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22) 지하수 공수화원칙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제주도

“제주자치도에 부존하는 지하수는 공공의 자원으로서 도지사가 관리하여야 한다.”

제주특별법에서 지하수의 공공적 관리를 명시하고 있는 표현이다. 이에 따라 도지사는 지하수의 체계적인 보전·관리를 위해 10년 단위의 수자원관리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수인 먹는샘물의 제조·판매를 하려는 경우는 아예 허가 자체를 제한한다. 다만, 제주도가 설립한 지방공기업인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제주개발공사만이 지하수를 이용해 먹는샘물인 삼다수를 생산·판매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35년간 제주 지하수 사유화 해 온 한진그룹

그런데 지방공기업도 아닌 민간기업이 지난 35년 동안 지하수를 개발하여 먹는샘물을 판매해 온 사례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 재벌 중에 하나인 한진그룹 자회사인 한국공항(주)이다. 지난 1984년에 처음 먹는샘물 제조업 허가를 받았다. 당시에는 전량 수출 또는 주한 외국인에 한정해 판매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한국공항은 1996년 제주도를 상대로 지하수의 판매·이용 범위를 제한하는 허가조건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한다. 다만, 당시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은 제주도와 기존 약속대로 먹는샘물의 국내시판은 하지 않겠다고 재약속을 한다.

그러나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4년 한국공항은 국내 시장에도 먹는샘물을 시판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제주도에 공식적으로 요구한다. 이어서 2005년 한국공항은 제주도가 연장허가 과정에서 ‘계열사 판매’로 한정한 조건을 취소하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기각결정을 받자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1심 재판부는 한국공항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한국공항의 손을 들어줬다. 

공공의 자원인 지하수를 민간기업인 한국공항이 마음대로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도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민간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전락시킨 결정에 시민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다만, 제주상공회의소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성명발표로 한국공항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한국공항은 2008년 ‘제주워터 쇼핑몰’을 열어 본격적으로 국내시장에 먹는샘물 판매를 시작한다. 

한진그룹과 도민사회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1년 한국공항은 기존에 허가받은 지하수 취수량을 월 3000톤에서 월 9000톤으로 늘리는 지하수 개발·이용 변경허가 신청을 한다. 행정소송 이후 한국공항의 먹는샘물 지하수 증산은 허용하지 않겠다던 제주도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공항의 증산 신청에 동의한다. 도의회 동의과정에서 한국공항의 지하수 증산 시도는 무위에 그쳤지만 이후에도 지하수 증산 요구는 끝이지 않고 이어지면서 도민사회의 논란을 만들었다. 

한국공항의 지하수 연장허가는 위법처분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제주특별법이었다. 그동안 한국공항은 제주특별법의 부칙 내용을 근거로 해 지하수 연장허가와 지하수 증산 시도를 해 왔다. 하지만 범령의 제·개정 과정을 확인해 본 결과 한국공항의 지하수 연장허가의 근거는 지난 2000년부터 상실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2000년 전면 개정된 제주도개발특별법에는 지하수 개발·이용허가 등에 관한 특례로 ‘도지사는 지하수의 적정한 보전관리를 위하여 먹는샘물을 제조·판매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허가를 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신설된다. 
따라서 한국공항이 지하수 연장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개정된 제주특별법에 부칙 또는 단서조항으로 기존 민간기업의 먹는샘물 지하수 개발·이용 허가를 인정하는 근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기존 허가된 민간기업의 지하수 개발 연장허가 근거는 마련하지 않았다. 

한국공항의 지하수 개발 연장허가의 근거가 되는 조항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시작되면서이다. 당시 제정된 제주특별법의 부칙으로 ‘이 법 시행 당시 종전의 규정에 의하여 지하수 개발 및 이용허가 등을 받은 자는 도지사의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라는 경과조치 규정을 둔 것이다. 하지만 한국공항의 지하수 개발·이용 허가는 이미 2000년부터 효력을 잃은 상태여서 2006년의 제주특별법 부칙의 의제처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공항의 지하수 개발·이용 허가는 2000년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그 실효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는 지금까지 20년 동안 제주특별법을 위반하여 한국공항에 지하수 개발 연장허가를 하는 위법한 행정처분을 해 온 셈이다.

도민의 생명수, 지하수 공수화 원칙 지켜야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제주도 지하수관리위원회는 한국공항의 지하수 개발 연장허가 신청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제주도의회도 최근 정례회에서 한국공항의 지하수 개발 연장허가 동의안을 가결했다. 다만, 부대의견으로 제주특별법을 위반한 위법처분 논란에 대해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도록 했다. 

제주도는 한국공항의 지하수 개발 연장허가의 법적 근거가 상실된 사실을 확인한 후 이미 법률자문을 받았었다. 그 결과 ‘2000년 개정되어 시행된 제주도개발특별법에 따라 이후 한국공항에 내어준 연장허가 처분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한 위법한 처분’이라는 답을 받았다. 문제는 이후 제주도의 대응이었다. 자문 결과를 토대로 정책판단을 하든, 법제처에 추가 질의를 통해 정책결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제주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국공항에 지하수 개발 연장허가를 해주는 이전과 똑같은 행보를 이어갔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한진그룹은 지난 35년 동안 제주도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상품화하여 이윤을 창출해 왔고, 이것도 모자라 더 많은 지하수를 요구하며 지하수의 공공적 관리원칙을 짓밟았다. 이에 대한 지금까지 행정당국의 대응은 너무나도 미흡했다. 지하수를 공공의 자원으로 천명하면서도 공수관리의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제주 지하수의 사유화를 막고, 공공적 관리체계가 안착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행정과 의정활동이 요구된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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