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34. 조수 웅덩이 : 바다의 시작(The Tide Pool : Where the oceans), 임형묵, 2019.

영화 ‘조수 웅덩이 : 바다의 시작’ 스틸 컷(제공=임형묵). ⓒ제주의소리
영화 ‘조수 웅덩이 : 바다의 시작’ 스틸 컷(제공=임형묵). ⓒ제주의소리

어렸을 때 여름이면 화북 바다에서 놀았다. 바닷게처럼 그 바다에서 여름을 지냈다. 여름이면 화북 바다로 이동하는 화북 아이들의 습성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생태계였다. 바다로 갈 때는 별도천 따라 걸었다.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 곤을동 부근에서 우리는 첨벙대며 놀았다.

해가 저물어서야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웃통을 벗고 햇빛 아래에서 놀아서 등이 다 탔다. 피부가 다 벗겨질 정도였다. 다른 계절은 겨울잠을 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름이 우리의 계절이었다. 바다거북처럼 바다에 웅크려 지냈다.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면 어린 우리들은 영락없는 똥깅이였을 것이다. 바다, 갯바위, 조수 웅덩이에서 기어 다녔다. 영화 ‘조수 웅덩이 : 바다의 시작’은 제주 바다 생명의 시작을 보여준다.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

영화는 관련 학자들도 무심했던 제주 조간대를 보여준다. 그곳이 숨쉬고 있었다.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만든다. 사람 살아가는 것과 조간대 생물들이 살아가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않다.

어쩌면 제주도 전체가 그냥 웅덩이다. 나무가 자라고, 새가 날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그곳을 매립하고, 건물을 짓고, 비행기가 날아오게 하니 제주라는 조수 웅덩이는 위기의 시작이 되었다. 이제 화북 바다에서 여름이면 아이들이 노는 풍경은 보기 힘들다. 생태계가 달라졌다.

임형묵 감독의 카메라가 제주 바다를 지킬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계속 되어야 한다. ‘조수 웅덩이 : 바다의 귀환’, ‘조수 웅덩이 : 바다의 역습’이 기다려진다. 제주도가 고담시가 되지 않으려면 악당을 물리친 히어로가 필요하다. 임형묵 감독이 배트맨이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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