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제주동물테마파크 '주민 협의' 조건 무위로...사업 차질 불가피

27일 오후 7시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마을회관에서 진행된 선흘2리 마을 임시총회에서 이장 해임 건에 투표하고 있는 주민들. ⓒ제주의소리
27일 오후 7시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마을회관에서 진행된 선흘2리 마을 임시총회에서 이장 해임 건에 투표하고 있는 주민들. ⓒ제주의소리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와 '밀실 상생협약'을 맺어 논란을 산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정현철 이장이 해임되고, 협약 역시 무효라는 주민들의 결정으로 인해 동물테마파크 사업이 다시 분수령을 맞고 있다.

사실상 사업의 마지막 관문이나 다름 없었던 '주민 협의' 조건이 무위로 돌아감에 따라 8월까지 인허가 절차를 완료하겠다는 사업자 측의 계획도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마을회는 27일 오후 7시 선흘2리마을회관에서 임시총회를 갖고 ▲동물테마파크 사업자와 체결한 협약서 무효의 건 ▲정현철 이장 해임의 건을 의결했다.

마을 향약 제14조에 따라 주민 26명의 소집 요구로 개최된 이날 총회는 의결 정족수 40명을 세 배 이상 뛰어넘은 130여명의 주민들이 참석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마을 내 총 가구수가 250여가구, 총 유권자가 400명에 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참여율을 기록했다.

거수로 이뤄진 '동물테마파크 협약서 무효의 건'은 투표에 참여한 128명 중 127명이 찬성표를 던지고 1명이 기권하며 원안 가결됐다. 이어 무기명 투표로 이뤄진 현직 정현철 이장 해임의 건은 129명 중 125명이 찬성, 3명이 반대, 1명이 기권표를 던지며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

안건이 통과되자 현장에는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사실상 압도적인 주민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현장의 한 주민은 "지금까지 열렸던 역대 마을총회 중 가장 많은 주민들이 모였고, 가장 질서정연하게 진행된 총회였다. (동물테마파크 사업) 찬성 측에서는 마치 마을 이주민들만이 사업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던데, 이것이 전체 주민들의 뜻"이라고 힘줘 말했다.

◇ '주민 협의' 조건 미이행...동물테마파크 사업일정 차질

사업의 속도를 내기 위해 맺어진 밀실 상생협약은 결국 '자충수'가 됐다.

정현철 이장이 사업자인 (주)제주동물테마파크와 마을발전기금 7억원을 지급받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생협약서'를 체결한 것은 지난달 26일.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마을 이장이 독단적으로 협약을 맺으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민주적인 주민총의 확인 절차가 없어 주민들의 반발이 익히 예상됐음에도 사업자와 이장 간 '밀실협약'이 이뤄진 배경에는 지난 4월12일 열린 환경보전방안검토서(보완서) 심사위원회가 내건 조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심의위는 환경보전방안 이행과 지역 상생 등 주민협의를 원만히 할 것과 람사르습지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치라는 보완사항을 내걸고 '조건부 통과'시켰다. 이날 심의는 사업 승인을 위한 사실상의 마지막 행정절차였다. 즉, 주민협의라는 과제만 해결되면 사업의 걸림돌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었다.

람사르습지위원회는 일찌감치 '협의 불가' 입장을 통보하고 사업자 측과의 창구를 닫았다. 사업에 찬성하는 선흘2리 주민들이 '마을에 결정권을 줘야한다'는 취지로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람사르습지위는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초 10월부터 착공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지녔던 사업자 측은 결국 정 이장과 소리소문 없이 상생협약을 체결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주민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화근이 됐다.

◇ 찬성위 반발 여전...마을 향약 두고 어깃장

정 이장과 사업에 찬성하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선흘2리 찬성대책위원회'는 주민들의 총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27일 열린 마을 임시총회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진행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흘2리 향약 12조에는 △이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개발위원회의 결의에 의해 소집 요구가 있을 때 △리민 20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감사의 회의 소집 요구가 있을 때 이장이 7일 이내에 회의를 소집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번 임시총회의 경우 세번째 요건인 '리민 20인 이상의 요구'로 소집됐다.

그러나, 찬성위 측은 "반대위는 지난 23일 불법회의를 팩스로 요청해 이장이 총회 소집 여부를 결정하기도 전에 마음대로 4일 뒤인 27일 임시총회를 강행했다"며 "임시총회 소집권자인 이장이 이미 총회 안건을 기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터무니 없는 논리로 불법회의를 진행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 "향약 14조 '총회는 개최일 5일 전까지 통지' 해야하나 통지 기간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불법회의는 어떠한 법적 효력도 없는 반대 주민들만의 모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위 측은 "향약에는 주민 20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시 임시총회를 여는 것을 의무조항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이장이 자신의 해임 건을 자의적으로 기각한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반대위 측은 "정 이장은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을회 사무장을 일방적으로 해고하고, 이사무소 문을 폐쇄시켜 주민들의 민원 처리를 마비시켜왔다"며 "이장의 직무유기 역시 해임의 주요 사유"라고 주장했다. 또 "총회 '5일 전 통지' 요건이 갖춰졌기에 회의 날짜를 27일로 잡은 것"이라며 찬성위 주장을 반박했다.

◇ 법정공방 진행중...주민들 간 소송전 비화

이제 앞으로의 추이는 법적다툼으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선흘2리 마을 내 동물테마파크를 둘러싼 소송은 총 4건이다.

선흘2리 주민 170명으로 꾸린 소송인단은 지난 9일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 측과 선흘2리 마을 이장 간 맺어진 상호협약이 무효임을 주장하는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소장에는 정 이장이 마을 총회를 거치지 않고 협약을 맺은데 대한 위법성을 판단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됐고, 협약 내용의 대부분이 마을의 의무사항만 명시돼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소송인단은 "소송을 통해 선흘2리 주민들은 마을 이장이 공식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밀리에 사업자와 체결한 굴욕적인 주민상생방안 협약서가 무효임을 법적 절차를 통해 확인하려고 한다"며 "주민 다수 의사에 반하는 상호협약으로 침해된 주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회복하고 자연·생태·문화 등 생활환경에 대한 권리를 확인받을 이익이 있다"고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에는 정 이장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지난해 마을 내 유해환경시설인 모 유류저장소 사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개발위원회를 통해 '사업 반대' 의견을 모았음에도, 이장이 제주시에 해당 의견을 송부하지 않았다는 점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해당 사업은 마을의 의견이 전달되지 않은 채 시의 허가를 받아 공사까지 다 끝낸 상태다.

정 이장 역시 반대위 소속 주민 2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정 이장은 마을 길목에 반대위가 내건 '정 이장, 니가 돈 7억에 마을을 팔았구나!'라는 현수막을 문제 삼아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찬성위 소속 A씨 역시 라디오 방송에서의 발언을 토대로 반대위 주민 B씨를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박흥삼 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마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과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을 나눠서 처리할 계획"이라며 "동물테마파크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뜻이 확고한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업이 철회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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