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공육사 연극 ‘유리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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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극단 공육사의 연극 '유리 동물원' 무대 인사 장면. ⓒ제주의소리

지난 22일과 23일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는 제주 공연예술계 안에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화젯거리를 남긴 연극이 열렸다. 바로 신생 극단 ‘공육사’의 창단 공연 ‘유리 동물원’이다. 

공육사는 제주국제대학교 공연예술학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극단 대표 류태호 교수(공연예술학과 학과장)를 필두로 2016년 3월 입학한 1기 졸업생 7명과 재학생 3명이 창단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졸업생 7명 가운데 5명(박은주, 이유경, 김정연, 성준, 황현수)은 ‘유리 동물원’의 배우로 2명(박주난, 전용근)은 각각 조연출과 무대감독을 맡았다. 앞서 공연예술학과는 11월 1~2일 기념비적인 1기 졸업 공연을 같은 작품으로 개최한 바 있다.

유리 동물원은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작품으로 1944년 초연한 현대 고전이다. 미국 대공황 시대, 남부에서 대도시로 이주하며 궁핍했던 윙필드 가족의 갈등과 해체를 그려낸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포함해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공육사의 유리 동물원은 배역 이름이나 고유 명사는 그대로 유지하고 독특하게 나머지 모든 대사를 ‘제주어’로 재구성했다. 더불어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면서 공연 시간도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1930~4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을 제주어로 풀어내는 무대는 그동안 쉽게 만나지 못한 경험이다.

어머니 아만다(배우 박은주), 큰딸 로라(이유경·김정연), 아들 톰(성준). 이들 윙필드 가족은 서민보다 더 열악한 사실상 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다. 집은 건물 비상구 계단 옆방, 경제 활동은 창고에서 일하는 톰의 박봉으로 근근이 버틴다. 그마저도 없으면 거리로 나가야 하는 상황. 아버지 윙필드는 16년 전 홀연히 떠나버린 뒤 감감 무소식이다. 

어머니 아만다는 젊은 시절, 남부에서의 화려했던 삶을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큰딸 로라는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장애로 인한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 나아가 극단적으로 대외활동을 꺼리는 요즘 말로 ‘히키코모리’다. 아들 톰은 혈기 넘치는 나이에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이란 짐이 부담스럽다. 아버지처럼 훌훌 떨치고 모험을 떠나고 싶지만 현실은 몰래 시를 쓰고 밤마다 극장을 전전하며 대리만족하는 처지다. 세 사람은 분명 한 공간에 있는 가족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따로 부유하는 이질적인 존재감이 강하다. 열악한 현실이 문제일까, 각자 처지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일까. 

속마음과 달리 뾰족하게 부딪히며 서로를 상처 내는 윙필드 가족에게 어느 날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어머니는 ‘누나를 책임질 남자를 데려오면 네가 원하는 대로 나가서 살라’고 아들에게 전하고, 아들은 직장 동료 짐(황현수)을 섭외한다. 짐을 초대한 저녁식사는 윙필드 가족에게 많은 것이 달린 기회다.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 집을 탈출하고 싶은 아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 큰 지출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손님맞이에 나서지만, 짐이 결혼을 약속한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리면서 가족은 큰 충격에 빠진다. 로라의 충격은 더더욱 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짐을 사모했고 저녁 식사 후 그와 입맞춤까지 하면서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용기를 작게나마 품었지만 이내 무너지고 만다.

수습할 수 없이 깨져버린 상실감. 톰이 직장마저 잃어버리면서 결국 집을 나가버리고 윙필드 가족은 산산조각 난다. 

유리 동물원은 산업화·대공황이란 사회 변혁 속에 밀려나면서 절망하는 한 가족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만든다. 누나를 잊지 못하는 짐의 흐느낌은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뒤늦은 자책, 비록 부유하지 않았으나 가족이 함께 했던 순간에 대한 그리움이 뒤엉킨 감정이다. 극의 마지막 순간, 무대를 비추는 빛줄기는 로라가 애지중지하던 동물 유리공예품이다. 한번 깨지면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리처럼, 열릴 뻔했던 로라의 마음도,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어머니의 간절함도, 기쁘게 본인의 길을 가고 싶었던 톰의 마음도 유리처럼 산산조각 난 셈이다.      

공육사의 제주어 유리 동물원은 지난 1~2일 공연에 비해 한층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다. 물론 제주어 연극이라는 독특함에 첫 무대가 더더욱 낯설게 느껴졌고 두 번째 보니 익숙해진 요인도 있다. 다만 ‘배우들이 정말 많이 준비했다’는 류 교수의 설명처럼 모든 배우들의 몸짓, 목소리에서 어색함 대신 차분함이 짙어졌다는 인상은 분명했다. 서로 고조된 감정이 부딪히는 박은주(아만다)와 성준(톰)의 대화, 황현수(짐)의 천연덕스러움 등 학교 소극장 무대보다 훨씬 매끄러워진 연기들을 보니 배우가 작품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이런 과정이겠다고 조금이나마 유추해볼 수 있었다.

공육사는 비바리(처녀), 가시낭(상수리나무), 호쏠(잠깐) 등 10여개의 단어를 제주어로 바꾸면서 완성도를 높이려 애썼다. 하지만 ‘~마심’, ‘~수다’, ‘~우다’, ‘~쪄’ 같은 서술어에 변화의 방점이 찍혔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렵다. 더욱이 같은 서술어를 연속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해 관객 입장에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어색하지 않은 제주어 억양을 구사하는 경우도 아만다 역을 맡은 박은주 배우가 그나마 가까웠다. 물론 제주가 아닌 출신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공육사의 무대를 낮게 평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현재 제주 연극계에서 제주어가 쓰이는 작품은 주로 국내 고전 작품으로 한정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육사는 자신들의 모토를 ‘세계 명작을 제주어로 공연한다’고 소개한다. 그 포부는 결코 쉽지 않을뿐더러 무척 희귀한 사례다. 이번 유리 동물원은 첫 발걸음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과정이 있어야 주목할 만 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서술어, 단어에 대한 제주어 변환에 그치지 않고 줄거리와 메시지를 제주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는 정도까지 발전한다면 바랄 것이 없다.

제주 지역번호 ‘064’를 차용해 ‘제주다움’을 전면에 내세운 극단 공육사. 안타깝지만 공육사의 미래가 밝다고 보기에는 난관이 상당하다. 근간이 되는 공연예술학과는 제주국제대 전체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고, 제주어는 소멸 위기의 언어이며, 연극 장르는 냉정하게 볼 때 제주 예술계 안에서 메이저(Major)가 아닌 마이너(Minor)에 가깝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분명한 가시밭길이지만 공육사의 포부와 노력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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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제주국제대에서 열린 연극 '유리 동물원' 출연 배우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정연, 황현수, 성준, 박은주 배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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