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수도이전·호남고속철엔 '어깃장'…싫다는 군부대엔 '님비'

'균형발전'을 위한 서울지역일간지들의 '정성'이 눈물겹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3일자 사설과 칼럼에서 제주 해군기지 추진 논란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해군기지 건설엔 8000억원이 든다고 한다. 제주 도민과 기업들에 많은 일감이 생길 것이다. 국방부는 별도로 700억원을 들여 해상공원·잠수치료센터 같은 지역지원 시설을 짓고 500억원으로 군 휴양시설도 만들겠다고 밝혔다."(조선일보 3일자 사설 <"해군기지 유치할 테니 시민단체는 참견 말라">)

"기지가 건설되면 일자리 6000여 개가 생기고 '평화의 섬' 이미지로 관광 효과도 기대된다. 해군은 적절한 땅값 보상, 환경오염 방지를 통한 어업자원 보호, 의료 복지시설의 주민 공동사용을 다짐한다. 강정마을의 번영이 '군부대를 거부하는 님비'에 타산지석이 됐으면 좋겠다."(동아일보 3일자 칼럼 <'해군기지 강정마을'>)

   
  ▲ 조선일보 5월3일자 사설.  
 
서울에 비해 경제자립도가 떨어지는 지역에 일자리와 보상금을 줄테니 해군기지를 받으라는 것이다. 아울러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이 지난달 27일 해군기지 유치의사를 밝히자 그 용기도 높이 치하했다(조선일보 3일자 기사 <"우리 마을을 해군기지로" 제주 어느 어촌의 용기>).

   
  ▲ 동아일보 5월3일자 칼럼.  
 
3일 <'해군기지 강정마을'>을 쓴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지난달 16일자 칼럼 <군부대까지 님비의 대상인 세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 지역(이천)은 특전사가 개인 재산과 지역 경제에 미칠 마이너스 효과, 팔당 상수원의 오염 문제 등을 염려한다. 그러나 지역 경제에 상당한 플러스 효과도 있을 것이다. 주민들은 특전사의 안보 기능도 헤아려 보길 바란다. 송파신도시와 이천 사이에서 이리저리 떼밀린다면 특전사가 설 땅은 어디인가. 군부대 이전 같은 국가적 사업이 '님비'의 대상이 되면 안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 군이건 주한미군이건 이들이 있을 곳에 있어야 할 이유는 경제 이전에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다. 안보 없는 경제는 없다."

안보 없는 경제가 없다면, 지역 없는 서울도 없다. 서울시민 아파트를 짓기 위해 이천시민 땅을 빼앗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제주나 이천이 군부대를 안 받으면 '님비'가 된다. 하지만 지역에서 달라는 것은 정작 주지 않는다. 지난해 8월24일자 중앙일보는 호남·강원 시민들이 두고두고 기억해야 하는 사설 두 편을 실었다.

"그렇다면 경기북부지역은 가만히 앉아 홍수 피해를 매년 고스란히 당해야 한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한탄강댐 계획대로 추진해야>)
"지역개발을 한다고 국민세금을 아무 곳에나 함부로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적자 뻔한 호남고속철 왜 강행하나>)

   
  ▲ 중앙일보 2006년 8월24일자 사설.  
 
강원도민들이 싫다는 댐은 한사코 세워야 하고 호남시민들이 바라는 고속철은 내줄 수 없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경제성만 따질 일이 아니다"라는 대통령 말에 "정치논리에 의해 추진되고 있음을 드러냈다"(중앙일보)며 의기양양이다.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생각해 달라"는 호남 사람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에 보여줄 도리는 있어도 자국민에게 보여줄 그것은 없다("미 공군에 사격장을 제공하는 것은 한미 동맹 문제 이전에 우리의 도리다." 세계일보 2006년 8월18일자 사설 <미군 사격장, 반대만 할 일인가>). 그러면서도 미군기지는 평택으로, 방폐장은 경주로 보낸 데 이어 특전사는 이천으로, 해군기지는 제주도로 보내거나 새로 세우려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3일자 사설에서도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때도, 평택 미군기지 때도 그 이름이 그 이름인 시민단체들이 주민들을 자극해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았다…우리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데까지 반미를 끌어들인 것"이라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강남이 반대하는 것은 제 일처럼 앞장서면서 '서울공화국' 밖 국민들의 주장은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이고, 행여 미군문제로 항의하면 '반미선동' 딱지를 붙인다.

해군기지를 유치하려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요구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경제력을 앞세워 국책사업을 밀어붙인 중앙정부와, 과정상에 일어난 공공갈등의 책임을 중앙정부·지자체가 아닌 시민단체에 묻는 언론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관습헌법'이라는 기상천외한 헌재 판결을 들어 수도이전 결사반대를 외쳤고, "지역개발을 한다고 국민세금을 아무 곳에나 함부로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르짖던 서울지역언론들이다.

   
  ▲ 지난 2003년 11월21일 저녁 반핵시위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전북 부안군민들이 부안수협으로 통하는 길목에 삼삼오오 모여 핵폐기장 건설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전남매일 박호재 편집국장은 지난 2004년 10월28일자 칼럼 <서울공화국이여 영원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게 정상이 아닌 이 치매 걸린 정치판에 균형발전을 위한 대안을 또 내놓은들 무엇하랴.…그래, 서울공화국이여 영원하라.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그렇듯 한없이 커지다 보면 필자가 살고 있는 이 곳 광주도 언젠가는 수도권이 될 테니까." 

   
  ▲ 지난 2005년 7월10일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서 경찰이 행진 중이던 집회참가자들을 길 밖 밭두렁까지 쫓아오며 방패와 곤봉으로 강제해산하고 있다. ⓒ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균형발전'을 걱정하는 서울지역일간지들의 '충심'은 알겠지만 "정부가 진정으로 지방분권시대를 앞당길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이제라도 명분 없는 고집을 버리"(조선일보 2003년 12월12일자 사설)란 주장을 '서울공화국' 밖에서도 똑같이 적용하길 바랄 뿐이다. "생계보장과 환경보호 같은 합당한 반대 때문에 사업 추진이 중단될 일은 그만 벌이자…대형사업일수록 시간이 들더라도 모든 걸 깨놓고 원 없이 논의해 모든 이의 이해를 구한 뒤 추진하자"(중앙일보 1월30일자 기사 <축복 받는 국책사업 만들자>)는 감동적인 주장도 하지 않았던가.

   
  ▲ 지난달 13일 김장수 국방장관의 제주도청 방문 당시 도청을 막아선 경찰병력이 제주시민들을 강제연행하고 있다. ⓒ 제주의소리

 

미디어오늘/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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