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막걸리 보안법’ 故 홍제화씨 38년만에 무죄...유족들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고 홍제화 씨 가족 사진. 가운데가 홍제화씨다. 60대였던 당시 홍 씨 모습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동연배들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이 것 좀 봐요. 남편이 60대에 찍은 가족사진이예요. 얼마나 고초를 당했는지. 이 얼굴이 그 나이로 보이냐구요....”

남편의 사진을 꺼내 본 故 홍제화(1953.5-2018.7)씨의 아내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38년 만에 무죄 판결이 나자, 떨리는 마음 부여잡고 법정 밖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노현미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등의 혐의로 징역 8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은 홍씨의 재심사건에 대해 12일 무죄를 선고했다.

아내 오모(68)씨는 1980년 1월 2남2녀 중 장남인 홍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홍씨는 마을에서도 똑똑하기로 소문난 인재였다. 조천중과 제주일고를 거친 후, 대학에 가려 했지만 가정형편으로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촉망 받던 청년이었다.  

홍씨는 결혼 이듬해인 1981년 당시 교통부장관이 발급하는 통역안내원자격증까지 따고 관광안내원의 길을 걸었다. 아내와 행복한 가정생활을 바랐지만 결혼 1년 만에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1981년 7월27일 밤 11시30분쯤 조천리 청암식당에서 벌어진 술자리가 발단이 됐다. 지인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평소처럼 정치 이야기를 했지만 그게 악몽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그해 11월24일 아침 8시 제주경찰서 형사들이 느닷없이 집으로 쳐들어와 홍씨를 연행했다. 두 차례에 걸쳐 제주경찰서 정보분실과 한라기업사(옛 제주보안대·기무부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당했다.

구치소에서도 장장 95일에 걸쳐 모진 학대를 받았다. 술 자리에서 한 김일성과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발언이 국가보안법으로 덧씌워지는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의 희생양이었다.

홍씨는 1982년 7월17일 제주지방법원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고 광주교도소로 이감돼 날벼락 같은 옥살이를 했다. 

1982년 8월12일 만기 출소 당시 1년 만에 남편의 모습을 본 오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석방 돼 나왔을 때 정신이상자가 돼 있었어요. 집에 오자마자 결혼사진과 책들을 다 불태워 버리고 말없이 혼자 중얼 거렸어요. 콜라 한통도 한꺼번에 마시는 이상행동이 계속 됐어요”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한 1982년 당시 광주교도소 동향사항 기록에서도 ‘홍씨가 사람이 동물로 보인다고 용서해 달라고 하는 횡설수설 한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석방 후에는 연좌제의 굴레가 가족들을 괴롭혔다. 공무원인 동생 홍제선(59)씨는 당국이 감시하는 요시찰 인물에 올라 공직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홍씨의 정신분열증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아내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식당 곳곳을 다니며 허드렛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시작한 식당 일이 올해로 37년째다.

동생 홍제선 씨가 형의 과거 판결문을 손에 쥐고 생각에 잠겼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곁에서 지키며 간병에 매진했다. 직장까지 포기할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컸다. 생활비에 병원비까지 가족들을 옥죄었지만 맥없이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지난 38년의 모진 이야기를 어떻게 다 표현 합니까. 아이들은 또 무슨 잘못입니까. 가정을 지키려 쉬지 않고 일하고 현재도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게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2006년부터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4년에 걸친 조사 끝에 2010년 7월6일 홍제화 국가보안법 위반 조작 의혹사건의 불법 구금을 인정했다.

가족들은 이를 근거로 2017년 9월22일 제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홍씨는 무죄 판결을 1년여 앞둔 2018년 7월5일 정신분열 증세로 사경을 헤매다 생을 마감했다. 향년 67세.

홍씨의 아내는 무죄가 확정되면 법무부를 상대로 남편의 불법 구금에 대한 형사보상 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로 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정신분열증세로 37년간 거리를 방황하고 조롱거리가 된 남편의 삶은 누가 되돌려 줄 수 있습니까. 뒤늦게라도 남편의 억울한 사정이 알려지고 국가보안법 사건 조작이 밝혀져 다행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이 같은 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주시길 간절히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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