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30. 엑시트(EXIT), 이상근, 2019

영화 <엑시트>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대학 졸업 후 서른 살이 넘도록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가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7급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했다. 주위에서도 잘 생각했다며 격려하고 응원했다. 대학 때 만난 여자친구도 그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마치 사법고시 뒷바라지를 하듯이 그를 도왔다. 법적으로는 백수이기에 밥을 사는 것도 직장인 여자친구였다. 여자친구는 합격의 날을 기도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낙방을 거듭하자 몇 년 뒤 9급 행정직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하지만 공시족은 점점 수가 늘었고, 합격의 날은 보일 듯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격려하던 친척들도 해를 거듭할수록 한숨 소리가 커졌다. 소방직, 경찰직 다 도전해봤지만 고난도 미션이었다.

점점 불안해진 그는 게임에 빠졌다. 도서관에 간다고 해놓고 PC방에 갔다. 게임 속에서 그는 종횡무진이다. 그 어려운 단계를 클리어하며 미션을 수행해 나갔다. 그러면서 아이템도 많이 축적했다. 게임 속에서 그는 그 어떤 재난도 극복하는 플레이어가 되었다.

그러다 그는 여자친구로부터 현장에서 딱 걸렸다. 제보를 받은 여자친구는 반신반의하며 PC방에 나타났고, 게임을 하던 그는 여자친구를 보고 몬스터를 바라본 듯 기겁했다. 여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마음 약한 여자는 그의 눈물에 마음을 돌렸다. 그가 반지를 내밀며 용서를 구한 것. 그가 여자친구 앞에 무릎을 꿇고 반지를 내밀며 눈물을 흘렸다.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런 반지를 샀어?”

여자친구가 걱정 반 감동 반의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7년 동안 모은 아이템을 모두 팔았어. 그 돈으로 산 거야.”

그에게 피와 같은 아이템들이다. 그가 온갖 악전고투를 겪으며 얻은 레어템들이다. 그는 눈물을 계속 흘렸다. 헤어지기 싫어서 흘리는 눈물인지 아이템을 팔아버려서 아까워서 흘리는 눈물인지 본인만 알겠지만 그는 펑펑 울었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다. 이듬해 봄 그들은 결혼했다. 그는 최근에 PC방 창업을 준비 중이다. 법무사 사무실 일을 하다 그만두고 몇 년 또 백수로 지내다 시작한 사업이다. 시 쓰는 내게 PC방 가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서 나는 며칠 째 고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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