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석윤 (사)공공정책연구소 나눔 소장

올레길은 방문객이 많이 찾는 길 가운데 하나이다. 올레길에서 골목길 나아가면 한질로 이어지는 구조다. 예전 우리 동네의 문화연결망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 이 길을 찾는 사람 대다수는 외부인이지만 이 올레길과 어귀에 사는 사람들도 이제는 이주한 사람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올레길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세상과 나누던 문화와 연결 방식이 달라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주거환경이 달라진 부분도 있지만 삶의 방식과 문화도 달라졌다. 사람이 곧 문화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인구가 70만이라면 70만의 문화가 존재한다. 참 많이도 달라졌다. 이처럼 제주의 문화가 큰 변동을 일으킨 경우는 6.25와 4․3사건이 있다. 4․3사건은 그 자체로 문화가 말살 당했다고 볼 수 있다. 문화 이전에 생존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사라진 잃어버린 마을 숫자 만큼이나 제주의 문화도 함께 사라졌다. 같은 시기에 6.25라는 터널을 통과하면서 제주 예술계도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이 와중에 피난생활을 시작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제주예술환경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피난민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귀향하지 않고 제주에 정착하면서 생활문화 양식도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주변을 맴돌게 된다. 

물론 해방을 전후하여 제주예술가들의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외부와 교류가 활발한 섬 특성도 한몫을 거들었다. 제주인들이 세계를 찾아 접촉하면서 제주 현대예술은 싹이 트고 있었다. 

최근 제주 인구는 과거 10년 전과 비교하면 대략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제주사회로 이주해 왔다. 70만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 가운데는 10만을 넘는 새로운 문화가 들어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원래부터 제주에서 만들어진 문화 못지않게 새로운 문화가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본인만의 특별한 개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청년기를 넘기면서는 이미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문화를 쉽게 바꿀 수가 없을 것이다. 제주에 이주하는 문화도 이미 완성된 문화이기 때문에 제주의 고유한 삶의 양식과 종종 마찰을 불러 올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나 마찰이 불편하면 익숙한 집단끼리 어울리게 된다. 그건 이주민 뿐만 아니라 토박이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주민이 중요한 까닭은 4․3사건이나 한국전쟁 이후 단기간에 이처럼 많은 문화가 유입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를 찾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측면, 생활과 거주환경, 경제활동, 문화생활 등의 종합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주를 결정하는 원인은 크게 4개의 갈래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경제적인 목적, 현실의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 여가생활 목적, 낭만이주 등의 갈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갈래마다 지역을 대하는 태도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주민과 접촉하는 방식과 정착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적응이 원만하면 잠시 더 물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제주를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머무르고 있는 이주민들도 적응하는 정도에 따라서는 제주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도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주민과 융합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동질성을 지니고 있는 이주민 그룹을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라는 예술 섬 하나에 이처럼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비슷하면서 작은 차이가 있는 공동체가 제주 섬 여기저기 있었다. 이제는 생각하는 바와 문화 차이가 큰 공동체들이 넓게 흩어져 있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곳곳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제주라는 동질성 보다 제주로 이주하기 전에 체득한 문화가 더욱 소중해지고 옮겨 심으려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제주 생활문화생태계는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본다. 토박이들은 한 다리만 건너면 그가 누구인지 다 아는 게 제주사회이다. 이주민은 한 다리 건너 알 수가 없다. 작은 공동체로 움직이면 더욱 이해할 길이 없다. 이주민이 토박이를 보는 시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제주는 하나의 미래를 놓고 동상이몽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구절벽 시대에 이동하는 문화가 미치는 긍정적인 요인은 무엇이고 부정적인 요인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따져볼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사람과 문화의 이동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론화가 없는 제주사회는 참담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토목건설로 인한 환경피해 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훼손된 문화생태계는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주와 문화전파 관계를 제대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주하는 사람들은 머무르고 있는지? 정착하는 과정인지? 이주동기는 무엇인지? 이주 전 생활문화는 어땠는지? 등 정치․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조사된 통계는 찾아볼 수 없다. 10만이 넘는 새로운 문화가 제주사회에 흐르고 있지만 이 문화가 제주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보고서를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의 이동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론화가 없다. 

이주민은 이전 생활지역에서 지금보다 나은 문화환경에서 생활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문화가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문화는 그쪽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성된 문화인 것이다. 제주에서는 제주의 환경에 맞는 문화가 생성되어야 한다. 

김석윤 (사)공공정책연구소 나눔 소장.

지역발전을 위해 관용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반면에 고유성도 매우 중요하다.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사람의 이동이 제주의 고유성에 미치는 영향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생태계는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경합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 사람의 이동은 그 해당지역의 문화에 대해서 긍정적인 작용과 부정적인 작용을 동시에 가하게 된다. 따라서 이동하는 문화 가운데 긍정적인 문화와 부정적인 문화가 무엇인지 잘 따져볼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화탄력성도 생겨났으면 한다. 이곳에 사는 나에겐 돌아갈 고향이 없다. 오직 태손땅만이 돌아갈 곳이다. / 김석윤 (사)공공정책연구소 나눔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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