엔날레는 2017년에 이어서 2020년 행사도 계속 외부의 업체에 용역을 주는 선에서 진행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ICOM(국제박물관협의회)을 통해 뮤지엄의 역할에 대한 권고 사항에 뮤지엄의 기능을 열거하면서 보전, 연구, 소통, 교육을 들고 있다. 이 순서는 업무의 중요도를 반영하고 있는데, 제주도립미술관이 10년 동안 보전과 연구에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모두 반성할 때이다. 오히려 소통과 교육은 ‘미술관 대학’과 같은 프로그램이나 감성적인 디스플레이로 성공적인데 반하여 지역학과 관련된 제주도 예술의 보전과 연구는 실망스러울 정도이다. 

보전과 연구의 부족은 미술관의 정체성과 직결되기도 한다. 10주년에 맞추어 발간된 미술관 잡지 <널른팡> 9호는 장리석, 김흥수와 같은 기증 작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결국 기증으로 촉발된 미술관 건립사업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주도립미술관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면서 이미 구축되어야할 제주미술사 연구를 더욱 더디게 만들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은 세계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의 뮤지엄에 일정한 수준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뮤지엄이 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사회 통합의 역할을 해야 하며, 인권을 존중하는 윤리적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학문적 이슈를 성찰하는 공간의 역할과 더불어 경제주체로서 소득 창출에도 신경을 쓰도록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외국의 뮤지엄과 달리 제주도립미술관은 짧은 역사로 인해 아직 위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21세기형 미술관이라는 거대한 꿈에 앞서 제주도의 미술관으로서 공공성을 강화하고 미술관 정체성 확립을 위한 기본 역량과 토대 구축이 절실히 요구된다. 

필자 양은희는...

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 스페이스 D 디렉터 겸 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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