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르포] 제주동물테마파크 논란 선흘2리를 가다...한겨울 처럼 냉랭한 한가위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사무소에 걸려있는 흑백사진. 선흘2리는 중산간 마을이라는 한계를 딛고 주민들 간의 화합으로 급성장하던중 갑작스런 개발사업으로 인해 주민들 간 갈등을 빚고있다.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흥겹게 장단을 맞추고 있는 이 사진은 이제 옛 풍경이 되고 말았다.  

마을을 품은 거문오름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일은 마을 주민들의 큰 자부심이 됐다. 세계 최초로 선정된 람사르습지도시 역시 마을의 큰 기쁨이었다. 모두가 함께 이뤄낸 성과였기에 주민들은 더욱 하나로 뭉쳤다.

청정한 자연을 벗 삼은 삶을 닮고 싶은 이주민들도 하나둘 속속 모여들었다. 40여년의 역사를 지녔으나 폐교 위기를 가까스로 버티며 명맥을 이어오던 마을 내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도 최근 들어서는 유입인구가 늘면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천혜의 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된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는 그렇게 중산간 마을이라는 한계를 딛고 마을주민 화합과 이주민의 유입으로 내적 외적으로 모두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1년전까지의 얘기다. 

분위기가 180도 바뀌기까지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대기업 일가에서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 동물원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세워지면서다.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은 선흘2리 일대 58만㎡ 부지에 사자·호랑이·코끼리 등의 맹수 관람시설과 4층 규모의 호텔 120실, 동물병원, 사육사 등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명그룹 오너 일가의 첫째 딸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사업의 규모 만큼이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엇갈렸다. 도민사회는 물론 특히 선흘2리 지역주민들 사이에선 개발의 순기능을 주창하는 이들과 난개발의 폐해를 우려하는 이들로 양분됐다.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을 두고 갈라선 주민들 간 날선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사무소 앞 시민게시판이 쓸쓸하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마을 내 걸려있는 현수막. 민족의 명절 한가위지만 마치 한겨울 서릿발 같은 냉랭한 기운이 마을을 감돌았다. 

이 사업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입게 된 선흘2리는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의 내상을 입고 있다. 갑작스레 등장한 개발사업에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입장을 달리 한 주민들은 가면 갈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하루 아침에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어 버렸다.

급기야 마을이장이 주민총의 없이 마을발전기금 7억원을 받는 것을 골자로한 사업동의 성격의 마을상생발전협약서를 동물테마파크 측과 체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찬반 측은 서로가 서로를 고소고발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불과 얼마전까지 오름 능선처럼 형님 아우하던 우애 좋게 둥글둥글 살아오던 주민들은 각자의 찬반 입장에 따라 상대를 할퀴는 사이로 전락했다. 주민 간 갈등이 극에 달할 무렵에 얄궂게도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찾아왔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찾은 선흘2리 마을.

예년 같았으면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릴 이맘때, 마을 곳곳에는 '협약서 무효, 이장 해임', '동물테마파크 유치 환영' 등의 문구가 걸려있었다.

마을회관 앞 게시판에도 명절을 맞이하는 따뜻한 알림이나 마을발전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알리는 공고문은 온데간데 없고, 최근 진행됐던 마을 내 임시총회 등과 관련한 성명서만 처연히 붙어 있다. 

"지금은 길을 가다가 주민들끼리 마주치더라도 상대가 찬성-반대 입장이 다른 사람이면 인사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는 지경에 이르렀지. 참 이게 진짜 서글픈 일이로구나 싶더라고.

1966년도에 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았다는 고성삼(72) 전 이장. 선흘2리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앉은 자리에서 50여년간 지켜온 마을의 역사를 읊어 내려갔다.

"여기서 나보다 먼저 들어와서 산 사람 몇 없어요, 1940년대에 4.3을 겪으면서 중산간 마을 전부 소각시켜버리니까 버려진 마을이었거든. 1960년대에 마을 개척하겠다고 7명 정도 들어왔고, 그 후에 양잠단지가 생기면서 30호 정도로 늘었지."

고성삼 전 선흘2리장. 고 전 이장은 동물테마파크사업에 찬성하는 입장이나, 이 사업으로 주민들간 깊어진 갈등을 아쉬워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마을에 위치한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장. 한때 존폐위기까지 대두됐지만 최근에는 이주민이 늘어나며 활기를 띄고있다.

 

그는 40년 전인 1979년에 32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이장직을 맡으며 겪어온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때만해도 버스도 다니지 않았어. 뭐가 필요하다고하면 함덕까지 2시간씩 걸어가야 했어요. 마을도 재정이 있어야 공공사업이든 지원사업이든 받아낼 수 있는데, 우리 마을은 지원받을 곳이 없는거라. 사재를 털어서 버스 노선도 놓고, 개발사업 들어온다고하면 마을발전비를 받으며 겨우겨우 발전시켜 나간거에요."

고 전 이장이 동물테마파크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자연도 좋고, 뭣도 좋은데, 우선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거지. 선흘2리는 농촌인데 농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지역도 아니에요. 큰 공원이 들어서면 그래도 주민들을 위한 일자리도 생기고 마을도 활기를 띄지 않겠느냐는 거에요. 다른 의도가 있을게 뭐 있어."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제주 지역사회에 큰 상처를 남긴 강정마을을 떠올렸다.

"강정마을이 그렇다고 하더라고. 반대하는 사람과 찬성하는 사람이 가는 식당 자체도 구분돼서 서로 무시한다고.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어요. 난 (동물테마파크) 반대하는 사람들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마을을 위해 하는 것인데 우리와 다를 뿐이야. 그런데 마을을 뒤흔들면서까지 반대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거지."

최근 진행된 마을 임시총회에서 통과된 '이장 해임의 건'에 대한 소명 자료를 챙기던 정현철 선흘2리장도 고 전 이장을 거들었다.

"추석 전에 뭐라도 매듭지어보려고 개발위원회를 열려고 했는데 감정만 쌓인채로 무산됐어요. 제 딴에는 열심히 해서 마을의 힘을 갖자, 가장 큰 목표는 마을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이렇게까지 바뀔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주민들도 얼마 되지않는 이 마을에서 사건이 계속 커지다보니 답답합니다. 밀실협약이라고 욕하는데, 나름 협약서에 찬성측 주장도 포함시키고, 반대측 주장도 포함시키느라 양쪽 모두에게 반발을 샀던거에요. 지금은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지다보니 저 역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합니다."

마을회관에서 발걸음을 돌려 선흘2리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의 박흥삼 위원장을 찾아 갔다. 그에게도 이번 추석이 서글프기는 매한가지였다. 

"지나가다 만나도 서로 고개를 돌려서 인사를 안해요. 명절인데 누구 마주칠까봐 밖에 나가기도 영 찝찝하더라고요. 진정한 마음으로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차기 이장을 빨리 선출해서 봉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사무쇠 내 게시판.

그는 단순히 '화합'이라는 구호만으로 주민들 간 깊게 패인 불화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변화라는 것이 원래 상충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이해해요. 하지만 그것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을 하면 그때는 화해가 되는거지. 그런데 지금은 자기 주장이 무엇인지만 드러내려고 하고 있잖아요. 우리 입장에서도 찬성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면 너무 차이가 크다는거죠."

"찬반의 논리를 차분하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반대하는 주민들이 무엇 때문에 생계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콩고물을 얻어 먹을 생각이었다면 이미 적당한 때 물러섰겠죠. 반대하는 이유는 100% 마을과 제주도의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는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어요."

박 위원장은 이번 명절은 주변을 돌 볼 새도 없이 반대위 활동을 정리해야 하는 개인적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진정으로 마을을 생각한다면,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보여주려거든, 주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물론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지만, 같이 살아온 마을사람들이고, 같이 살아갈 주민들입니다. 어떻게든 정리가 돼야 할 때에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거문오름과 웃바매기·알바매기 오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형제처럼 든든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선흘2리 마을에 한겨울 서릿발같은 냉랭한 기운이 역력했다. 휘영청 떠오른 팔월 한가위 대보름달도 이들에겐 야속한 풍경일테다. 찬반 갈등을 풀어낼 해법이 선뜻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선흘2리를 돌아 나오는 기자의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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