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13. 사직서 강요에는 절대 작성 말아야

사측으로부터 사직서를 강요받는 상황이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사직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제주의소리
사측으로부터 사직서를 강요받는 상황이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사직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제주의소리

친구나 애인간의 관계에서 ‘절교하자’, ‘우린 여기까지야’라는 일방적인 의사표현이 꼭 진심이 아닌 경우가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에서는 어떨까? ‘내일부터 해고입니다’, ‘직장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내뱉은 일방적인 표현이 진심이 아니었다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20대 초반 새내기 노동자의 일이었다. 입사한지 3개월여 되었을 무렵 직장상사와의 면담이 있었다. 처음에는 일상적인 면담으로 알았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우리 회사와 당신은 맞지 않는 것 같으니 근로관계를 종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황하고 억울했다. 지각한번 하지 않았고, 나의 일을 비롯해 선배들이 시키는 일도 최대한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었다. 우수할 것 까진 없더라도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회사에서 잘려야 하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상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식은땀이 나고 당황스러웠다. 면담을 진행하던 상사는 그에게 서류하나를 내밀었다. 사직서였다. 무슨 잘못을 한지도 모른 채 죄인이 되어버린 그에게 사직 이유는 “개인사유”로 적으라는 상사의 마지막 업무 지시가 내려졌다. 

사직서를 제출한 다음날 상담소로 연락이 왔다. 억울하게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는데 이런 경우 구제방법이 있는지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사직서를 작성했더라도 실질이 해고인 경우 부당해고라고 답변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한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였다. 사직서를 제출한 날이 주말이었고, 아직 사직서가 수리되었다는 연락을 받지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사직의 의사를 취소하겠다는 내용을 회사 측에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부당해고를 다투는 과정에서 사직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기 때문에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 최대한 취소의 의사표시를 해보기 위함이었다. 몇 시간을 고민하던 새내기 노동자는 부모님과 최종 상의 끝에 ‘사회경험 했다’고 치고 이번 사건을 넘어가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혹시라도 동종업계에서 블랙리스트로 올려 지면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블랙리스트 자체가 불법이라 처벌받습니다”라는 나의 피드백은 법과 현실의 간극에서 허공으로 흩어졌다. 생애 첫 노동의 과정에서 겪은 부당함에 굴복되어버린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근로계약의 종료사유는 노동자의 의사 혹은 당사자 간의 동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사직(퇴직),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해고, 노동자나 사용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자동소멸 등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해고의 경우는 실제 사업장에서 불리는 명칭이나 절차와 관계없이 노동자의 의사에 반하여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근로계약관계의 종료를 의미한다. 

민법에서는 고용관계 해지에 대해 계약의 당사자가 1달 전에 통보하면 해지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노동이 생존의 수단인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아 특별법인 근로기준법에서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해고를 금지하여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노동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 사회통념상 인정될만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해고의 시기와 사유를 명시하여 1개월 이전에 당사자에게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1개월 이전에 통보해야 하는 것은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다른 생계수단을 찾을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지를 두기 위함이다. 만약 1개월 전에 통보하지 않고 즉시 해고한 경우 사용자는 1개월치 임금에 해당하는 해고예고수당을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해고가 발생한 경우 노동자는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통해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다. 본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에 대해 사용자는 그만큼의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일부 사용자들은 사실상 노동자를 해고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해고대상 노동자에게 허위로 사직서를 작성케 하여 해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본인이 그만두기 싫으면 사직서를 끝까지 안 쓰면 되는 것 아니냐. 결국 본인의 선택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겪는 일은 다양하다. 

위 예시처럼 당황한 나머지 사직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고, 회사가 어려워 곧 문을 닫으려고 하니 사직서를 작성해달라는 요청에 의해 작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직서를 작성해야 퇴직금이 제대로 나온다는 거짓 협박에 의해 작성하는 경우도 보았고, 심지어는 사직서를 작성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노동자를 기망한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사직서를 작성하면 ‘자발적인 이직’ 사유에 해당되어 실업급여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렇게 외형상 사직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해고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경우는 해고의 요건(정당한 사유 및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않은 경우가 많아 부당해고로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당시의 구체적인 정황상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사직서가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입증의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사측으로부터 사직서를 강요받는 상황이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사직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반대의 경우로 사직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사직처리를 계속적으로 반려하면서 근로계약을 지속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강제근로에 해당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이후 별도의 사례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사직서를 작성했더라도 나의 의사에 반한 것이 증명이 된다면 그 사직서는 무효가 된다. 다만, 그 증명이 쉽지 않으므로 형식적인 사직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고, 만약 의도치 않은 사직서를 작성토록 강요받고 있다면 즉시 노동상담을 통해 대응 할 수 있어야 하겠다. 

민법 
[시행 2018. 2. 1.] [법률 제14965호, 2017. 10. 31, 일부개정]

제107조(진의 아닌 의사표시) 
①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② 전항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