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30주년 기념 세미나..."중단된 대규모 증언채록, 자료 발굴 힘써야"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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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연구소는 27일 '창립 30주년 세미나'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30주년을 맞는 제주4.3연구소가 대규모 증언채록, 자료 발굴처럼 ‘기본 활동’에 충실해야 한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왔다. 나아가 다른 국내 과거사 진상규명 운동, 굵직한 제주 현안들과 연대하는 포용력까지 발휘하자는 조언이다.

제주4.3연구소는 27일 오후 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창립 30주년 세미나-제주4.3연구 30년 성과와 과제’를 개최했다.

세미나는 김영범 대구대 교수의 기조 발표를 시작으로 ▲허호준 한겨레 선임기자(제주4.3 진상규명 30년의 성과와 과제-미국 문헌자료 발굴 경험을 중심으로) ▲김은희 4.3연구소 연구실장(4.3진상조사와 구술 채록) ▲오승국 4.3평화재단 사무처장(외로운 대지에 새겨진 참혹한 길) ▲강남규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 이사장(운동으로서의 제주4.3-4.3연구소 활동을 중심으로)이 각자 준비한 내용을 풀어내면서 토론으로 이어갔다. 사회는 박찬식 4.3연구소 이사가 맡았다.

토론 참여자들은 제각각 연구소와의 남다른 인연을 밝히며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연구소의 발전 방향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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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강남규, 허호준, 김은희, 오승국. ⓒ제주의소리

# 강남규 이사장 “행동과 실천에 힘 줘야”

강남규 이사장은 엄혹했던 1978년 유신 말기, 수배자 신분으로 현기영, 강창일, 김명식, 서명숙 등과 시국을 고민하던 시기부터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4.3연구소 창립 전, 서울에서 제주사회문제협의회가 출범했고 ‘4.3연구소를 만들라’는 김명식의 '지령'을 받은 홍만기(초대 4.3연구소 간사)가 제주로 내려와 작업에 착수했다. 4.3연구소의 이야기는 10년 전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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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 ⓒ제주의소리

강 이사장은 “연구소의 노력은 국내외 연구자와 대중들에게 연구소의 위상을 높이고 4.3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연구소는 안주하기 시작했다. 외형적으로는 몰라보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의 활동들을 보면 연구소가 자력으로 행한 사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까지 보조금에 의존한 프로젝트 사업 방식을 견지할 것인지, 이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이 요구된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강 이사장은 “증언채록은 많은 성과를 보였지만, 상당 부분이 4.3 당시의 피해와 사건 전개를 중심으로 채록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후속 작업으로 생애주기 별 채록 사업으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증언채록의 성과와 경험을 공유하는 차원의 구술사 매뉴얼도 제작해야 한다. 이는 후세대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한국의 과거사 진상규명 운동과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학술위원회와 공동으로 주관한 학술행사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술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강정해군기지, 제2공항과 공군기지, 동물테마파크, 비자림로 확장 문제,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생활 오수, 쓰레기 대란과 지하수 고갈, 하수 범람, 난개발과 환경훼손, 강력범죄, 비정직 문제 등 최근 지역 현실에도 연구소가 적극 연대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연대의 원칙은 4.3문제만이 아니라 연구소가 지향하는 평화와 인권에 대한 모든 문제에 연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4.3문제에 대해서는 “주도적이고 지속적으로 선도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하루 빨리 자기정체성을 찾아라. 연구소에서 평화와 인권이라는 거대 담론은 존재하나 행동과 실천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 허호준 기자 “자료 발굴 시급”

허호준 기자는 “기자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사 인물 기획으로 ‘이덕구’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면서 4.3연구소와 인연을 맺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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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호준. ⓒ제주의소리

허 기자는 “4.3이 일어난 시기는 해방공간 미군정 통치 시기였기 때문에 수많은 한국 사회와 관련한 정보와 보고서를 생산해냈다. 특히 4.3시기 미군정은 일상적으로 보고서를 생산하고 이를 주한미군사령부와 미군정청이 있는 서울, 극동군사령부가 있는 일본 도쿄, 그리고 본국으로 보고 했다”면서 “이처럼 미국은 4.3의 전개 과정을 잘 파악하고 있던 주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온 뒤 공적 기관의 문헌 자료 발굴은 사실상 중단됐다고 볼 수 있다”며 4.3 연구에 있어 미국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허 기자는 미국 현지 조사를 포함한 미군 문헌자료를 모아 2001년 <제주4.3자료집 Ⅱ-미국무성 제주도 관계문서>를 펴내는 등 미국 내 4.3자료 연구 관련해서는 가장 정통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는 “미국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정부의 비밀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미국의 정보자유법 개정이 이뤄져 많은 정보들을 열람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정보자유법은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어 한국의 연구자들이나 언론인들도 미국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문서를 열람하고 복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4.3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한 곳도, 자료가 남아있는 곳도 미국이다. 증언 축적에 비해 새로운 기록의 발굴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 자료를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복사해 들여온 국내 기관(국립중앙도서관·국사편찬위원회 등), 일본 국회도서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등 여러 곳에 남아있을 4.3문헌 자료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은희 실장 “대규모 증언채록 다시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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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제주의소리

김은희 실장은 홍만기 간사와의 면접 겸 설득으로 연구소에 합류한 시기가 1990년 1월이라고 추억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구소 운영과 살림살이를 위해 노력하고, 생존자 한 명 한 명과 만나면서 역사를 남겼다.

김 실장은 “4.3연구소는 아쉽게도 1000인 증언채록 이후 예산 상의 문제로 대규모 증언채록은 중단된 상태다. 주제별 증언채록으로 한 해 동안 10~20여명 채록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면서 “반면, 4.3희생자유족회가 활성화 돼 예전보다 4.3경험자나 유족을 많이 만날 수 있고 말을 하고 싶다고 스스로 찾아오는 분들도 있다. 지속된 증언채록 사업은 없어 안타까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살아 계신 90대 어르신들을 최대한 만나 증언채록 하는 일, 2차 1000인 증언채록이라 해도 좋겠다. 다시 한 번 대규모 증언채록사업을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신신당부했다.

더불어 ▲증언자의 영상, 음성, 사진 포함해 스토리텔링 입혀 전시 ▲증언을 사건별, 연령별, 성별 등으로 구분해 증언집 발간 ▲그동안 구축한 증언 자료를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 마련 ▲증언자와 젊은 세대간 만남 통해 4.3의 세대전증에 기여 ▲아카이브 구축, 구술기록관 설립 ▲구술기록 관리 전문가 양성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 오승국 처장 “4.3유적지 이제라도 보존 필요”

오승국 처장은 문화운동협의회 등으로 4.3문학 운동에 매진하던 청년 시절을 떠올렸다. 특히 “평소에는 조용히 있었지만 밤에는 늘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했던 연구소 회원이었다”고 밝혀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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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국. ⓒ제주의소리

그는 “4.3유적지는 크게 ▲잃어버린 마을 ▲4.3석성 ▲주민 피신처 ▲학살터 ▲민간인 수용소 ▲주둔지(군·경·서북청년회·무장대 등) ▲희생자 집단묘지 ▲4.3 관련 비석 ▲역사 현장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서 “최근 4.3특별법에 의해 유적지 종합 정비 사업이 미흡하지만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면서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섯알오름 학살터와 너븐숭이 공원, 낙선동성터, 성산리 터진목 학살터, 백조일손지지, 현의합장묘 등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오 처장은 “4.3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이 자유롭지 못하던 과거에는 제주의 들판과 오름을 오르며 4.3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일이야 말로 또 하나의 역사바로알기 운동이었으며, 4.3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한 귀중한 4.3운동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 중요성은 살아있다”면서 “그러나 최근에는 비계획적이고 몰역사적인 개발로 인해 훼손되고 아예 없어지는 유적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펜션 업자에 의해 마을을 끼고 대규모 건축 사업이 이뤄진 서귀포시 영남마을을 꼽았다. 

오 처장은 “섬 전역에 산재해 있는 4.3의 다양한 유적지들은 진상규명과 더불어 당시 실상을 증빙하는 또 다른 형태의 근거이자, 통곡의 4.3역사를 후손들에게 생생히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면서 체계적인 유적지 보존을 강조했다.

한편, 제주4.3평화기념관 2층에서는 <4.3연구소 30주년 기념특별전>을 진행한다. 전시에서는 각종 연구소 기록을 통해 지난 활동을 만날 수 있다. 1989년 4.3연구소 창립 당시  연구소 사무실이 있던 '공임쌀상회' 건물 풍경을 재현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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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연구소 30주년 기념특별전 전시장 풍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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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창립 장소였던 공임쌀상회를 재현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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