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봉오동 전투’ 제주 출신 독립군 역 배우 ‘홍상표’에 듣는다 

8월 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조연이 있다. 뱃일을 하다가 독립군이 된 제주도민 ‘재수’ 역을 맡은 실제 제주 출신 배우 ‘홍상표’(35)다. 걸쭉한 제주어로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선사하고, 투박하면서 거친 독립군 배역에 녹아드는 그의 존재감은 조연 이상의 조연 ‘신스틸러’(scene stealer)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정식 개봉을 앞두고 지난 2일 제주에서 특별 시사회가 열렸다. <봉오동 전투>는 (재)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의 ‘로케이션 지원 사업’으로 지난해 8월부터 약 2달 반 동안 제주도 곳곳에서 촬영했다. 민오름, 노꼬메오름, 의귀리 목장 등 촬영지만 10여곳에 달한다. 이런 인연으로 비교적 일찍 제주 시사회가 마련됐다. 시사회장에 참석한 홍상표는 “제주가 낳고 제주가 키운 배우 홍상표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제주 덕을 많이 봤다. 계속 기특하게 여겨달라”며 응원하러 온 가족, 친지, 친구 포함 자리를 꽉 채운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시사회 다음 날인 3일 오전, 고향 대정읍에서 <제주의소리>와 만난 홍상표는 어젯밤 ‘기쁨의 술자리’ 기운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듯 했다. 그는 “어제 시사회에서 결과물을 처음 봤다. 개봉 날이 다가올수록 불안하고 긴장감이 커서 심적으로 적지 않게 힘들었다”며 “내 출연 장면도 잘 나왔고 영화도 재미있게 만들어져서 만족스럽다.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서 술을 평소보다 많이 마신 것 같다”고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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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 전투'에 출연한 제주 출신 배우 홍상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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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제주 시사회에 참석한 홍상표(오른쪽). ⓒ제주의소리

홍상표가 연기한 ‘재수’는 여러 조연 가운데 하나지만 확실한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긴다. 독립군 가운데서도 막내 급에 속하는데, 속사포로 쏟아내는 제주어는 작품 전체로 봐도 큰 웃음을 주는 지점이다. 긴박감 넘치는 순간에서도 얼굴을 비추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홍상표는 “10년 동안 연기를 해오면서 처음 상업 장편 영화에 출연했다. 30대 중반을 지나니 생각도 많아지고 다른 한 편으로는 무언가에 열의를 다해 빠져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며 “<봉오동 전투>가 딱 그 시기에 맞는 기회였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촬영하는 동안 정말로 열심히 했다. 매일 대본을 보고 또 보고 연습했다”고 자평했다. 

원신연 감독이 연출한 <봉오동 전투>는 1920년 만주 봉오동에서 벌어진 독립군-일본군 간의 실제 전투를 재현한 작품이다. 모든 것이 열세인 독립군이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과정을 그려낸다.

애초 홍상표는 이번 작품에서 ‘재수’ 역에 비해 훨씬 비중이 적은 이름없는 ‘대원 4’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원신연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면서 일종의 ‘업그레이드’가 된 셈이다.

홍상표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계기는 2012년작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이다. 자신의 ‘말다리’를 자랑하는 어벙한 청년 ‘상표’역을 맡았다. 그 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죽부인의 뜨거운 밤>(2015), <홈런>(2017) 등 다수의 단편·독립영화에 출연했다. 이밖에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연극 무대에도 섰지만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은 배우들과 대규모 현장을 경험한 경우는 <봉오동 전투>가 처음이다. 만만치 않은 촬영 일정이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한다.

그는 “유해진, 조우진 등 함께 고생한 여러 선배들이 해준 조언 덕분에, 영화배우에게 필요한 연기의 기초를 조금 더 알게된 것 같다. 대학교에서 ‘듣는 것’을 연기의 가장 기본이라고 배웠는데 돌이켜보니 촬영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익히지 않았나 싶다. 생활감 있는 연기를 주로 했던 독립영화와는 다르게 보다 풍부하게 감정 실은 연기도 배웠다. 출연진, 제작진과 사람 대 사람으로 정도 많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배우는 주눅 들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더욱이 내 고향 제주도에서 촬영하니 ‘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여기 주인이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했다. 타고난 모슬포 몽생이 기질을 품고 자신감 있게 카메라 앞에 섰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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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왼쪽 첫 번째가 배우 유해진, 그 오른쪽이 재수 역의 배우 홍상표. 출처=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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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배우 홍상표.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가 개봉하는 시기는 마침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양국 간의 갈등이 무척 높아지는 때다. <봉오동 전투>를 두고 ‘때를 잘 만났다’는 세간의 평가도 나오는 상황이다. 작품 안에서는 키타무라 카즈키(Kazuki Kitamura), 이케우치 히로유키(Hiroyuki Ikeuchi) 같은 일본 내에서 인기 높은 배우들이 일본 군인으로 출연한다. 젊은 배우 홍상표에게 일본배우들과의 작업은 기억에 남을 추억이다.

홍상표는 “실제 합을 맞춰본 <봉오동 전투> 속 일본 배우들은 연기 실력이나 인품 모두 훌륭했다. 그들의 출연 결정을 두고 일본 우익 세력들이 문제를 제기했었다. 개인적으로 일본 배우가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찍는지 정말 궁금해서 키타무라 카즈키에게 여러 차례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배우가 출연을 결정했다면 마땅히 임해야 한다’였다. 일본에서 잘 나가는 배우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영화에 선뜻 출연한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 “<봉오동 전투>를 찍으면서 감독님과 제작진 모두 강조했던 방향은 ‘저항의 역사’다. 우리가 핍박 받은 역사는 잘 알고 있지만 맞서 싸웠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봉오동 전투>가 모두가 기억해야 할 지난 역사를 꺼내는 계기라고 봐주면 감사하겠다”고 소개했다.

맨 오른쪽이 홍상표 배우. ⓒ제주의소리
뒷줄 맨 오른쪽이 홍상표 배우. 출처=네이버 영화

홍상표는 제주대학교 영문학과(03학번)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 학사 편입하며 연기를 접했다. 연극학과 수석 졸업 후 가면극 <소라별이야기>, 음악극 <인터뷰>, 독일 베를린 연극 <Delegation X>, 1인극 <백색분자> 같은 극 예술을 기획 혹은 연출하거나 출연했고 회화 개인전도 가지는 등등 순수 예술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연기에 ‘올인’한 지금도 회화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홍상표는 “몇 년 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강요배 화백 개인전을 찾았다. 1층 전시장에 들어가자 마자 탁 트인 공간에 그림 <폭포>가 있었다. 검은색과 노란색이 거칠게 그려진 <폭포>를 보는 순간, ‘이 분(강요배)은 평생 그림을 그렸구나’라고 단번에 느꼈다. 그리고 ‘평생 그림을 그려야 작가라는 명칭을 쓸 수 있겠구나’, ‘난 작가가 아니다’라고 실감했다”며 “개인적으로 회화 예술에 큰 애착이 간다. 회화는 평면이지만 평면이 아니다. 가시적이지만 비가시적인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영화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홍상표의 현실은 아직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결혼, 취직 같은 세상의 일반 잣대로 보기에는 한참 다른 길을 걸어왔고 또 걷고 있다. 그래서 일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홍상표는 예술의 가치, 삶의 방향에 대해 여전히 고민 많은 35살 청년이었다. 가족은 그에게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무너지지 않게 늘 지지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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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표 배우. ⓒ제주의소리

홍상표는 “가능성을 바라보지만 현실은 아직 제자리다. 동생 집에 얹혀살면서 엄마 카드를 쓰고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 살고 있다. 허울만 좋아서 그림 그리고, 독일까지 가서 공연하고 그렇게 지내왔다. 비록 돈은 못 벌었지만 ‘조금 더 왐수다’라고 부모님께 편지를 쓰며 내 활동을 보여드렸다. 돌아온 시간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지만,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졌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는데 그나마 연기더라. 쉽게 뜨거워지고 식는 성격에도 10년간 꾸준히 해왔다. <봉오동 전투>에 출연했다고 내 삶이 한 번에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촬영을 마치고 오디션을 봤지만 줄줄이 떨어졌다. 그래도 <봉오동 전투>로 인해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감사하다”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침 일찍 시작한 인터뷰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다. 예상치 못하게 배우의 어머니와 아버지와도 만날 기회가 생겼는데 아들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짧은 대화, 작은 태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이어갈수록, 영화보다는 개인 홍상표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배우의 대답은 물음표가 많아졌다. 연기 생활에 분기점이 될 만한 기회를 잡았지만 그 기회가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알지 못하는 긴장과 기대. 그럼에도 가족에 대한 소중함, 예술에 대한 애정, 연기에 대한 열정은 가슴 깊이 품고 있기에 배우 '홍상표'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유)해진 선배도 저와 똑같이 고민하더라고요. 내가 지금 연기를 잘하고 있는지 계속 되묻고 고민하고 있었어요. 모두가 '잘 한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같은 고민을 한다는 사실이…, 잘 모르겠네요. 한때는 무엇이든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하지 않는 게 더 어렵습니다. 일단은 계속 해봐야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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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게 웃는 홍상표 배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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