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밭담의 비밀] ① 서론

흔히 '흑룡만리(黑龍萬里)'로 표현되는 제주밭담은 장구한 세월동안 제주선인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대표적 농업유산이자 생활유산이다. 바람을 걸러내고 토양유실을 막으며 우마(牛馬)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한다. 농지의 경계표시 기능도 한다. 밭담의 과학성과 창의성,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제주 출신인 이문호 전북대학교 교수가 제주밭담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보내와 네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이 논문은 올해 러시아 ACCT coding 세계학술대회(10월2~3일)와 한국인터넷방송통신학회지(10월호), 김구학술대회(전북대 개최, 12월6~8일)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편집자 글]

# 글 싣는 순서
① -Ⅰ. 서론
② -Ⅱ. 김구 판관의 밭담 네트워크 / Ⅲ. 밭담구조의 역학적 분석
③ -Ⅳ. 밭담은 가로세로 모서리 안에 큰 돌 작은 돌을 수직으로 붙인다 / Ⅴ. 유전자 '64 Trigram Nirenberg Codon'에 기반한 'Euler' 정리에 의한 밭담 및 스마트폰 코드
④ -Ⅵ. 결론

제주의 3대 발명은 1234년 김구 판관(1211~1278, 고려 고종때 문신)의 밭담, 제주 사람들의 방목 문화 관습에서 나온 정낭, 1406년 문방귀의 묘의 신(神)문(올레)등을 들 수 있다.[1,2] 

제주도가 등고선에 따른 ‘layer’ 계층으로 해안가 알드르 마을에서부터 웃드르 200고지 중산간 마을에 이르기까지 밭담이 들어서 있다. 밭담의 시원(始原)에 대한 연구 보고는 제주발전연구원 단장 강승진에 의해 많이 보고되었다.[3,4,5] 2013년 우리나라 농업유산이 국제연합(UN) FAO(Food and Agriculture Organizinge) 세계 중요 농업 유산등재로, 이에 따른 제주 밭담 아카데미 사업보고서 등으로 알려져 있다. 바람 많은 섬에서 농경을 위한 수단으로 밭담을 쌓았는데, 개간이나 경작과정에서 나온 돌 들 밭 가운데 모아 머들을 쌓고 그 작백을 밭 주위로 옮겨 외담으로 쌓은 게 밭담이다. 

제주섬 전역에 걸쳐 밭담이 쌓아질 수 있던 배경은 농지 소유 형태이다. 1900년대 중반 우리나라 전체 가구원 수는 5.4명인데 제주는 이보다 적은 4.2명이다. 1924년 기준 1호당 경기면적은 화강암 땅인 전남이 평균 1만 2천인데, 제주는 2만 2천으로 더 많다. 이유는 제주도 경작지 대부분이 화산 회토 현무암으로 비옥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박토나마 많이 확보해야 연명할 수 있었다. 한번 경작하고 나면 휴경을 하여 땅의 힘을 북돋아야 했다. 웃드르(제주 200m고지 중산간 마을)에 억새밭이 경우에는 밭을 갈아 메밀이나 참꾀 농사를 주로 지었고 최근에는 감귤밭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경작지를 늘려나가면서 밭담도 확장돼 나갔다. 

제주에 밭담은 정주형 방목화(定住型 放牧化, Graze Culture of Domiciliation)의 산물이다. 제주에 마을이 생기는 동기는 생수가 나는 바닷가를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소위, 알드르(제주 해변가 마을) 마을에 거주하면서 농경과 함께 마소를 방목하는 독특한 형태다. 마소(馬牛) 방목이 마을별로 이뤄지면서 소와 말이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정낭이 처졌고, 또 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밭담을 쌓았다. 19세기에 들어와 목장 안에 경작이 허가되면서 웃드르 중산간 마을에도 부분적으로 농경지가 생기면서 밭담이 생겼다. 이증(李增)의 <남사일록>에 나타난 1679년의 기록에 “밭 끝 사방에 주먹만 한 돌 들 둘러쌓아 소나 말이 함부로 들어올까 보아 막고 있다”고 하여 밭담과 목축과의 연관성을 언급하고 있다. 

1940년대, 중산간 마을에서는 이웃끼리 마소를 모아 목장에서 먹이고 저녁에는 집에 몰고 오는 ‘번쇠 테우리’를 했다. 1234년 24세의 김구 판관은 농지의 재산권 분쟁을 막기 위해 밭담을 쌓았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다. 힘 센 자들이 약한 이들의 땅을 빼앗아가는 조치였다. 이를 계기로 제주 전역에 밭담이 고루 퍼지게 됐다. 한편, 밭담이 1234년에야 조성된 것은 제주농업이 휴경(休耕) 농작법으로 땅을 한번 갈아먹고 나서 지력인 땅심이 소모되면 방치했다가 그 후 휴한(休閑) 농작법으로 땅심이 돋는 1~2년 또는 2~3년 후에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자신 소유의 경작지에 대한 경계(Boundary) 표시 밭담이 많이 늘어났다. 1950년대 중산간 마을 위 한라산 자락에 화전민의 농사 방법(休耕과 休閑)이기도 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 밭담이 태풍에 안 무너지는 이유는 밭담의 위치에너지가 정지상태의 등속도 운동을 하면서 관성을 가진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유목민은 목초 따라 움직였다면, 화전민은 땅심 따라 거주지를 옮겼다. 밭담의 언제부터 쌓아졌고 그 기능에 대한 보고는 어느 정도 발표되었지만, 밭담 성축에 대한 물리적 해석(Physical Analysis)은 미흡한 상태다. 본 논문의 동기(Motivation)는 밭담을 붙여 나갈 때, 괸돌을 밑돌로 하고 그 위에 괸돌보다 큰(작은) 돌로 쌓아, 사각형이나 직사각형으로 평면에 세워 펼친다. 마무리 시에는 옆면은 처음 세로 면처럼 마감한다. 밭담 사이에 바람 구멍은 삼각형, 사각형 모양이다. 현무암 돌은 대부분 감자 모양 비정형으로 가로세로 비율이 3대 4 정도이고 기공은 원추형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산 폭발 시 대기압과 기온, 바람 등이 작용한 결과로 현무암 돌덩이로 불규칙(Random)하게 생겨 난 것 같지만 그 속에 일정한 과학적인 규칙이 존재한다. 그 돌덩이 하나둘 등을 외담인 곡면으로 붙여나간다. 

본 논문의 핵심은 제주의 밭담이 태풍에 안 무너지는 이유는 밭담의 위치에너지가 정지상태의 등속도 운동을 하면서 관성을 가진다. 이때 관성의 원리는 대칭이다. 대칭이란 사물간의 등가성이다. 관성의 원리는 모든 등속도 운동의 등가를 뜻하며, 곧 모든 물체의 등속도 운동 상태를 방해하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 된다. 

또한 밭담은 크고 작은 돌담인 비직교 대칭 아다마르 행렬 구조로 쌓아 있기 때문에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안 무너진다. 즉 겹대칭(Folded Symmetry) 때문이다. 본 논문은 2장 김구판관의 밭담 네트워크, 3장 밭담 구조의 역학적 분석, 4장에 밭담이 중심에 큰 돌(작은 돌)을 쌓을 때: 비직교 중심 하중(荷重) 대칭 ‘Center Weighted Hadamard’ 행렬, 5장은 유전자 64 ‘Trigram Nirenberg Codon’에 기반한 ‘Euler’ 정리에 의한 밭담 및 스마트폰 코드를 다루고 6장에서 결론을 맺는다.

#참고문헌

1. 이문호, 제주의 門(Gate), 서귀포 문화원 연구보고서, 2017.
2. 이문호, 정낭 Gate 門, 영일, 2015.
3. Kang Seung-jin, <Je-ju Jeotdam>, Jeju Research Institute Jeju Jeitang 6th Industrial Chemical Business Foundation 2017.
4. 강승진, <FAO 세계중요농업유산 제주밭담의 가치와 지속가능성>, 제주 밭담 아카데미, 제주발전연구원, 2017.
5. Moon Ho Lee, <The Center Weighted Hadamard Transform>, IEEE, Trans. on CAS. vol.36, no.9 1989.

#이문호 교수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으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RMIT대학, 독일 뮌헨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기술부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 공학부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에 선정됐다.

현재 감귤과 커피나무 유전자 DNA 결합을 후성유전자 현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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