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 숨, 쉼] 명절은 본디 '공포'가 아니라 '모두의 잔치'

추석 명절을 앞두고 친구들과 나눈 대화.

“우린 이번 추석에 가족여행 가기로 했어. 벌초할 때 조상님들에게 미리 절하면서 양해를 구했지. 사실 명절은 가족 화합을 위한 자리 아니. 그런데 옛날보다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기가 쉽진 않잖아. 군대 간 큰 아들은 빠지고 육지서 학교 다니는 둘째와 제주에 있는 가족들이 서울서 만나 추석연휴 같이 보낼 계획이야.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한 번 해보려해.”

“난 남편과 의논해서 이번에는 꽃과 과일만으로 차례 상을 준비해볼까 고민 중. 명절 음식 열심히 준비해봐야 사람들이 많이 먹지도 않잖아. 그래서 차례 상은 간단히 차리고 적갈할 고기로 불고기나 찜을 해서 내볼까 생각해. 근데 친정어머니에게 얘기했더니 음식하기 싫으면 사서라도 하라고 하더라. 싫은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했으니 상황에 맞게 상을 차리고 싶은 건데 결정하기가 쉽진 않다.”

나는 친구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고 또 응원한다. 이 친구들과는 사실 몇 년 전부터 꽃 과일 차례 상 이야기를 했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인데 조상님에게 인사하는 방법도 좀 달라져야 되지 않겠냐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명절 음식이 그 자체로 특별한 이벤트였으나 지금은 아니라고. 명절의 주된 목적은 화합이므로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차림을 정해 온 가족이 같이 하면 좋겠다고. 같이 차림 음식을 정하고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 명절의 목적인 화합으로 가는 길 아니냐고.

이야기는 많이 오갔지만 막상 실천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고민만 할 뿐 아직 실천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다만 명절을 같이 준비하는 동서와 의논해 상에 올릴 적갈과 야채 떡 등은 꼭 필요한 만큼만 준비하고 아쉬우면 특별 음식을 내기로 했다. 그래서 올해 설에 나는 황태구이를 준비 했고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받았다.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지난 열흘 여간 비가 계속 내렸다. 비 내리다 잠깐 비 그치고 햇볕 날 때 돈내코 탐방로 입구에서 찍은 가을 하늘. 저렇게 예쁜 하늘을 다 같이 공평하게 즐길 수 있어 좋다. / 사진·글 홍경희. ⓒ제주의소리

며칠 전 뉴스를 보니 ‘명절 포비아’가 화제였다. 구인구직업체 사람인이 직장인 14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명 가운데 2명꼴인 39.8%가 명절포비아를 느낀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명절 증후군을 넘어서 명절 공포라니. 이건 아니지 않은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이제 박제된 언어인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간다면 몇 년 뒤에는 5명 가운데 3명이 아니면 4명이 명절 공포를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좀 더 현실적으로 추석 명절을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설문조사 내용을 보니 미혼자는 결혼 취업등과 관련한 어른들의 잔소리를, 기혼자는 용돈 교통비 선물 등의 경비를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명절이 공포가 아니라 즐거운 잔치라는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생각으로는 우선 세대 간 소통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어른들은 옛이야기만 하며 혀를 찰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지 물어봤으면 좋겠다. 젊은이들도 어른들의 조언을 무조건 무시할 게 아니라 경청해주었으면 좋겠다. 음식 차리기는 여자가, 차례를 지내는 것은 남자가 하는 것도 모두가 같이 하는 걸로 변했으면 좋겠다. 

너무 어려운 일일까, 꽃 과일 차례 상. 아직도 너무 이른 것인가.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 http://jejubook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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