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16) 사업자 중심 환경영향평가 ‘소모적 논란’ 반복

숲 파괴 논란을 낳은 제주 비자림로 확장공사. 비자림로 사례는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숲 파괴 논란을 낳은 제주 비자림로 확장공사. 비자림로 사례는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관광개발사업을 비롯한 각종 개발사업 승인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환경영향평가다. 환경영향평가는 사업계획의 수립 및 개발사업의 허가·승인 등을 받을 때 해당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하고, 예측·평가해 해로운 환경영향을 피하거나 제거 또는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제도다.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면 협의권자는 이를 검토해 협의내용을 작성하게 되며, 사업자는 개발사업 시 환경보전방안이 담긴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을 이행해야 한다. 협의권자는 보통은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환경부장관이 되며, 제주지역에서의 개발사업은 제주특별법에 따라 제주도지사가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의 필요성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개발사업의 승인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서의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 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줄곧 지적돼왔다. 제주도가 시행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앞서 언급한 문제제기 이상의 문제들을 안고 있다.

사업자 중심의 환경영향평가제도

첫째, 개발사업의 승인 또는 환경영향평가서의 심의 통과를 이미 전제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제주도 환경영향평가조례”에서 정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의 결정사항이다.

조례에 따르면 심의회의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원안동의, 조건부동의, 재심의’ 뿐이다. 아무리 사업계획에 문제가 많고, 환경적으로 입지가 부적정하더라도 ‘부동의’ 결정을 할 수 없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송악산유원지 개발사업은 4차례의 재심의 결정 끝에 결국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통과했다. 

둘째,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주민참여의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절차에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은 환경영향평가준비서에 대해 환경영향평가협의회에서 결정된 평가항목 등에 대한 의견 제시와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이 제출됐을 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유일하다.

그러나 제시한 의견이 반영되었는지 확인할 수도 없고, 사업자는 주민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할 의무도 없다. 뿐만 아니라 최종 평가서에 대한 공람기회는 물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 최종단계인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결정과정에 참여하거나 그 결정사항에 이의제기를 할 수도 없다. 결국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모두 마무리 된 후에야 주민들은 개발사업의 문제를 인식하면서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셋째, 형식적이고 허술한 스코핑제도의 운영이다. 스코핑(Scoping)이란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기에 앞서 선택과 집중의 차원에서 평가해야 할 항목과 범위, 대안의 종류 등 평가의 내용을 미리 정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과 지역의 특성에 따라 영향이 크지 않은 일부 평가항목을 제외해 평가의 질적 향상과 사업자의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장점이 있다. 스코핑의 절차는 사업자가 평가준비서를 제출하게 되면 환경영향평가협의회가 이를 심의해 평가항목과 평가범위 등을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평가준비서에 대한 심의가 있기도 전에 사업자는 임의로 평가항목과 평가범위 및 평가시기를 정해 먼저 조사를 시행해 버린다. 이러한 사업자의 행위는 환경영향평가협의회의 심의결과에 영향을 미쳐 대부분 사업자가 정한 기준에 맞춰 결정되기 마련이다. 일부 협의회 위원이 문제를 지적하면 사업자가 정한 기준을 원칙으로 하고, 추가 보완조사를 병행할 뿐이다. 스코핑 제도의 취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의 경우도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심의가 있기도 전에 국토부는 사업부지에 대한 조사를 선행했다. 평가범위는 자의적으로 정한 사업부지 경계로부터 300m까지만 정했다. 최근 시행한 김해신공항, 울릉공항, 흑산도공항 등의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는 사업부지 경계로부터 2km까지 평가범위를 정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환경영향평가 시행 가로막는 법·제도

넷째, 전략환경영향평가 면제대상을 광범위하게 정하다보니 제주지역의 개발사업 중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환경영향평가는 대부분 사업계획이 확정된 후 실시단계에서 주로 환경훼손을 최소화 하는데 중점을 두는 반면 전략환경영향평가는 계획의 수립단계에서 실시한다는 차이가 있다. 상위계획을 수립할 때 환경보전계획과의 부합여부를 확인하고, 대안의 설정·분석 등을 통해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의 타당성 등을 검토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서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의 사업시행승인 시 다른 법령에 따라 승인 등을 받은 것으로 의제 처리되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계획은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특별법에서는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인·허가를 일괄해 의제 처리하는 사항이 있어서 제주지역에서 시행하는 대부분의 개발사업은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서 정한 전략환경영향평가 면제대상에 고스란히 포함되고 있다. 

결국 제주지역의 개발사업들이 계획수립단계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다보니 그 계획의 적정성이나 입지의 타당성 검토가 생략돼 환경영향평가 단계에 가서야 이러한 논란이 일게 된다. 이는 도민사회의 갈등뿐만 아니라 사업자 입장에서도 계획이 수립되고 여러 승인절차를 거친 후에야 사업의 추진여부에 대한 근본적인 논란으로 난처해 질 수밖에 없다.

다섯째, 환경영향평가서의 작성주체가 사업자라는 점에서 객관성 확보 여부의 논란이 있다. 사업자가 직접 환경영향평가 전문대행업체를 선정해 맡기다보니 환경영향평가서는 사업자가 원하는 내용으로 맞춰지는 경향이 크다. 이 과정에서 부실·조작의 논란이 생기고, 실제로 법정보호종을 누락하거나 환경가치를 낮게 평가해 개발사업이 가능하도록 평가서를 조작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여섯째, 환경영향평가제도에 대한 개발부서 및 승인부서의 낮은 인식수준이다.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도입된 이후 정부의 개발담당 부서들의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인식은 귀찮은 행정절차로 여기면서 형식적인 통과의례처럼 업무를 수행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중앙정부, 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추진하는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준수 여부를 조사했더니 정부공공기관이 민간기업보다 더 협의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최근 완공된 화순항 2단계 개발사업인 해경부두 건설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인 응회환 화산체가 해안으로 노출된 구간을 원형 보전하라는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매립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논란이 되는 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 심의과정에서도 승인부서에서는 사업자에게 보완을 요구하기보다는 심의위원들에게 심의통과를 요청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일곱째,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환경보전보다는 정책결정자의 정치적 판단, 경제·사회적 영향을 감안한 결정을 하는 등의 본질적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제주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환경영향평가 협의권한의 이양으로 이러한 문제는 더 자주 발생한다.

더욱이 제주도가 투자자를 모집해 와서 개발사업을 진행할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된다. 심지어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위반하기도 하고, 심의위원회의 심의결과를 번복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초법적인 행태가 자행되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제도 대폭 개선해야

이처럼 환경영향평가제도는 도입 취지와 달리 상당한 문제를 안고 시행되고 있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면서 개발사업이 승인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형식적인 통과수순일 뿐이다. 개발면죄부로 전락했다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따라서 현재 제기된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주도의 환경보전과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는 요원하다. 

우선 앞서 제기된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의 결정사항 중에 부동의 결정사항을 포함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 사항은 조례에서 규정하기보다는 시행규칙 등을 통해서 적용하는 방안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또한 주민의 참여기회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주민들은 환경영향평가 초안뿐만 아니라 최종 평가서 단계까지도 주민의 참여기회를 보장한다. 우리의 경우도 최종 평가서에 대한 의견제출, 협의내용 결정과정의 주민참여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스코핑 과정인 환경영향평가협의회의 심의 이전에 평가항목과 범위를 임의로 정해 사전 조사를 하는 행위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제주지역에서 진행하는 개발계획 중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범위에 있는 사업은 모두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업의 타당성과 입지의 적정성을 우선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겠다.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제기돼왔던 환경영향평가서 수행주체의 객관성과 투명성 확보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는 사업자가 아니라 연방정부가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을 주관해 대행업체를 연방정부가 선정하고 비용은 사업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이러한 사례를 참고삼아 투명하고 객관적인 평가서 작성 체계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올바르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관련 부서를 비롯한 제주도의 인식변화와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개발사업 과정에서 제주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으로 철저하고 투명한 평가절차와 바람직한 환경보전 방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환경적으로 볼 때 사업계획이 부적절하거나 입지가 타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단호하게 계획을 철회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는 것 역시 제주도가 해야 할 몫이다. 도민 모두가 환경영향평가제도에 신뢰할 수 있도록 제주도의 부단한 개선노력을 당부한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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