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33) 아파트 심는 도시 / 김진숙

2017년 3월부터 약 1년여간 [제주의소리]에 '살며詩 한 편'을 연재했던 김연미 시인이 돌아왔습니다. '살며詩 한 편'은 김 시인이 직접 고른 시를 만나고, 여기에 담긴 통찰을 일상의 언어로 접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코너입니다. 시와 사진, 김 시인의 글이 어우러지는 '살며詩 한 편'은 2주에 한 번 토요일에 찾아옵니다. 김 시인의 글로 여러분의 주말이 더 풍성해지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자 주]

제주시 삼화지구 도시구획 공터에 자란 봄까치꽃. ⓒ김연미
제주시 삼화지구 도시구획 공터에 자란 봄까치꽃. ⓒ김연미

소도시 밭이던 땅에 세워진 팻말 하나

‘출입금지 경작금지 아파트 짓습니다’

어쩌나, 배추흰나비 밭담 훌쩍 넘는다

바뀐 세상 못 읽는 건 나비만이 아닌 게야

쇠비름 강아지풀 바랭이 쇠뜨기까지

뿌리와 뿌리를 묶고 스크럼을 짜고 있다

-김진숙 <아파트 심는 도시> 전문-

인간이라는 이성적 존재를 지극히 자본 논리의 틀 속에 기계적으로 집어넣어 살게 만든 게 아파트가 아닐까. 최소비용의 최대수익을 기대하는 거대기업의 논리에 따라 나눠진 몰개성의 획일적 공간 구획, 그 구획에 맞춰 사람들은 기존의 몸집을 줄이거나, 혹은 늘려서 들어가 산다. 

모여 산다고 해서 공동체문화가 형성되지도 않고, 모여 산다고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풍요 속에 빈곤이 있고,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듯이 위아래, 좌우, 다 사람들이 사는 집인데도 정작 웃으면서 왕래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럼에도 어쩌랴.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은 우리에게 이제 너무 익숙하다. 살다보면 거기에도 인간의 체온이 돌고, 콘크리트 벽 사이로도 웃음이 건너가고 또 건너온다. 의식의 구획을 그어놓고 먼저 손을 들어버리는 인간의 나약함이 더 문제이지 않을까. 경작 팻말 하나만으로도 손을 놓아버린 사람들과 달리 세상에 그 어떤 울타리도 없이 자유로운 배추흰나비, 바랭이 쇠뜨기가 부럽기만 하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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