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 선생님께서 오랜 육지 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와서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에 온힘을 기울이시는 것을 보면서, 올바른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가진 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늘 얘기하지만 우리나라는 남는 것이라고는 사람뿐이어서(앞으로는 이마저 모자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 시키느냐 하는 것이 국가의 앞날을 결정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교육은 엉망진창이어서, 그저 선생님들께서 가르치는 것을 외우고, 스펙을 쌓는데 온 힘을 쏟느라 인성을 갖추고 지혜를 기를 여력이 없습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 서울대학교에 수시로 입학한 학생들의 평균 동아리활동 시간이 108시간이고, 봉사는 139시간, 그리고 교내 수상 실적이 30건이라고 하니(심지어 상장이 108개, 봉사활동 시간이 489시간인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정상적이 아님은 웬만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에 학교에 도서실을 개관하면서 도서위원으로 뽑혀 5월부터 9월 말까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11시까지(당시는 12시에 통행금지가 있어서) 거의 매일 도서를 분류하고 대출 카드를 정리하였으며, 도서실이 개관한 다음에는 일주일에 하루 방과 후부터 오후 11시까지 도서실 사서 역할을 봉사하느라 500시간 이상 봉사하긴 하였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대학 입학이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손자 손녀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므로 입시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잘 알고 있어서 이런 실적을 올린다는 것이 정상적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부 잘 하는 학생보다 올바른 학생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우리 애들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스카우트 활동을 시켰으며, 그 덕으로 애들이 올바르게 자랐다고 여겨져 지금까지 공갚음으로 스카우트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중학생만 되어도 공부에 지장이 된다고 스카우트 활동을 중단시키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우리 애들이 스카우트 활동을 열심히 하고서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제가 스카우트 활동을 선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만 거대한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제가 애들을 키우면서 신경을 쓴 또 한 가지는 신문을 읽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아들은 고3 때에도 저녁 늦게 자율학습을 끝내고 귀가하면 꼭 신문을 읽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애들이 비판 기능을 익히고 어느 한편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였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보수와 진보의 두 날개로 날아야 하며 ‘20대에 사회주의를 생각하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40대가 되어도 사회주의를 생각하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진보와 사회주의를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일반 보수주의자들이나 자본주의자들과 생각을 달리할 때가 많습니다. 이 점이 제가 노무현 대통령께서 탄핵을 받았을 때에는 반대하였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는 찬성한 배경입니다. 제가 판단한 기준은 국민의 신뢰였습니다. 비록 노 대통령께서 보수주의자들의 배척을 많이 받았으나 대다수의 국민들의 신뢰는 아직 받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탄핵에 반대하였으며, 박 대통령께서는 많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판단되어 탄핵에 찬성하였습니다. 

저는 정의당의 정강정책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고(故)노회찬 의원께서, 옛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었다면 뭉개고 지나갈 만한 일에 극단적 선택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심리적 부담을 느꼈으며, 처음으로 정당에 후원금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소위 진보라는 그룹에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내로남불’은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이보다 못 한 도덕적 잘못에도 수없이 낙마하였는데 그렇게 많은 비난에도 얼굴 하나 깜작하지 않을 수 있는지 감탄할 뿐입니다. 더욱 저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소위 진보 그룹이라고,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던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가치 판단이 안 될 수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자신이 성토하던 행동을 고스란히, 아니 어쩌면 더 적극적으로 하였는데, 그걸 편들 수 있는지 정말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그 분들 주장대로 과거 한나라당 사람들도 그렇게 하였지요.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그룹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둑질을 한 사람을 단죄한 검사나 판사가 도둑질을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판사나 검사가 도둑질을 하다 들켰는데 ‘다른 사람도 도둑질을 하니 나는 죄가 없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제가 진행하고 있는 HRA(Human Renaissance Academy. 제주대학생 육성 프로그램) 교수님들 중에 진보적 색채를 가지신 분들도 있어 꾸준히 경제적 후원을 해 주시던 보수주의를 가진 분께서 섭섭해 하시면서 후원을 중단하시기도 하셨지만, 저는 젊은 시절에 진보주의나 사회주의를 가져 보는 것도 젊은이들의 특권이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가치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행위입니다. 저희들 교육과정에서도 사설강독이 있는데 같은 논제를 가지고 사설을 쓴 진보 진영의 신문과 보수 진영의 신문을 서로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한번은 4.3 사건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데 0 : 23으로 진보주의 사설을 지지해 제가 학생들이 모르는 4.3사건의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였더니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하더군요. 지금 교육이 그렇게 편향되어 있습니다. 4. 3 사건은 분명히 국민들을 학살한 정부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 시초에는 좌익들의 봉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18명의 생존수형자들이 무죄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분들이 좌익 활동을 하였는데도 무죄판결이 내려진 것이 아니라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도 좌익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 무죄가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마치 4.3 봉기가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면 안 되지요. 좌익들에 의해서 무고하게 희생된 도민들도 또한 많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조지프 히스 교수가 쓰신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이란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분은 사회주의 철학자셨는데 살아 보니 자본주의자들의 오류가 보여 이 책을 쓰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들에 대해 철학자다운 평가를 하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 우리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갈등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많은 선각자들께서 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결국 진리는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을수록 우리의 삶은 풍부해질 것입니다. 중용이란 것이 중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 선생님께서도 익히 알고 계시겠지요.

다시 한 번 오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오 선생님의 노력이 우리 제주도, 나아가서는 우리 대한민국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에 나오는 것처럼 오 선생님께서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론을 보내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아라요양병원장 이유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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