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48. 계모를 묻은데는 엉겅퀴가 꺼끌꺼끌

다심어멍 묻은 듼 소앵이가 소왕소왕 ᄂᆞᆯ을 들런 캐젠 ᄒᆞ난 웃음제완 못 캐곡, 원어멍 묻은 듼 반짓ᄂᆞ물이 반질반질 ᄂᆞᆯ을 들런 캐젠 ᄒᆞ난 눈물제완 못 캔다

(계모가 죽어 묻은 묘소에)는 엉겅퀴가 꺼끌꺼끌 날을 들어 캐려 하니 웃음겨워 못 캐고, 낳은 어머니 묻은 묘소에는 배추나물이 반질반질 하니 눈물겨워 못 캔다)

2013년 경북 칠곡의 한 가정집에서 발생한 '칠곡 아동학대 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어린의뢰인> 스틸 이미지. 출처=네이버 영화

  * 다심어멍 : 계모(繼母)
  * 묻은 듼 : 묻은 데는
  * 소앵이 : 엉겅퀴
  * 소왕소왕 : (가시가 돋아) 꺼끌꺼끌
  * ᄂᆞᆯ을 들런 : 날(낫)을 들어
  * 웃음 제완 : 웃음 겨워
  “ 못 캐곡 : 못 캐고
  * 원어멍 : 친어머니, 친모(親母), 생모(生母)
  * 반질ᄂᆞ물 : 배추나물
  * 눈물제완 : (흘러내리는) 눈물겨워

고대소설로 분류되지만, 민담(民譚) 쪽에 가까운 『콩쥐 팥쥐전』이 떠오른다. 옛날 얘기 한 토막인데 지나치기 쉬운 것이라 줄거리를 요약한다.

“콩쥐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 살게 됐는데, 계모에게는 데리고 온 팥쥐라는 딸이 있었다. 계모는 콩쥐에게만 힘든 일은 다 시키니, 콩쥐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하루는 팥쥐 모녀가 나라의 잔치에 가면서 강피(붉은 피의 일종)를 찧어 놓고,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해워 놓으라고 일을 시켰다.

콩쥐가 독 앞에서 울고 있는데 두꺼비가 나와 깨진 독을 등으로 막아 물을 채울 수 있게 해 주었고, 새들이 날아와 강피를 부리로 쪼아 찧어 주었다. 그리고 암소가 옷 한 벌과 꽃신을 가져다주니 콩쥐가 그것들을 가지고 잔치에 갈 준비를 했다.

잔치에 가다가 그만 신 한 짝을 잃어버렸는데 세자가 그것을 주워 보고, ‘이 신발의 주인이 세자비가 될 사람이다.’ 하고 신의 주인을 찾아 콩쥐를 세자비로 맞으려 했다. 하지만 혼례 전 팥쥐와 계모가 콩쥐를 죽이고 연못에 시신을 버리고는 팥쥐가 콩쥐인 척하고 결혼을 하게 됐다.

세자가 팥쥐를 보고 얼굴이 바뀌었다고 하니, 팥쥐가 콩 멍석에 엎어져서 그렇게 된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밥을 먹는데 세자가 젓가락이 바뀐 것을 보고 팥쥐에게 영문을 물으니, 어디에서인가 ‘부인이 바뀐 것도 모르느냐’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팥쥐가 소리 나는 곳을 찾으니, 소리 꽃에서 나오는지라 그 꽃을 뽑아다 아궁이 불 속에 넣어 태워버렸다.

이웃 궁(宮)에서 불씨를 빌러왔다가 불씨 속에서 구슬 하나를 보고 몰래 가져갔다. 하루는 구슬에서 콩쥐의 혼이 나와 세자에게 시신의 위치를 알리니, 세자가 시신을 찾아 구슬을 바르니 콩쥐가 다시 회생하게 됐다.

결국, 세자는 콩쥐와 행복하게 살게 됐고, 팥쥐와 계모에게 큰 벌을 내렸다.“

권선징악이 주제이므로 해피엔딩(HAPPY ENDING), 호종적(好終的)결말이다. 당연히 그럴 것 아닌가. 
  
친모와 계모가 같을 수 없다. 아무리 계모의 심성이 좋다 해도 천양지차일 수밖에.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게다가 계모는 의붓자식을 꼬집고 쥐어뜯고 호된 일을 시키며 구박하기 일쑤다.
  
그래서 나온 말이다. 벌초하거 산소에 갔더니, 생전에 그렇게 구박하던 계모 무덤과 낳고 길러주다가 일찍 돌아가신 친어머니 무덤이 다르더란 말이다. 계모 무덤엔 살았을 때 모양으로 엉겅퀴란 가시 돋은 풀이 돋아나 낫을 대기가 꺼끌꺼끌한데다 웃음이 나와 풀을 못 베겠고, 서러운 친어머니 무덤가엔 배추가 풋풋하게 돋아났는데  낫을 대려 하니 눈물부터 솟아 낫질을 못하겠더라 함이다.

어머니 돌아가고 맞이한 의붓어미가 얼마나 못 살게 굴었으면 무덤가에서 픽픽 웃음이 나왔겠는가. 일찍 돌아가신 친어머니 무덤가에 낫질을 하려니 어찌나 서럽던지 눈물이 앞을 가려 풀을 못 베었으리라.
  
자기가 낳지 않은 의붓자식이라 해서 갖은 박대를 일삼았으니 억울함과 원한이 쌓일 대로 쌓였을 터, 어찌 증오의 감정인들 없겠는가. 어렸을 적 품안에 안아 재우고 고뿔할라 배탈 날라 감싸고 쓸어주던 친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니 눈물이 샘솟듯 하리라. 

계모와 생모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명문의 속담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속담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계모와 전처소생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지금도 그다지 좋을 수 없는 사이란 생각이 든다. 과문인지 몰라도, 제가 낳지 않아 피 한 방울 섞지 않은 아이를 제 자식처럼 보듬는 계모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계모를 좋아할 아이도 없게 마련이다. 피장파장, 이도 인과응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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