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I가 주목한 이사람] 대정고 고정보 군, 연세‧한양‧중앙‧경희대 이어 서울대 합격
서울대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 진학 예정, “암 치료 약물전달 기술 연구” 포부 밝혀

ⓒ제주의소리
올해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대정고 고정보 군이 13일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가졌다. ⓒ제주의소리

“아직도 얼떨떨하네요.”

고액의 사교육 없이,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이 불리한 읍면 소재의 일반계고에서 그 어렵다는 ‘인(IN)서울 대학 바늘구멍’을 차례로 뚫은 열아홉살 소년은 해맑았다. 

“암치료에 사용하는 약물전달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며 파안대소하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고등학교 고정보(19) 군. 

연세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등 소위 ‘인(IN)서울’ 명문대에 잇따라 합격한데 이어, 서울대학교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에도 수시 합격하는 기쁨을 안았다.

서울대 진학을 확정짓고도 졸업 때까지 학비와 용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는 요즘, 고 군을 [제주의소리]가 지난 12일 대정고에서 만났다. 

그는 평소 친구들로부터 ‘물리 변태’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과학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과 집중력을 가져왔다. 덕분에 높은 내신 성적과 자기주도적인 학습 습관으로 가고 싶었던 대학에 입성할 수 있었다. 

뉴스에 나올 법한 비싼 사교육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보단 학교수업 과정에 충실하면서 특유의 집중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낸 전략은 유효하게 작동했다.

이번 서울대 합격은 고 군 개인에게는 그 동안 흘려온 땀과 노력의 결실인 동시에, 대정고로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2년차를 맞아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성의 있게 시도한 결과, 올해 고 군을 포함한 다수의 학생들이 목표한 유수의 대학에 진학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1952년 6월 2일 개교한 대정고는 총 학생 293명의 소규모 읍면 고교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제주형 자율학교를 비롯한 각종 교육 특화 프로그램을 최근 적극 도입해가며 질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옥희 교장은 “입시 제도가 바뀌면서 읍면 지역은 학부모가 기존대로 입시를 챙기기 어려운 환경이다. 결국 학교가 사교육이 담당하는 부분까지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읍면 지역 학교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본다”며 “대정고는 방과 후 교육부터 자율학습까지 교사가 학생 개개인을 챙기고, 학생들의 가능성을 적극 키워주도록 개선했다”면서 학교 차원의 촘촘한 관심과 노력을 피력했다. 

우 교장은 이어 “이런 노력의 결과 지난해 제주 전체 읍면지역 고등학교 가운데 학력·취업 향상과 대학 진학률 1위를 기록했다. 예전만 해도 제주 서부지역의 우수 학생들은 제주시로 빠져나가곤 했는데 이제는 대정고로 온다. 고정보 군의 사례는 읍면지역 학교에서 진로와 꿈을 찾아가는 가능성을 발견한 소중한 사례”라고 자부했다. 

고 군도 “학교에서 제공한 다양한 기회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제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며 모교와 교사들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친구들이 고 군에게 붙여준 별명은 ‘물리 변태’다. 대부분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을 반드시 ‘왜 그렇지?’라고 궁금해 하고 원리를 끝까지 파헤치는 성격 탓이다. 고교 3년간 ‘물리학 클래식’(사이언스북스), ‘한 권으로 읽는 나노기술의 모든 것’(고즈원), ‘미적분으로 바라본 하루’(프리렉) 등 약 50권의 과학 서적을 섭렵했다. 별명이 이해됐다.  

“아직 열아홉 살 밖에 안됐지만 3년간 만나온 여자 친구가 정말 큰 힘이 됐다”는 발랄한 소감을 남긴 고 군은 후배들에게도 “놀 땐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만 해라”는 유쾌한 조언을 남겼다. 

Q. 대학 합격을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A. 아직도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는다. 어제 입학 예치금을 납부했는데 ‘내가 서울대에 입학한다고?’라는 생각이 계속 떠돌면서 어안이 벙벙하다. 

Q. 가족, 친구 반응이 궁금하다.
A. 고모를 비롯해 가족들이 매우 좋아하신다. 자랑거리가 생겼다면서 주변에 내 소식을 자랑하는 모습이 뿌듯하고 기분 좋다. 친구들도 장난으로 ‘나중에 친구 덕 좀 보겠다’고 농담을 던진다.

Q.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에 지원해 합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준비 과정은 어땠나?
A.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즈음해서 특별전형에 대해 알게 됐다. 당시 내신 성적이 1.4였는데(최고 1.0, 최하 9.0) 지난해 합격 수기를 보니 '나도 3학년 동안 열심히 준비한다면 입학할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2학년 겨울방학을 쏟아부어 물리2 과목을 끝내고,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입시를 준비했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난 공부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관심 있는 분야에 궁금증이 생기면 넘겨버리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면서 이해하려 했다. 물리, 과학을 좋아하는데 어느 수준을 지나면 자연스레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에서 배울 지식들이다.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여기서 빼면 진다’는 그런 느낌으로 대했다.(웃음) 

그래서 관련 서적을 폭넓게 읽으면서 드는 궁금증을 소논문 같은 보고서로 남겼다. 고교 시절 읽은 책은 ‘물리학 클래식’(사이언스북스), ‘한 권으로 읽는 나노기술의 모든 것’(고즈원), ‘미적분으로 바라본 하루’(프리렉) 약 50권이며 작성한 보고서는 15개 정도다.

고정보 군. ⓒ제주의소리
고정보 군. ⓒ제주의소리

Q. 면접 과정은 어땠나?
A.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내가 농구를 굉장히 좋아한다. 학교 체육대회를 비롯해서 대학 면접을 코 앞에 둘 때도 농구를 빠지지 않고 했다. 학교 생활기록부에도 이런 내용이 적혀 있는데, 면접관이 ‘농구에서 슛을 잘 쏘는 방법을 물리적으로 설명해보라’고 물어봤다. 그래서 ‘농구는 스핀(회전력)이 중요한데, 골대로 향하는 농구공의 속도를 기하학에서 x축, y축으로 나누면 농구공이 골대에 맞고 튕겨 나가는 값을 상쇄시키는 게 바로 스핀이다. 그래서 슛을 잘 넣으려면 스핀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면접은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관찰력, 논리력, 타당한 근거, 자신감을 판단한다고 생각하고 임했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Q. 좋아하는 농구 선수는?
A. NBA에서 활약하는 스테판 커리다.

Q. 수학, 물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초등학교 때 도형을 좋아해서 수학에 쭉 관심이 많았다. 물리는 우주나 양자역학을 접하면서 오묘하고 이상하지만 매력을 느꼈다.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준 순간은 1학년 때 제주대학교가 개최한 ‘나노기술’ 관련 강의였다. 관심 있는 제주 청소년을 위한 행사였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단체로 참석했다. 돌이켜보면 그 강의로 인해 구체적인 꿈이 생긴 것 같다. 이후 물리, 미적분, 기하학을 공부했고 궁금증이 생기면 여러 책을 통해 해소해갔다.

원래 내 성격 자체가 호기심이 많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빛은 입자로서 일직선으로 간다’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어느 날 기숙사 가로등 불빛을 손으로 가렸는데 손 옆으로 흐릿하게 비춰졌다. ‘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일직선으로 가지 않지’라는 생각에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자료를 찾아봤다. 이런 아주 간단하고 쉬운 내용이라도 의문점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나둘 쌓으면서 자기주도적인 자세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친구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이 ‘물리 변태’다. 대부분 그냥 넘어가는 것들을 ‘그걸 궁금해 한다고?’라고 의아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웃음)

만약 이런 성향을 선생님들이 이해해주지 않았다면 거부감으로 바뀌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과학 시간마다 드는 궁금증을 질문하면 선생님들은 성심성의껏 답변해주고 가르쳐주면서 좋아해주셨다. 그런 상호 작용이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그 밖에 학교 규모가 작아 야간자율학습을 하면 선생님들이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정성껏 함께 해주는 모습이나, 형처럼 엄마처럼 대해주는 배려도 인상 깊었다. 보통 고등학교 과학실에서 보기 힘든 고가의 DPPH(항산화 활성)실험 기계도 지난해부터 학교에 생기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교실에서 포즈를 취하는 고정보 군. ⓒ제주의소리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교실에서 포즈를 취하는 고정보 군. ⓒ제주의소리

Q. 기대하는 대학 생활의 모습이 있나?
A. 일단 대학 정문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 면접 보러 갈 때 사진으로 남길까 생각했지만 떨어지면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 반드시 합격해서 다시 찍겠다고 혼자 속으로만 생각했다. (웃음) 대학 생활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려 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암 치료 분야에 주로 사용하는 약물전달 기술을 연구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교육자라는 꿈도 이뤄보고 싶다. 

Q.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A. 위미초등학교 시절에 오승연 선생님이 내게 큰 도움을 주셨다. 대정중학교 최병훈 선생님, 대정고등학교 이유경·김지영·좌용호 선생님, 그리고 지금은 대정여고로 가셨는데 1~2학년 때 과학을 잘 알려주신 김솜이 선생님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가족, 함께 보낸 친구들 모두 고맙다. 그리고 3년 간 내 옆을 지켜준 여자 친구가 정말 큰 힘이 됐다. 여자 친구도 청주에 있는 한국교원대학교에 합격했다. (웃음)

Q. 대정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한참 뜸을 들이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만 해라.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