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동물테마파크 논란 선흘2리를 가다](2) 리세 증빙·주민등본까지 요구하는 ‘이상한 마을총회’

제주동물테마파크 조감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동물테마파크 조감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 최초 람사르습지도시에 빛나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내에 대명그룹이 추진 중인 대규모 개발사업 '제주동물테마파크'가 단순한 환경파괴 논란을 넘어서 결국 주민 간 '민-민 갈등'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중립적 입장을 표방해 오던 마을 이장이 느닷없이 사업자 측과 밀실협약 논란으로 찬성 측으로 돌아서면서 갈등이 확산됐다. 마을 향약에 대한 엇갈린 해석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일각에서는 이 사안을 마치 '토착주민'과 '이주민' 간의 대립 구도로 변질시키면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업 찬반으로 갈라선 마을 주민들은 소송인단을 꾸려 법정공방까지 이어갈 분위기다. 사업자 측이 공공연하게 8월 내로 행정절차를 모두 완료하고 10월부터 착공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마을을 비롯한 도내 환경단체로의 반대운동 역시 더욱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동물테마파크 사업을 반대하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마을총회에서의 주민 결정과는 달리 이 사안이 단순한 '찬반 구도'로 전락되고 있는 흐름이어서 위기감이 더해지고 있다.

지난 4월 9일 열린 선흘2리 마을임시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조성사업'에 대한 찬반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동물테마파크 선흘2리 반대위원회 제공
지난 4월 9일 열린 선흘2리 마을임시총회에서 투표 참석 주민들이 '제주동물테마파크 조성사업'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하는 모습.

최근 [제주의소리]와 만난 박흥삼 제주동물테마파크 선흘2리 반대위원회 위원장은 "공식적인 절차를 거친 주민들의 총의가 일부 마을 유지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며 동물테마파크 사업이 절차적 정당성을 잃은 채 강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박 위원장은 "선흘2리는 국내 최초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을 포함해 7개의 오름과 제주의 허파인 곶자왈 속에 깃들어 사는 생태지향적 마을"이라며 "제주의 생명줄이자 지하수의 원천인 이 지역에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반생태적·시대착오적인 사고"라고 비판했다.

또 "한라산 중산간의 선흘2리는 열대동물들이나 맹수들이 살 곳이 아니다. 선흘2리는 해마다 겨울이면 추위와 폭설로 고립되며 우리나라 평균 2배에 이르는 2600mm 가까운 연평균 강수량을 지닌 곳"이라며 "사자, 호랑이, 코끼리, 기린, 코뿔소 등은 일년 내내 기온이 높고 건기가 긴 열대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야 할 동물들이지 않나. 시설에 가두어 키우는 그 자체가 반생태적이고 동물학대"라고 사업 계획을 지적했다.

그는 위원장 직을 맡은 후 '동물테마파크 1만인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해 한 달여만에 1만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온라인 상으로는 동물보호단체 등과 함께 SNS를 통해 9500여명의 서명을 모았고, 오프라인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발로 뛰어가며 1000여명의 동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 '동물테마파크 반대' 총의 모은 임시총회가 향약 위반?

먼저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지난 4월 9일 진행됐던 마을 임시총회다. 이 자리에서는 동물테마파크 사업에 대해 찬반 표결을 부쳤고, 반대 107명, 찬성 17명으로 77.8%의 주민들이 동물테마파크 사업에 반대키로 결정했다.

주민들은 이 투표 결과야말로 주민들의 총의가 모인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당시 비가 쏟아지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총회보다도 많은 주민들이 모여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다. 개인적 사정으로 회의에 미처 참석하지 못했지만 역시 많은 주민들이 동물테마파크 사업에 반대한다는 서명에 동참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현철 선흘2리장을 비롯한 찬성측 주민들은 당시 임시총회의 투표결과가 '향약'을 위반했다고 맞서고 있다. 정 이장은 지난 1일 각 언론에 배포한 본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올해 4월 진행한 임시총회의 주민 투표결과가 중대한 향약 규정 위반으로 그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점 등 마을의 분란 증폭화가 야기됐다"고 주장했다. 임시총회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작 정현철 이장은 4월9일 진행한 마을 임시총회의 의장이었고, '동물테마파크 사업반대'라는 주민투표 결과를 직접 확정발표한 당사자여서, 당시 총회가 향약을 위배했거나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장으로서 그 책임의 주체일 수 밖에 없어 스스로 마을 분란을 야기시켰다는 모순에 빠진 상황이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에 들어서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과 관련한 마을 주민 간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정현철 이장을 지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정 이장. 사진=동물테마파크 선흘2리 찬성위원회 제공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에 들어서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과 관련한 마을 주민 간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정현철 이장을 지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정 이장. 사진=동물테마파크 선흘2리 찬성위원회 제공

왜 이런 논란이 일고 있을까? 이는 향약 내 '선거권'과 '투표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엇갈린 의견이다.

정 이장은 향약 제7조 1항에 명시된 '권리제한 조건'을 들고 있다. 이 조항에는 '리민 중 만 1년 이상 거주하고 마을 총회 전까지 리세를 완납한 세대원인 경우에만 선거권이 있다'고 명시됐다. 마을 개발위원회는 이 조항을 근거로 투표권에 대한 권리 규정사항을 정하기도 했다.

실제 선흘2리사무소는 4월 임시총회가 열리기 전 단체문자를 보내 투표에 참여할 주민들에게 △주민등록등본 △주민등록증 △리세(里稅) 납부 증빙 등을 지참하도록 안내했다. 마을 임시총회 안건 의결을 위한 투표에 주민등록증 외에 주민등록등본과 리세 납부 증빙서류까지 요구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진 것.  

특히 리 운영비 명목으로 가구당 연간 3만원을 징수하고 있는 리세는 향약에 근거한 것이지만, 리세 납부 증빙을 전제로 마을총회 안건을 의결할 수 있는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주민등록등본을 제시하도록 하는 것은 상식 밖이라는 지적이 중론이다.

반대측 주민들은 향약 제4조, 제6조 등에 따라 선거권과 투표권은 완전히 별개라는 입장이다. 향약 제4조 마을회원 자격에는 '본 리에 주민등록을 필하고 행정구역 내에 거주하는 모든 리민으로 구성한다'고 분명히 명시됐다는 것이다. 이어 제6조에서 마을회원은 '총회에 대한 발언권, 의결권, 평등권 등 ...(중략) 권리를 갖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즉, 마을 거주 기간이나 리운영비 납부 여부와 관련 없이 향약에 마을회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20세 이상의 모든 주민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총회 의결권은 마을회원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동물테마파크에 대한 주민투표는 마을회 규약에서 관장하는 사업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 마을에 들어오는 외부 민간기업에 대한 주민들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투표할 수 있다는 법률전문가의 자문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주민들이 마을의 대소사와 관련한 의견을 내는 투표에서 주민번호와 거주지, 자녀, 결혼여부 등 최상위 개인정보가 포함된 주민등록등본까지 요구하라는 것이 말이 되나. 대통령 선거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이는 투표를 훼방놓기 위한 조치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 토착주민? 이주민? 왜곡된 ‘찬반 갈등’ 프레임

박 위원장은 동물테마파크를 둘러싼 논란이 마치 토착주민과 이주민 간 갈등 프레임으로 변질된 것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앞서 정 이장은 성명을 통해 "마을 구성원들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던 중 마을 내부적으로 112명의 찬성 주민으로 결성된 동물테마파크 찬성위원회가 구성돼 많은 구성원들의 찬성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찬성 주민 중에는 전직 이장과 각 자생 단체장 등 오랜 토착 주민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은 "찬성 주민이 100여명이라고 하는데, 누가 포함됐는지도 알 길이 없다. 단순 숫자싸움은 의미도 없지만 (반대 주민들이 더 많아)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또 "토착 주민이라고 하는데 선흘2리에서 2대를 이어 살아온 분들은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누가 토착주민이고 누가 이주해온 주민이냐. 같은 마을주민들을 찬반이나 토착민 이주민으로 구분해 의도적으로 편을 가르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이겠나"라고 반문했다.

박흥삼 제주동물테마파크 선흘2리 반대위원회 위원장. ⓒ제주의소리
박흥삼 제주동물테마파크 선흘2리 반대위원회 위원장. ⓒ제주의소리

선흘2리 마을은 4.3당시 진압군에 의해 소실된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 귀농정착단이 마을을 재건했고, 양잠단지가 조성되면서 뒤늦게 주민들의 유입이 이뤄진 곳이다.

그나마 거문오름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서 마을의 이름이 알려졌고, 전원생활을 동경한 이주민들이 10여년 사이에 급격히 늘어났다. 전교생이 17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까지 몰렸던 마을 내 함덕초 선인분교가 5년만에 44명까지 늘어난 것은 선흘2리를 향한 이주열풍을 대표하는 예다.

결국 현재 선흘2리 마을을 재건한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이주민들임에도 토착주민을 운운하며 주민들을 이간질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 결국 법정공방으로...상생협의서 무효 소송 준비중

'밀실협약'으로 지적받는 마을 이장과 사업자 측이 맺은 상생협약의 효력 여부도 주요 쟁점이다. 정 이장은 마을발전기금 명목으로 사업자 측에 7억원을 받기로 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하며 비난과 논란을 자초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마을회의 공식적인 절차 없이 이장이 밀실에서 체결한 협약이 어떻게 효력을 지닐 수 있겠나. 고작 7억원에 마을을 팔아먹기 위해 기습적으로 체결한 협약서는 당연히 원천무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첫 단추를 잘못 꿰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채 진행되는 사업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 우리는 강정마을 등의 사례로 익히 경험했다"고 말했다.

찬성이든 반대든 민주적 절차에 따른 마을총회에서 주민총의를 모아 결정하지 않을 경우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를 무시한 것은 단순 직무유기를 넘어서 의도를 지닌 훼방이라는 주장이다.

반대위는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크게는 △마을 이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상생협의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상생협의서 무효 확인 소송 등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반대위는 공식적인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의 연명으로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이미 반나절만에 115명의 소송인단이 꾸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선흘2리 전체 주민 수가 750여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참여율이다.

박 위원장은 "마을 내에서는 대화로 좋게 풀어야될 일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미 그 단계는 넘어섰다.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모든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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