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40. 죽으면 고사리 단풍 잔디 단풍 다 지고 간다

* 테역 : 잔디, 제주의 토종잔디
* 지영 : 지고

사람이란, 한 생을 살고 난 뒤 죽으면 너나없이 저 세상으로 돌아간다. 이법이고 섭리다. 생을 누리던 이승을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곳을 막연히 일러 ‘저승’이라 할 뿐 그 저승이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아무도 모른다. 실체를 모르면서 이 세상이 아니니 그저 저승이라 할 뿐이다.
  
종교에 따라 극락일 수도 있고 천당일 수도 있다. 다만 죄업을 지은 자는 좋은 곳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진다 한다. 화염이 날름거리는 연옥, 아비규환의 세계다. 그곳에 떨어져 말 못할 고통을 겪게 된다 한다. 참혹하다는 그곳을 먼발치에서라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이란 유한한 존재다. 이 세상에서 생을 누린 수명이 80이 됐든 100세가 됐든 수를 다하면 돌아가고 만다. 돌아가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인생은 덧없다, 속절없다고 말한다. 이승에서 누리는 시간이란 억겁(億劫)의 시간에 비하면 한 찰나(刹那)에 불과하다. 65분의 1초, 눈 깜빡할 사이다. 그 짧은 시간을 아옹다옹 다투고 부대끼고 버둥대니 참으로 허망하다 아니할 수 없다.

살아생전 호화롭게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던 사람이나, 가난에 쪼들리면서 궁핍 속에 불운과 불행에 눈물 흘리던 사람이나 사후에 가는 곳은 한곳이다. 손바닥만한 땅속에 묻혀 깊은 잠에 들어야 한다.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이다.

차사본풀이 중 질치기. 저승가는 길을 닦는 장면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허망한 게 인생이니, 짧은 인생을 허투루 무모하게 소모적으로 살아서야 되겠는가. 뜻있게 살아 한때, 이곳에 생을 놓았었다는 빛나는 족적 하나 남겨야 하는 것이지. 사진은 차사본풀이 중 질치기, 저승가는 길을 닦는 장면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사람들은 이런 허무하기 그지없는 사람의 생애를 인생무상이라 토로한다. 불꽃놀이 할 때, 현란하게 하늘을 수놓던 불꽃은 한순간에 지워지고 만다. 눈앞을 스치는 헛기운 같기도 하다. 

인생을 풀잎의 이슬 같다 해서 ‘초로(草露)라 빗대기도 한다. 햇살이 비치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게 이슬이다.

인생무상을 달리 비유한 말이 눈길을 끈다.

‘설니홍조(雪泥鴻爪)’ 

눈 설, 진흙 니, 기러기 홍, 손톱 조. 

기러기가 눈 녹은 엉망진창 위에 남긴 발톱자국이라는 뜻이다. 얼마 안 가서 그 자국은 지워지고, 또 기러기가 날아간 방향도 알 수 없다는 데서 흔적이 남지 않거나 간 곳을 모른다는 말이다. 특히 인생의 덧없음을 실감 나게 표현했지 않은가.

무덤 위에 단풍 든 고사리가 무성해 바람에 너울거리고, 위를 덮고 있는 잔디도 단풍이 든다. 그 안에 누가 묻혀 있든 고사리는 너울거리고 잔디도 누렇게 물들어 있다. 조금도 다르지 않고 무엇 하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반한 곳이든 외진 곳이든 몇 평 안되는 땅속에 묻히면 그만인 게 인생이다. 죽어 등짐으로 지고 가는 고사리 단풍이요 잔디 단풍이 아닌가.

가택신(家宅神)인 성주신과 그 부인인 터주신의 내력을 얘기하는 무가(巫歌)로 집의 신인 성주신을 모시는 굿을 하거나 독경할 때 부르는 성주풀이에 이 인생무상이 여실하게 담겨 있다.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신이 그누구뇨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그러하구나.

사람이 죽으면 땅속에 묻혀, 고사리 단풍 잔디 단풍 지고 가는구나.

허망한 게 인생이니, 짧은 인생을 허투루 무모하게 소모적으로 살아서야 되겠는가. 뜻있게 살아 한때, 이곳에 생을 놓았었다는 빛나는 족적 하나 남겨야 하는 것이지.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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