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11. 그들의 공간은 없었다

지난 8월 9일 서울대학교, 60대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쉬던 중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60대의 고령노동자가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발표되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60대 노동자의 죽음에 다른 원인이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노동자가 쉬던 중 사망한 당일은 서울 최고 기온이 34.6도까지 올라갔고, 연일 폭염의 날씨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노동자가 쉬던 휴게시설은 한 평 남짓(3.52㎡)되는 곳을 3명이 번갈아가며 사용해야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 시설은 냉방도 환기도 되지 않아 노동자들이 환기구를 뚫고 선풍기로 버티며 휴식을 취해왔다는 것이다.

직업 환경 전문의 등 전문가들도 휴식공간에 문제가 있었고 사망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입을 모으자 결국 사건발생 11일 만인 8월 20일, 고용노동부는 서울대학교 내 청소노동자의 휴게시설을 전면 실태조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작년 6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휴게시설운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위배되는 사항이 없는지 살피겠다는 것이다. 

지난 8월 9일 고인이 숨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제2공학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모습이다. 냉난방조차 되지 않아, 겨울 냉기를 막기위해 천장 틈새를 막은 모습도 사진에 찍혔다. 출처=오마이뉴스.
지난 8월 9일 고인이 숨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제2공학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모습이다. 냉난방조차 되지 않아, 겨울 냉기를 막기위해 천장 틈새를 막은 모습도 사진에 찍혔다. 출처=오마이뉴스.

산업안전보건법은 건강하게 쉴 권리를 보장하라는 취지에서 휴게 시설에 대한 의무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계단 층이나 지하, 화장실 창고를 식사 공간, 휴게시설로 사용하던 청소노동자의 경우 휴게시설의 확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어 왔다. 2018년 6월, 고용노동부는 휴게시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는데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휴게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대상 사업장이다. 

휴게시설은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해소하기 위한 시설이므로 모든 사업장에 설치를 원칙적으로 하되, 법상 정해져있는 설치의무(고열·한랭·다습 작업 사업장의 휴게시설 설치, 폭염에 노출되는 야외작업장의 그늘 등 제공, 원청 사업장의 용역노동자에 대한 휴게시설 장소제공의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환경미화 업무를 포함하여 유해물질 처리업무 등 신체와 피복이 오염될 우려가 있는 업무의 경우도 우선적으로 휴게시설을 설치하게끔 되어있다. 업무의 내용과 관계없이 작업복이 심하게 젖게 되는 사업장이나 야간작업 노동자가 있는 사업장, 장시간 근로 및 교대근무, 감정노동업무(고객·환자·승객·학생·민원인 등 상대), 백화점·면세점에서 주로 서서 일하는 경우에도 우선적으로 휴게시설 설치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다만, 사무직으로만 구성된 사업장의 경우 휴식하는 동안 업무로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면 사무공간을 휴게시설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휴게시설의 위치이다. 

휴게시설은 노동자가 이용하기 용이한 곳에 설치되어야 한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작업장이 있는 건물 내에 휴게시설을 설치하되 3~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고, 거리는 100m를 초과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병원이나 공항 등 작업공간이 넓을 경우 거점별 휴게공간을 설치해야 한다. 지하는 환경이 열악하므로 가급적 지상에 설치하게끔 하고 있다. 은행, 병원, 호텔, 백화점, 공항 등 고객이 다수 이용하는 장소의 경우 고객 휴게시설과 분리된 장소에 휴게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세 번째, 휴게시설의 규모이다. 

최소면적은 2평으로 하되, 1인당 1㎡이상 확보하고, 노사 간의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네 번째, 휴게시설의 쉴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계절별로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휴게시설의 쾌적한 공기 질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지하실, 기계실, 화장실 등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공간은 지양한다. 사업주는 환풍기, 냉장고, 사물함 등 노동자에게 필요한 비품을 제공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지켜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종종 현장에 방문하여 노동 상담을 하게 되면 주로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에서 진행하게 되는데 휴게공간 자체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휴게공간이 있더라도 다닥다닥 앉아야 한다던가, 규모가 큰 사업장임에도 하나의 공간을 수십 명이 함께 사용하는 경우들이었다. 예를 들어 제주공항 면세점에는 1000명이 넘는 판매직 노동자이 있지만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휴게공간이 방 1개뿐이다.

서울대에서는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이후 학생, 교수 등 학내 구성원을 중심으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도내에도 수많은 건물에 청소노동자, 시설관리 노동자가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도내 대학들부터 노동자의 휴게시설을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망 좋은 방까지는 못되더라도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증진할 수 있는 휴식공간은 마련해야하는 것 아닌가! 

제주 곳곳에서 올라가고 있는 신축건물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건물의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구상에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공간도 함께 구상할 수 있기를.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