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19) 제주 최대 현안, 청와대 입장 필요해

올해 잦은 비 날씨와 태풍으로 농민들의 심정이 말이 아니다.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의 고충은 두 배로 크다. 10월 내 기본계획 고시를 장담하는 국토교통부의 제2공항 강행의지에 심적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올해 농사마저 망치게 되니 주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2공항 예정지 발표 이후 주민들은 해마다 ‘어쩌면 올해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농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이른 새벽 밭으로 향한다.

국토부는 지난 6월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수립 용역 결과가 나온 이후 10월 기본계획 고시를 기정사실화 해 왔다. 기본계획 고시에 앞서 전략환경영향평가 등 진행해야 하는 법적·행정적 절차가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조기에 고시하기 위해 앞선 절차들을 부실하게 처리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2공항 건설계획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이 제출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부실평가는 물론 환경영향평가협의회 구성과정에서 법규 위반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국토부의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는 그 준비단계는 물론이고, 평가서의 조사방법과 조사내용, 대안 검토 등 모든 면에서 최악의 전략환경영향평가였다.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환경부마저도 이례적으로 평가서 초안에 대해 많은 양의 검토의견을 제출했고, 특히 여러 중요 검토사항에 대해서는 꼼꼼히 의견을 작성해 전달했다. 기존 제주공항을 포함한 다양한 대안의 비교·검토와 국가 환경계획과의 부합성, 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 등의 검토의견이 있었다. 조류 및 주요 생물종의 계절별 조사, 법정보호종의 정밀조사, 지하수보전지구의 보전방안 수립, 신규 동굴 분포 정밀조사 필요성 등의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국토부는 환경부의 보완요구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환경부로부터 검토의견을 전달받은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제출했다. 환경부의 검토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리 만무했다. 공항 건설의 중요 검토 사항은 물론 제2공항 입지의 환경적 특성을 반영한 입지 적정성 검토도 없었다. 주민 수용성 확보방안 검토 역시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국토부가 협의를 진행해야 할 환경부의 권한과 역할마저 무시한 행태로 밖에 볼 수가 없었다. 10월 고시만을 목표로 절차적 정당성은 아예 생각지도 않은 셈이다.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서 숨골·동굴입구가 다수 발견됐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서 숨골·동굴입구가 다수 발견됐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최근 제주도의회는 제주도민 1만2000여명의 서명으로 제출된 제2공항 공론화 청원을 받아들여 도민 공론화를 추진하기로 의결했다. 환경부도 전략환경영향평가서 검토의견에서 주민 수용성 확보방안으로 공론화 또는 갈등조정 협의회 구성·운영 등을 예로 들어 국토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토부와 제주도는 도민 공론화 방안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거부의사를 밝히고 있다. 거쳐야 할 절차는 대충 진행하고, 정책 추진과정에서 일고 있는 주민들과의 갈등해결의 대안은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이 현재 국토부와 제주도의 입장인 것이다. 

부실한 평가는 물론 대안 검토와 환경성 조사를 거짓으로 하고, 평가과정을 위법하게 진행했다는 지적마저 일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환경부의 판단이 주목되고 있다. 현재 환경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에 대한 검토를 한 후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국토부에 보완요구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본인들이 제출한 검토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고, 차마 전략환경영향평가서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평가서를 두고 협의를 진행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절차적 정당성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제2공항 계획을 강행하는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청와대 앞 농성을 시작하려고 상경했다. 절차적 투명성 확보와 주민 상생방안 마련을 약속한 대통령의 공약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사실 이 공약은 국가정책을 추진하면서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으로 공약이라 말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마저 무시하는 국토부의 행정행위에 대해 청와대는 여전히 침묵 중이다. 

제주의 최대 현안인 제주 제2공항 문제에 대해 이제 청와대가 분명한 입장을 내놓을 차례다. 더 이상 주민들과 정부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또한 주민들과 갈등 악화를 자초한 국토부는 지금이라도 기본계획 고시 강행을 중단해야 한다.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도민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국토부가 의도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현재 도민사회 스스로 나서서 제2공항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론화 결정을 존중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이것이 제2공항의 문제를 푸는 해법이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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