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44. 김서경·김운성 지음, 《빈의자에 새긴 약속-평화의 소녀상 작가 노트》, 도서출판 말, 2016.

김서경·김운성 지음, 《빈의자에 새긴 약속-평화의 소녀상 작가 노트》, 도서출판 말, 2016. 출처=알라딘.

소녀상 조각 한 점이 한반도는 물론 일본 열도와 동아시아를 뒤흔들고 있다. 아이치트리엔날레의 전시 섹션인 <표현의 부자유전, 그후>에 출품한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 중단 사태를 맞은 이후 일본 열도는 물론 한반도에서도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일찍이 예술작품 한 점이 이처럼 첨예하게 나라와 나라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촉발한 사례는 보기 드물다. 이 책 《빈 의자에 새긴 약속》은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부부 작가 김서경, 김운성이 펴낸 책으로서 소녀상의 탄생 배경과 제작 과정, 그리고 작품에 대한 비평적 언술 등을 담고 있다.

김서경과 김운성은 1988년에 중앙대학교 조소학과를 함께 졸업한 이른바 캠퍼스커플이다. 김서경과 김운성은 작가로서 거의 한 몸처럼 움직인다. 부인 김서경이 작품 제작에 집중하는 내무부장관이라면 남편 김운성은 작품의 건립과 설치 등의 외무부장관이다. 부인은 소녀상 연계한 새로운 작품 제작에 집중하고 남편은 기획으로 이 작품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한다. 예술작품은 작업실에서의 제작만으로 완결구조를 갖는 게 아니라 세상 바깥과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이들은 몸소 체험했고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응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작품의 제작 배경과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2011년 12월 14일. 이날의 <평화의 소녀상>이 탄생한 날이다. 일본대사관 앞에서의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해서 세운 작품이다. 애초에 기념비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작가 부부가 소녀상으로 역제안하면서 이 작품이 탄생했다. 사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자신들도 잘 몰랐을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해서 밝힌 김운성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작은 비석은 물론 어떤 것이라도 세우는 게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비석도 좋지만, 우리는 조각을 주로 하는 사람이니 비석을 포함해 좀 더 사람들에게 다가가 공감하고 어울릴 수 있는 작업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단 하루를 세워 놓고 나서 철거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예 의미심장한 조형물로 제작해 보면 어떨까요?”

이 작품에 담긴 12가지 상징이야기를 소상하게 글로 풀어낸 대목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작품 같지만 그 속에는 피맺힌 한과 그 한을 풀어내려는 작가 부부의 치열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정면을 응시한 소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고, 맨발은 땅을 딛지 않고 있다. 어깨의 작은 새와 바닥의 할머니 그림자 등 디테일에 담긴 요소 요소의 의미를 차분하게 이야기해준다. 이 작품을 만든 김서경 작가의 인터뷰는 소녀상을 직접 빚어낸 심정을 들려준다. 

“원래 할머니들의 1000차 수요집회를 기념하기 위해 비석 디자인으로 시작한 형상은 일본 정부가 비석 설치를 반대하는 것에 격분해 할머니 형상으로 구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전쟁의 피해자로 처참한 상처를 받았던 당시 나이 대의 소녀상으로 작업을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의 상상력에 힘입어 할머니 그림자를 작품에 도입하면서 전체 디자인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2부에서는 이 작품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평가 받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비평적 글과 함께 부부 작가 인터뷰가 있다. 3부에서는 소녀상 미니어처와 함께 여행을 떠난 제주 곶자왈 작은 학교의 여행사진들을 비롯해 이들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한국 29곳, 해외 3곳의 소녀상 사진과 함께 건립과정을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다. 세계 평화의 소녀상 지도도 있다. 이 작품이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 전지구적인 의제로 확산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이미지다. 

작품이란 제작 단계에서 혼실을 다한 예술가에 의해 대부분의 것이 결정되지만, 설치 이후 세상 밖으로 나온 작품은 때때로 작가의 기대나 예술과는 달리 전혀 다른 양상으로 새로운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김서경, 김운성 부부 작가도 소녀상 현상을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소녀상 현상은 일반적인 예술적 소통에서는 보기 힘든 사회적 반향이다. 다음은 이 책에 실린 필자의 비평문 가운데 한 구절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사회적 소통 과정을 거쳐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회예술(Social Art)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예술의 사회적 소통을 위하여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회예술의 면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이치현에서 벌어진 예술 검열은 감성적이고 정치적인 역설을 창출하면서 동아시아를 하나의 예술공론장으로 묶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아이치트리엔날레가 자행한 예술 검열 사태는 동아시아의 예술공론장을 각성하는 (역)효과를 유발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예술은 평화를 노래하는 예술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군국주의 반대의 기치를 내세우며 투쟁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각성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현존하는 전쟁위협’과 잠재적인 호전주의 세력과 맞서는 것이 동아시아 평화예술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예술은 그대로 예술적인 것이며, 동시에 사회적 것이고, 때로는 정치적인 것이다. 이 점을 간과한 일본국 수상 아베 신조와 그의 친구들은 평화의 소녀상이 전 세계에 확산 건립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집요하게 방해공작을 펴고 있다. 

게다가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는 대놓고 예술탄압을 펼쳤다. 그 결과 고맙게도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와 전 세계의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이 작품에 담긴 사회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한 때 한일 갈등으로 비치기도 했던 이 사건은 위안부 문제가 한일 문제에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적 의제라는 점을 널리 알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베와 그의 친구들이다. 불역감호(不亦感乎). 이 또한 고맙지 아니한가!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경기문화재단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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