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45. 남의 위로 내를 넘는다

* 놈 : 남, 타인
* 우로 : 위로

내포에서 외연으로 조금만 넓히면 어떨까.

사람과 사람 사이만 아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흔한 일이다. 우리 근대사가 특히 그러했다. 일본이라는 나라, 가깝고도 먼 이웃, 이웃이면서 이웃사촌이 아닌 그 나라가 우리 위로 잘도 넘었다. 우리를 밟고 건너 청으로 러시아로 갔다. 우리는 그들에게 징검다리였다.

칠월칠석의 유래담이 신비롭다. 애타게 기다리던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 칠월칠석날이다. 얼마나 기다렸겠는가. 그런다고 그냥 만남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지상에 있는 까마귀와 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미리내(은하수)를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어야 했다. 까마귀와 까치들이 머리를 맞대 다리를 놓아주면 견우와 직녀가 극적으로 상봉했다. 둘의 만남이 가능하게 까막까치가 놓아 준 전설의 그 다리를 일러 ‘오작교(烏鵲橋)’라 했다.
 
물론 전설적인 얘기다. 하지만 우리 선인들의 상상의 세계는 꿈처럼 신비로워 가슴 두근거리게 한다. 두 연인의 만남을 실현해 준 까막까치의 희생과 헌신이 눈물겹도록 아름답지 않은가. 또 가슴 저리게 애틋하지 않은가.
 
한데 ‘놈의 우로 내 넘나’ 속에는 오작교 같은 ‘다리’가 없다. 까막까치 같은 희생과 헌신도 봉사의 손길도 없다.

물살 급하게 질박거리며 흐르는 내를 건너야 하는데 딱히 이렇다 할 방법도 수단도 도구도 없다. 내 앞에 주저앉아야 할 판이다. 한데 웬 걸, 다른 사람들이 힘을 모아 쌓아 놓은 다리가 있지 않은가. 그 징검다리로 내를 건넌다. 자신은 잠방이 한 번 걷어 올리지 않고 내를 건너는 것이다.

남이 차려 놓은 제물(제수)로 제사를 지낸다거나, 상주가 상여꾼 먹이려고 주는 술로 친구를 사귀는 게 아닌가. 한마디로 남 덕에 생색을 내는 격이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간 약지 않다. 이렇게 처신하는 사람들이 좀 많은 세상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입 싹 쓴다’는 말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사람 사이의 좋은 관계를 무너뜨리는 처신은 안된다. 한낱 미물인 까막까치가 견우와 직녀에게 다리를 놓아 준 얘기에 숨은 뜻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교훈 이상의 의미로 온다. 다리를 놓는 역사(役事)엔 피와 땀을 흘려야 한다.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 참 희한한 장면들이 나와 속이 뒤집힐 때가 있다. 일본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라.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한반도에서 시작됐지 않았는가. 일본에게 대륙으로 진군할 길을 내주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고도 한반도의 주인이 주인공이 아니었던 전쟁 그리고 우리와 상관없으면서도 그 충격파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억울함, 그 원통함이라니. 한국사에서 새삼스레 비감을 맛보게 되는 대목이다.
 
러일전쟁 때만 하더라도, 일본이 군대를 한반도에 상륙시켜 대한제국에게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케 하면서 전략적으로 후방의 안전을 확보해 승리를 담보했다. 이 땅이 일본의 교두보가 된 것이다.

사진 왼쪽은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용의자이자 제57대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케. 오른쪽은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 출처=오마이뉴스.
지금 일본의 경제 도발은 그야말로 그들 본성의 발로다. 과거에 대한 진정 어린 반성과 사과 없이 그들과 대등한 관계 정립은 어불성설이다. 사진 왼쪽은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용의자이자 제57대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케. 오른쪽은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 출처=오마이뉴스.

제물포해전은 어땠나. 일본 함대가 제물포 항구에 6만 병력을 상륙시켜 선제공격을 취함으로써 한반도를 아주 용이하게 장악할 수 있었지 않나. 시쳇말로 복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진란만 아니다. 일본은 근세사에서 우리를 무력으로 겁박해 대륙 침략의 루트를 만들고 야욕을 채우자마자 우리를 식민지 총치하는 몰염치한 나라다. 이제 와서 한(恨)울 늘어놓자는 건 결코 아니다. 지금 일본의 경제 도발은 그야말로 그들 본성의 발로다. 과거에 대한 진정 어린 반성과 사과 없이 그들과 대등한 관계 정립은 어불성설이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민족의 자존을 결연히 보여줘야만 한다.

‘놈의 우로 내 남나’, 그런 자, 바로 일본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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