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2공항을 반대한다] 제주 제2공항 '폭주'를 멈춰라 / 김동현 문학평론가

국토부는 수조 원의 혈세를 들여 제주 제2공항의 건설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제2공항의 필요성이라든가 이에 관한 자료의 은폐와 조작, 도민공론화를 무시한 추진 과정 등은 지난 4대강 공사의 판박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 제2공항이 공군기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의혹까지 제시된 상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낀 작가들이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관련해서 작가들의 릴레이 기고를 [프레시안]과 제휴 기사로 싣는다. / 편집자

국토부는 제주 제2공항을 제주도가 요청해서 추진하는 국책사업이라고 한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 사실이 아니다. 당초 용역의 명칭은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방안'이었다. 방점은 현 공항의 포화 문제 해결에 찍혀있었다.

잠시 2015년 11월로 돌아가자. 이날 국토부는 성산읍 일대를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확정, 발표했다. 아무도 몰랐다. 원희룡 도지사도 발표 몇 시간 전까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바로 직전까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었던 강창일 국회의원(제주시 갑)도 뜻밖의 발표라고 했다.

제2공항이 국토부가 말하는 대로 제주도민들이 요구한 것이었다면 제주의 정치인들조차 모르게 입지가 선정되는 게 과연 상식적인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국토부는 해명했다. 수조 원의 '국책사업'인 제2공항은 그렇게 제주에 던져졌다. 발표는 '깜깜이'였지만 추진은 '전광석화'였다.

그날 이후 제주의 시간은 멈췄다.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은 저항했다. 몸뚱이 하나로 소리쳤다. 우리의 외침이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각자의 목소리를 더해 소리치고 소리쳤다. 정부는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국책사업을 하는 동안 유례가 없는 타당성 재조사를 했다"(김현미 국토부 장관) 그의 발언은 '정부가 결정한 일에 웬 말이 많은가. 그나마 문재인 정부니까 재조사까지 한 것 아니냐'라는 말로 읽혔다. 철저히 시혜적인 입장의 발언은 도민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어떻게 문재인 정부에서…' 예전 정부와 최소한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설 경우 저기 저 오름들은 얼마나 절개되어야 할 것인가. ⓒ제주 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설 경우 저기 저 오름들은 얼마나 절개되어야 할 것인가. ⓒ제주 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기대했었다. 한 번 배신을 당했지만 그래도 한 번만 더 믿어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관료들에게 둘러싸인 국토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무늬만 '제주사람'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2공항 건설이 제주 미래의 명운을 건 사업'이라고 야단이었다. 도민들이 머리를 맞대 국토부 용역의 허점을 지적했다. 제2공항이 건설되면 사라지게 될 오름들이며, 동굴들이며, 직접 발품을 팔면서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천막에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은 천막으로, 말과 글로 싸울 수 있는 이들은 각자의 말과 글을 보탰다. 현재 공항 시설을 보완하고 확충해도 충분히 예상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자료도 확인했다.

'토론합시다' 도민들은 요구했다. 하지만 용역을 담당했던 전문가들은 토론을 피했다. 어렵게 토론이 성사되어도 전문적인 용역 결과를 믿어야 한다고만 했다. 그들에게 제2공항은 합리적 토론의 대상이 아니었다. '신앙'이었다. '제2공항이 건설되어야 항공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제2공항 건설은 제주 경제 100년의 미래를 바꿀 역사다' 대화가 아닌 구호였고 과학이 아닌 맹목이었다. 2015년 11월 이후 '촛불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 그 자체였다. 천막에서, 아스팔트에서, 우리들은 물었다. '왜 민주주의는 제주에서 멈추는가?' '청와대의 민주주의와 제주의 민주주의가 왜 다른가?'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2018년 4·3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날 대통령의 추념사처럼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조차 "통곡"이었던 제주였다. '봄이 온다'. 4·3의 아픔을 겪었던 제주 사람들에게 대통령이 말한 봄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말처럼 봄이 올 줄 알았다. 봄은 청와대 녹지원에서만 꽃을 피웠다. 대통령은 왔지만 그해 청와대의 봄과 제주의 봄은 같지 않았다.

서로 다른 봄을 지내서였을까. 2018년 10월 강정해군기지에서 열린 관함식은 시작부터 말썽이었다. 강정 주민들은 관함식을 반대했다. 마을총회의 결정이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바쁘게 움직였다. 시민사회수석이 다녀갔다. 청와대 의전을 총괄하는 탁현민 선임행정관도 내려왔다. 그들은 마을 총회 결정을 뒤집으려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났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설득'을 빙자한 '겁박'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VIP 참석'이 결정됐기 때문이었다.

총회 결정은 뒤집혔다. 주민들은 갈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정 주민들과 만났다. 선택된 주민들만 초대된 자리였다. 대통령은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정작 강정의 목소리는 경찰에 고착됐다. "문재인 대통령님,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사과입니까?" 강동균 전 마을회장의 외침을 에워싼 건 경찰의 '철통같은 방어막'이었다. 문정현 신부는 또 아스팔트에 쓰러졌다. "촛불이라면서, 촛불로 탄생한 정부라면서…" 강정의 외침은 끝내 대통령에게 가지 못했다. 그날 청와대의 민주주의와 제주의 민주주의는 같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이명박과 박근혜와 문재인 대통령이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4.3추념식에서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다."고 발언했다. 그렇지만, 제주의 봄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4.3추념식에서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다."고 발언했다. 그렇지만, 제주의 봄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선택된 환대'와 '잘 짜인 각본' 앞에서,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국가와 제주 사람들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달랐다. '토론합시다' 3당 합당 과정에서 故노무현 대통령은 거세게 항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토론합시다' 천막에서,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우리들은 외쳤다. '토론합시다', '국가가 결정하면 따라야 된다'는 당위가 아니라 '국가'도 틀릴 수 있으니 토론하고 토론하자.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소박하지만 정당한 요구를 정부는 끝내 외면했다. 이 과정에서 대중지성의 힘은 국토부 용역에서 중대한 오류를 찾아냈다. 제2공항 예정지에 69곳의 숨골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에는 8곳이라고 되어있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조차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검토의견에서 제2공항 입지선정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제2공항 건설의 명분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국토부는 제2공항 건설을 강행하려 한다. 공항 건설의 명분도 없고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절차도 무시하고 있다. 국토부가 외면하고 청와대가 침묵하는 동안 제2공항 예정지에 포함된 주민들은 오늘도 천막으로, 아스팔트로 향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선택이 아니다. 청와대의 민주주의가 다르고 제주의 민주주의가 다르지 않다. 청와대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제주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다르지 않다면 제2공항 폭주는 멈춰야 한다. 명분도 절차도 사라졌다. 현기영 작가가 "포클레인의 삽날에 토착의 뿌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한지 30년이 지났다. 이미 충분하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멈춰야 한다. 한 발 앞으로 가면 벼랑이다. 벼랑을 앞에 두고 가장 좋은 대안은 일단 멈춰 서는 것이다. 제2공항 건설은 제주를 끝없는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최후의 악수(惡手)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김동현 문학평론가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의 제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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