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칼럼] (6) 학교 밖에서 교육의 길을 묻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다. '학교밖청소년'에 대한 우리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비뚤어졌다. 패배자, 문제아, 혹은 낙오자…. 그들에게 붙는 왜곡된 꼬리표다. 제도권 학교를 떠났어도 학교밖청소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 끊임없이 날개를 펴려 한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대안교육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 학교밖청소년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글]

 

대안교육은 기존 공교육의 맹점을 보았을 뿐이다. 1등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관계 맺기, 즉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먼저임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다.  ⓒ제주의소리
대안교육은 기존 공교육의 맹점을 보았을 뿐이다. 1등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관계 맺기, 즉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먼저임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다. ⓒ제주의소리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고 하면 바로 이어지는 질문이 “대안학교에선 뭘 배우나?”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대안학교에 대한 호기심과 의구심이 섞여 있다. 때로는 내심 ‘어쩌려고 그래?’하는 우려도 포함돼있다. 그러니 질문에 대한 답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학교에서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친다고 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이 그것을 다 배운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면 빵점 맞은 아이는 어떻게 봐야할까. 아이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알고 싶은 것만 알아간다. 아무리 교사나 부모가 옆에서 잔소리를 하며 채근을 해도 어차피 배운 것을 재편집하는 것은 아이들 각자의 몫이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 같아도 그중 대부분은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한다. 그러다보면 전혀 입력이 안 되고 입력된 것이 없으니 저장할 것도 없어 빵점도 나오는 것이겠다. 부모들이여, 솔직해지자. 우리 다들 경험해보지 않았나.

지식정보 전달과 습득의 단순 기능만 놓고 봤을 때 이미 학교는 그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학교에서 잠을 자야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90년대 교실붕괴 때부터 나온 이야기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과목별로 최고의 강사진들 강의가 넘쳐난다. 심지어 무료다. 게다가 주요부분이나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무한 반복해 들을 수도 있으니 오히려 더 좋다. 지식을 전달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기능면에서 더 이상 설자리가 없게 된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학교는 그저 졸업장을 따기 위해 억지로 거쳐야하는 과정에 불과해진다. 학교의 비극은 거기서 부터가 시작이다.

학교에서 소위 모범생이란 소릴 들으며 성적도 나쁘지 않아 유명대학도 나오고 대기업 취업에도 성공한 이들이 정작 직장에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된다. 공부만 할 줄 알았지 다른 건 전혀 할 줄 몰랐던 아이라는 부연설명은 굳이 필요 없다. 안 그래도 대략적인 그림은 그려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사연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직장 꼰대들의 갑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그것만으로 해석하기엔 이런 사례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세태의 영향이었을까. 점점 사람들의 화두에 ‘사회적 지능’이라는 개념이 오르내리고 있다. OECD나 EU교육위원회에서는 이미 미래 사회의 핵심역량으로 ‘협력’을 꼽은바 있다. 우리사회에도 크고 작은 조직마다 ‘공감’과 ‘소통’이 늘 화두다. 모두다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족의 틀을 벗어나 사회를 본격적으로 경험하는 곳이 학교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만일 학교가 지식전달과 습득의 단순 기능에만 몰입해왔다면 관계 맺기 연습의 결핍은 당연한 귀결이겠다. 

대안교육이 이러한 사회적 추세를 미리 내다봤다고 한다면 아마도 점집을 차렸을 것이다. 그저 대안교육은 우리 학교교육의 맹점을 보았을 뿐이다. 모두가 지식전달과 습득에만 몰입해 1등만을 향해 달리던 시절 우리나라 대안교육의 모델이 되었던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는 ‘더불어 사는 평민’을 이야기했다. 

대안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관계 중심이다. 그래서 학교 일과 중에 제일 중요한 시간은 회의시간이다. 아이들로부터 원성을 사서 회의 안건에 자기 이름이 불리는 날에는 진땀을 흘려가며 온갖 논리를 끌어 모아 스스로를 변호해야 한다. 아이들은 바로 자기들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집중을 안 하려야 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신랄한 비판과 그에 따른 논리적 변호가 이어지기에 더 이상의 틀에 박힌 토론수업이나 도덕 교과서 따위는 필요하지가 않게 된다. 아이들은 그렇게 ‘더불어 사는 평민’을 연습한다.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자꾸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아이들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에만 집중한다. 아이들은 미래를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지금 이순간의 삶, 지금 이순간의 인생이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 대학진학 이후로 유예시켜놓은 수많은 것들 말이다. 그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 망가진 교육은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지금 행복한 아이들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이 사회의 소위 엘리트들이 왜 우울증에 시달리는지, 왜 많이 배웠다는 이들에게서 공감능력이 없어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우리에게 해결하지 못하고 던져져 있는 질문들이 너무 많다. 분노사회니 피로사회니 하는 온갖 병든 사회의 모습들도 주변에 널려있다. 

대학입시가 문제가 아니다. 이미 신입생이 없어서 난리인 학교가 수두룩하지 않는가. 대학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교육도 결국엔 사람이 먼저다. 그리고 그것은 끝까지 품고 갈 대안교육의 주제다. 이 주제를 품고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것이다.

지금 우리교육은 어느 길로 가고 있는가? <연재 끝>

# 유양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다. 평범한 목회자의 길을 택하기에는 공부가 체질이 아니란 자각을 거쳐 종교전문언론 기자로 바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언론 현장 역시 녹록치 않아 흘러 흘러 식품산업 전문지 <식품음료신문> 차장대우를 끝으로 짧은 기자 생활은 마무리 지었다.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 간디학교에서 대안학교 교사양성과정을 거쳐 경기도 파주시와 고양시에서 대안학교 교사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건 그만큼 실패를 염두에 뒀어야 하는데, 10년 끝에 맛본 좌절로 훌쩍 떠나고 싶어 제주 이주 열풍에 슬쩍 몸을 실었다. 이제는 제주의 보물섬학교 부모 입장에 서서 대안교육운동을 복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보물섬교육공동체의 간사 일과 제주대안교육협의회 간사를 맡아 학교밖청소년의 교육기본권 보장을 위한 생각들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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